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는 단어에는 총체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예술도 마찬가지고 체육은 더더욱 그러하다. 먼저 문화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향유하고 지켜 가야할 지적 자산이자 특징이며 고유의 색깔이다. 그러므로 유지관리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으나 주체는 국민이다. 물론 여기에는 올바른 방향을 안내할 언론의 역할도 크다. 선진국일수로 문화수준도 높아지는 것이고 시민정신이나 기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반 상승되는 것이며 기성세대나 다음 세대들에게 더 없는 삶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인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예술가든지 뛰어난 자질과 열정이 빚어낸 창작 세계를 의미한다. 비단 눈에 보이는 그림이나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는 음악이나 건축물, 기타 모든 창작물이 여기에 속한다. 끝으로 체육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기록보존, 유지 관리하여 작게는 소규모 집단 크게는 국가 간 공통적인 룰을 정해 일정한 시기에 함께 향유하는 본능적 우월감을 채우는 장르다. 이 3가지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초월하여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요건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서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문화 예술 체육을 만들었고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바램은 지금도, 앞으로도 보다 폭 넓은 비젼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를 위한 예산만 낭비하고 실체는 정체되거나 퇴보 한다면 어째야 할까. 당연히 다시 재정립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기능을 살려야 맞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은 필자가 지난 수 십 년 문화 예술 체육을 취재하며 확인한 대한민국의 현실적 상황을 정리한 것이지 AI를 이용하거나 백과사전에 적시된 내용이 아니다. 물론 문제지적에는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모습인데 무 관중 무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거리두기로 안방극장이 후끈 달아올랐던 시기, 트롯 열풍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나머지 모든 음악을 평정해 버렸다. 동요, 민요, 가곡, 성악, 등 모든 분야의 음악은 물론 종사했거나 무대를 사랑했던 무명가수와 극단, 합주단, 심지어 예술단까지 설자리를 잃었다. 관련 산업도 사양길을 걸었다. 조명, 음향, 동네소극장까지 하나 둘씩 국민들의 선택에서 멀어졌다. 명문대 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성악가들이 무대, 관객, 배우라는 3대 요소에서 외롭게 혼자 남았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은 화려한 조명과 막강한 무대설치, 현란한 방송사의 각본대로 미쳐가고 있었고 기존의 가수들이나 무대 주인공들에 대한 비중은 그만큼 편향되게 쏠림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미술 세계도 마찬가지다. 경매시장도 얼어붙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활성화 되었던 미술작품의 주인공인 화가들이 개인전이나 정기전시회를 열었지만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어디 문화 예술뿐일까 체육 또한 부패와 예산낭비로 정부와 체육단체간의 갈등이 심화된 시기가 있었다. 년 간 수 천 억 원대의 예산으로 원로 체육단체장들의 자리다툼과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정작 경기장에서 뛰어야할 선수들은 뒷전이었다. 프로 선수들은 오로지 신기록 수립이나 금메달이 아니면 선수생명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기껏해야 일선 학교 체육교사나 개인 체육관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아마추어 체육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묶은 다음 사장된 국민들의 생활체육은 지자체장의 홍보무대로 전락했다.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뿌려가며 각 지자체 마다 경기를 개최하지만 보도 자료를 보면 대부분 현직 단체장들의 생색내기와 지역 언론사들에게 배포 되는 홍보사진이 전부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빚은 참사중 하나다. 이제 함께 모여 먹던 음식도 혼자서 배달음식으로 채우니 마치 닭장의 닭들이 사료 먹는 풍경이나 진배없고 너도나도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다른 것은 쳐다도 볼 줄 모르는 시대에 도래했다. 