덕암 칼럼 살벌해지는 민심
2026.03.11 14:57:33
오래전 일이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맞은편 차량들이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신호를 주고 이를 보는 운전자들은 교통경찰이 단속 중임을 알고 속도를 줄이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운전자가 과속을 하다 과속측정 카메라에 걸리면 정복 차림의 경찰이 고속도로 한가운데로 나와 손짓으로 피양을 요구하고 갓길에서 거래가 시작된다. 면허증 대신 5천원 짜리를 내밀면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미소 지으며 서로 타협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수십년 전 일이니 공소시효도 지났고 국민들이 다 아는 비밀이었으니 추억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 당시 교통단속 오토바이나 경찰차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국민정서상 그럴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만은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일까. 공무수행 과정에 단속이라는 두 글자에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던 분야는 지천이었다.그래서 미성년자 주류판매금지라는 단어가 생겼고 성매매는 물론 금연구역설정, 공직자와 관급자재 납품업자나 국가 보조금을 받는 단체들의 짜고 치는 판은 모든 분야에서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상명하복의 공직사회나 군부대, 심지어 의료, 교육, 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의 고리는 끊이지 않았다. 일명 까라면 까야 하는 분위기가 어느 날부터 상부에 일러바치고 고발하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시대가 점차 사라지고 걸핏하면 직장 내 갑질이라는 명분으로 인터넷을 타고 내부 일이 외부로 불거지는 사례가 급증했다. 당연히 몸 사리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이 당연시 되는 시대에 도래했다.
법규를 어기는 점에 대한 단속은 담당 공무원보다 내부나 주변에서 고발하는 일이 증가하면서 서로 불신하고 눈치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교통신호 위반은 맞은편 운전자의 블랙박스에 찍혀 신고당하는 일이 늘었고 코로나 19에도 집합금지와 거리두기를 위반한 사례는 대부분 주변의 신고로 단속에 적발됐다.
그러다 보니 신고 당한 사람이 보복심리로 다른 사람을 신고하고 그런 신고사례의 확산은 서로가 못 믿어 불신하는 분위기로 확산됐다. 정작 단속을 해야 할 공무원은 처벌조항을 찾아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하기 바쁠만큼 포상금을 노린 신고의 폭증은 우리 사회에 탄탄하게 자리잡아 버렸다.
감시기관이 찾아내기도 전에 내부고발자, 이른바 폭로로 이어지는 바람에 서로 눈치 보는 분위기가 팡배해졌다. 어떤 일이든 판을 벌이면 일장 일단이 있다.
노련한 의사가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과정에는 출혈을 피할 수 없듯이 사회개혁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 서로 신고하게 만든다면 정작 공무원의 단속권이나 재량, 그리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감사기관의 수고를 시민사회로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보다 밝은 사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국민적 불신감으로 인한 살벌한 민심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안 그래도 내가 잘되는 것 보다 남이 잘못되는 것이 더 관심 있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현실 속에 배 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세상이다.
질서나 공정이란 시민의식의 함양으로 인해 시민 스스로가 수준을 높여야 하는 것이지 감시의 눈이 있다고 지키고 없다고 어기는 것은 진정한 향상이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 수준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중동권에 내 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차원이 높아졌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다거나 아무 곳에나 오물을 버리는 행위는 본능적으로 지킬 만큼 향상됐다. 그러던 중에 지난 10일 정부가 국고 보조금 부정수급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제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 보조금을 타먹다 걸리면 9배의 환수를 당하고 이를 신고하면 부정수급액의 30%를 신고 포상금으로 지급할 방침을 밝혔다.
소액이라도 5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5년 동안 적발된 1,746건은 새발의 피다. 부정 수급한 지원금은 분명 국민 혈세를 도둑질하는 악질 범죄다. 지금까지 뭐하다가 갑자기 개벽천지를 맞이한 것처럼 난리를 칠까.
도둑질이란 훔치는 자와 망을 보는자 그리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며 단속하라고 권한을 이양받은 공무원은 물론, 경찰까지 모두 실행에대한 묵인, 방관, 협조 또는 나눠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간혹 털도 안 뽑고 혼자 먹다가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고 내부고발자, 이른바 공익제보자라는 명분으로 너도 나도 고자질을 해대면 누가 생색이 날까. 첫째는 정치권이다.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한 정치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정의의 혁명가 인양 비춰진다.
털어보면 먼지 안날 사람 드문게 정계다.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남의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게 하고 남의 돈 한 푼 안 쓰면서 왔다면 기적이거나 하늘이 도운 사람이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등을 돌려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겠다며 나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부정수급자는 토해내야 맞는 것이고 나눠먹은 공범들도 죄다 솎아내야 한다. 아니랄 수도 없고 맞다고 할 수도 없는 부정수급자 색출, 경찰이나 언론사에 쏟아지는 신고와 제보들이 기다려진다. 이메일, 문자, 카톡, 전화,팩스, 무기명 우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내부고발자들이 부정수급을 폭로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로 인해 얻어지는 포상금 또한 만만찮은데 파파라치가 우후죽순 생겨나듯 부파라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온다면 그래서 북한의 5호 담당제보다 더 살벌한 세상이 온다면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을 뿐이지 얻는 것 보다 잃은 것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정녕 목적과 명분이 정계의 계산대로 된다면 까보자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자. 산재보험, 기초 수급자, 실업급여, 온갖 수당까지 다 뒤져서 걸리면 9배 물리고 신고하면 30% 포상금 줘서라도 이 나라의 부패를 죄다 까보자 누가 죽나 판을 벌여보자.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