그렇게 생활체육은 일부 유명인사들의 잔치 마당으로 전락했으며 정작 건강한 체육활동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기껏해야 공원을 산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어쩌다 이 나라 국민들의 문화예술 체육이 이토록 황무지 나락으로 떨어졌던가. 문제는 종점이 사라지면 출발점도 동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가봐야 결론이 자명한데 누가 애써 길을 걷겠는가.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를 굳이 걸어간다면 시대에도 동떨어질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시나 소설 같은 창작세계도 AI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며 굳이 비젼도 없는 문화 예술 분야보다 돈이 되는 의대나 법대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본능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윤택함이 인간성을 타 넘어서도 안 되고 돈이 법을 사고파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미 그러한 마지노선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지키고자하는 국민적 의지와 작은 노력들이 병행된다면 다시 찬란한 문화 예술은 조금씩 원상 복구되고 계승 발전되어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영역이 확대될 것이라 믿는다. 대안이라면 그릇 만드는 공장에서 시간당 수 백 개씩 찍어내는 사기그릇과 도자기가 같지 않은 것이며 의류제조 업체에서 수 백 벌씩 생산하는 양복과 개인의 신체치수를 재어 꼭 맞는 양복을 만드는 것과 다른 이치다. 문화 예술 체육이 왜 발전되어야 하는지와 어떻게 해야 균형 있게 온 국민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금씩 망각한 3가지 분야는 이제 필요성과 중요성까지 누구하나 나서지 않는다. 원인을 알면 개선의 여지도 생긴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 발전 목적이 후대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게 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개선이 여지도 남아있고 모든 장르에서 발전시켜야할 재능과 끼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냥두면 퇴화되지만 자꾸 사용하면 향상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자 능력이다. 필자가 대한생활체육회를 설립한지 4년이 지났다. 건강한 국민이 행복의 우선조건이며 모두 각기 다른 재능을 발굴하여 생활체육을 일상화 하는 것, 애국의 실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후 7일날, 50명의 대한생활체육회 임원들이 1박 2일로 포항을 출발, 독도를 향한다. 나라사랑의 실천이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큰 계획의 완성또한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는 만큼 온 국민이 함께 건강한 미래를 지향한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결국 이재명의 승리로 종지부 졌다. 당초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한국정치의 행보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물이자 요동치는 역사의 북소리가 1차전 승리의 출정식을 가진 바 있다. 2022년 3월 당선, 그로부터 5년 임기 중 3년 만에 중도하차했다. 필자는 윤석열 당선 이후 군대도 안가보고 자식도 안 낳아본 사람이 한평생 피의자 불러다 조지기만 했던 사람이 일반 국민들 속사정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성토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군의 날 주적주적 가을비 오는 데 터덜거리며 걷는 행진모습을 보고 제 3국에서 얼마나 비웃을지 누가 볼까 TV를 꺼버린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련복을 입고 분열훈련을 했을 때나 육군에 입대하여 훈련병부터 병장 전역할 때 까지 집체 교육은 군인의 기본이었다. 어째 대통령이란 사람이 동네 깡패 조직도 아니고 위상이나 체통도 없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은 국군 통수권자로써 주변의 보좌진들 말을 죄다 무시했다는 느낌이었다. 일국의 군사적 도열은 해당 국가의 국방력을 전 세계 국방 분야 관계자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위력과시용 행사다. 화려함 중심의 이벤트나 인기 중심의 콘서트가 아니다. 당연히 일사불란한 동작, 힘과 단결력을 보여줌으로서 주변 국가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기를 죽이는 겁주기 행사다.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는 국군의 날 행사였다. 시력이 상황에 따라 정상이었다가 장애였다가 하면서 군대도 안 가본 사람이었다. 자식을 없으니 야심한 밤에 아픈 자식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가 본적도 없었을 터이고 교육비에 절절매거나 카드 값 연체되어 고민했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권력을 잡았는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초기에 건설노조를 쥐 잡듯 할 때 과연 얼마나 갈까 싶었다. 얼핏 보면 귀족노조가 와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연 그랬을까. 소나기 잠시 피해가듯 노조가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이를 믿고 그 장단에 춤췄던 건설사들은 후환이 두려워 겉모양만 따르는 시늉만 했지 결국 노조의 끈끈한 조직력은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물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노란 봉투법이 통과 되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고 누가 생각할까. 건설사들의 중대 재해법에 이은 노조의 강행군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게 신중하지 못한 윤대통령의 자기중심적 정치가 빚은 비극이다. 이미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한 민주당 입장에서 옳고 그림이 어디 있으며 지금처럼 윤대통령이 구속되어도 누가 옆에 서있을 것이며 누가 목숨 걸고 편을 들어줄까. 하지만 미국방문 당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연설을 하거나 나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일 때 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야당과 출처도 불분명한 단체들이 사소한 트집까지 물고 늘어지는 걸 보고 저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 터진 것이 계엄령인데 마치 정의의 사도마냥 자신만이 애국의 선봉에서 포효를 질렀다가 지금의 이 꼴이 난 것이다. 아무리 찝적 거리며 뒤통수를 치고 발로 걷어차도 쥐죽은 듯 임기를 마쳤다면, 차기 정권에 반듯한 지도자가 등단하도록 시간을 벌어주었더라면 지금 같은 꼴은 면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박근헤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었을 때 누가 나서던가. 죄가 저 살기 바쁜 꼬락서니를 보고서도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야당 입장에서는 보란 듯이 탄핵 수속을 밟았고 처음에는 그나마 편을 서던 사람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지금 같으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재명 말로는 할 사람이 없어야 맞다. 누가 해도 어떤 트집이든 잡아서 달달 볶는데 누군 든 해낼 수 있을까. 어쨌거나 지금 승자는 이재명이다. 한마디로 가진 자인데 여유가 없다. 설령 윤석열을 풀어주고 어느 정도 살만한 거처나 기본적인 경호라도 해 준다면 국민들이 보는 견해가 어떨까. 지금처럼 개잡듯 탈탈 털어서 주변인들까지 숨도 못쉬게 한다고 더 큰 이득이 있을까. 누가 봐도 정치보복이고 그 정도가 국제사회의 눈이 두려울 정도다. 구속 중에도 수사를 위해 출석하라니 속옷만 입고 버티는 것이나 안한다고 수사관들을 보내서 달랑 들었다 패대기쳤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진위여부를 떠나 개망신이다. 이미 승자가 되어 용상에 앉아 있는 이재명 대통령이 만약 여유 있게 베풀었다면 그런다고 전세가 뒤집어진 이런 상황에 누가 감히 다시 고개를 쳐들까. 전반적인 분위기는 조선시대 역적들이 부패한 왕권을 찬탈하고 이른바 혁명을 일으켜 임금의 주리를 틀고 단두대에 망아니 칼춤을 추게 하는 형국이다. 전쟁이 나도 어느 한쪽이 승리하면 패전국의 장수는 정중히 대우한다. 삼국시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지만 역사를 들춰보면 왕에 대한 예우는 어느 정도 챙겨 주는 것이 관례이자 승자의 여유였다. 만약 남북이 다시 충돌해 김정은이 패전국의 수장이었더라도 기본적인 예우는 해가면서 인권, 독재, 등에 대해 재론의 여지를 갖는 것이 국가 원수였던 자에 대한 기본적인 격식이다. 하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당시 국민의 절반이 넘는 지지도를 보였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지금같은 꼴을 보인다면 과연 이재명 대통령이 존경받을까, 아니면 지금의 여당들이 항변을 하며 난리를 칠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가진 자의 여유가 국민들의 분열을 잠재우고 새 정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진 않을까. 누구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제 3국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민망해서다. 일지이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처사가 아닐까.

국민의 힘이 전당대회를 진행하는 과정에 찬탄과 반탄으로 나뉘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말에 대해 의견이 나누어진 것인데 찬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이고 반탄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탄핵 반대에는 김문수 후보와 장동혁 후보가 탄핵 찬성에는 안철수와 조경태가 같은 당이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미 국민의 힘은 민주당에게 털릴대로 죄다 털렸음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한 배신의 길에서 불과 4명의 후보들이 분열의 정점을 향해 자신들의 소신을 밝혔다. 이미 박근혜 전대통령이 유사한 전철을 밟았음에도 같은 일이 데자뷰를 보듯 번복되었지만 내분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혀지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최초 계엄령을 발표 하고 야당들에게 탄핵 당했을 때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물론 계엄령의 원인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염려들이 몰랐던 국민들을 계몽했다는 이유에서지만 반대로 국민의 힘은 지지도 조사에서 17%대에 머무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민의가 대통령 말은 맞지만 정당에 대한 실망감은 별개의 문제로 다르다는 뜻이다. 지난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선출 때도 그랬고 지난 총선이나 지방선거도 그랬다.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정당이 없어서 선택의 폭이 없어서 소중한 주권이 실표가 될까봐 찍은 것인데 이를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선택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인가 걸핏하면 국민을 팔아먹는다. 국민의 선택이니 국민의 명령이나 하며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민위에 올라타고 군림하면서 국민을 떠받드는 것처럼 표현하고 언론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쓰기 하듯 재생산한다. 이제는 국민들도 제법 유식해졌다. 손안에 들어오는 미디어가 우민정책의 걸림돌이 되었고 최종 판단은 국민들이 한다. 마치 일본의 사회당이 몰락한 것처럼 1975년 중국의 장제스가 사망한 것처럼 부패한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근 전국을 돌며 경선대회를 벌이고 있는 국민의 힘에서 윤대통령 탄핵 찬성을 외치는 것은 아직도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분열이 가져온 비극이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전한길 언론사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배신자”를 연호한 죄로 경징계를 당했다. 배신자를 배신지라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에도 이를 징계절차에 착수하는 것이 국민의 힘 현주소다. 이러니 향후에 어떤 지도자를 선출해도 민주당의 폭주에 감당키 어려운 것이며 과거 군부독재가 재현되지 않는 한 한국정치의 정상궤도는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도 잘해서 지지도가 절반을 넘길까 글쎄 필자의 판단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강성노조, 사회단체 보조금으로 받아먹고 인건비를 챙겨가며 연명하는 시민단체들, 그리고 공무원과 정부미를 받아먹어야 사는 관급업체, 먹이사슬에 포함된 사람들, 이들도 궁핍해지면 판단이 달라진다.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회사가 망해서 노조활동을 할 기업들이 사라져도 그럴까. 정부미의 양이 줄어들고 국민연금이 고갈되어도 그럴 것이며 남녀 간의 갈라치기로 저 출산이 극에 달해 국가는 있어도 국민이 없는 시대에 와도 같은 선택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 보건데 1196년부터 집권한 최씨 무신정권이 1258년 까지 62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권력이 잘해서가 아니라 무지한 백성들이 임금에 대해 기본적인 섬김과 애국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군에 의해 백성들이 피폐함에 극치를 달리던 시기에도 강화도에 숨어 온갖 방법으로 고혈을 빨아 연일 잔치를 벌이던 부패한 권력이었다. 물론 불만을 품은 부하들에 의해 무너졌지만 그러는 동안 백성들의 어려움은 얼마나 심각했을까. 세월이 훌쩍 550년 정도 지난 1806년 병인경화를 통해 안동김씨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소불위의 세력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60년 세도를 기록했던 안동김씨의 힘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다시 220년 정도 지난 2025년 광복이후 수 십 년 동안 공산국가의 이념과 사상이 자본주의 곳곳에 뿌리내리면서 반미 반일, 친중 친북으로 나뉘어 서로 지향하는 방향과 색깔이 달라졌고 결국 정권을 찬탈하려는 노력들이 빈번한 가운데 과거의 백성, 지금의 국민들만 온갖 혈세징수의 호구가 되는 일이 번복됐다. 과거에도 지금도 잘해서 권력의 그늘에 순종한 국민들이 아니라 달리 선택할 방법도 여지도 그럴만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따로 나와 있다. 투명하고 공익에 부합되며 오로지 국민들을 위한 정당, 국민들이 주인이 되어 힘을 갖춘 정당이 창당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 연속되어 창당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타서 기도가 달라붙을 만큼 간절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몇 백배는 더 힘든 시절이 오고 일제 식민지 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을 피부로 겪어 봐야 한다. 그래야 한 방울의 물과 한줄기의 햇빛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유와 자본주의 성장기반이 얼마나 경제적, 문화적 윤택함을 가져오는지를 겪어봐야 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한 측면이 있다. 광복이후 6.25를 겪고 나서 밥술이라도 입에 채울 수 있었던 시기는 1990년도 이후였고 그래봐야 불과 30년도 채 안된다. 어쨌거나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던 기억도 있고 국민각자의 인자는 전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개인기를 갖추고 있다. 지금이야 기반이 무너졌지만 기능올림픽의 재패는 한국이 단연 1등이었고 한글 또한 문자 올림픽에서 항상 금메달이었다. 새로운 정당,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지금의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곧 세상 밖으로 나올 참신하고 통쾌한 공약을 갖춘 정당, 기대해 본다.

각국에서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면전이고 이스라엘과 이란에 이어 인도와 파키스탄도 이판사판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전쟁 외에도 내전은 더욱 심각하다. 상대국이 있으면 무기나 물자, 병력 지원까지 가능하지만 내전은 틀리다. 자칫 내정 간섭으로 몰릴 수 있으므로 아예 바닥을 치기 전까지는 제 3국의 개입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때 베트남이 그러해서 통킹만 사건으로 미군이 빌미를 잡아 전면전으로 확전 된 바 있고 일본 또한 조선의 내분을 빌미삼아 얄타회담에서 신탁통치의 동기를 얻기도 했다. 지금도 전 곳곳에는 내전이 그치지 않고 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 그러하고 1969년부터 57년째 필리핀 정부군과 공산주의자, 지하디스트 단체들이 끊임없이 총질을 해대고 있다. 홍해 일대에서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2014년부터 시작된 내전도 그러하고 물론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며 지난 내전도 만만찮다. 불과 30년 전 르완다 내전으로도 100일 동안 100만 명이 치고 박는 과정에 사망했으며 170년 전인 1850년도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으로 수 천 만 명이 죽임을 당한 바 있다. 이렇듯 총 전쟁은 소리도 나고 피도 나고 보는 눈도 있다. 하지만 돈 전쟁은 다르다. 최근 미국이 전 각국들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좁고 작은 나라에다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한다. 없던 관세도 올렸다 생색내고 내리는가 하면 3500만 달러의 투자금도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한다. 방위비 분담금도 올리고 쌀과 소소기 시장도 개방하라고 압력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은 곧 힘이며 총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된다. 말이 동맹국이지 바다건어 이국땅에서 반쪽만 남은 한반도, 지하자원도 없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온갖 걸 다 달라고 한다.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더 큰 보복이 있을 것이고 달라는 대로 주자니 가랑이가 찢어진다. 차라리 미사일이나 핵폭탄을 맞으면 보는 눈이나 있지 우리의 불행에 누가 감히 나서서 도와주기나 할까 기껏해야 각자 몸보신을 위해 눈치나 볼 정도이니 우리 스스로가 돈을 만들든지 아니면 안주고 버텨가며 자생력을 길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느 누가 미국한테 덤빌 것인가. 피하지 못할 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강자인 미국인 약소국인 한국한테 못할 일이 없듯이 약소국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 미국에기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가서 어떤 국익의 아이템을 챙겨올지 알 수 없으나 외교란 서희가 전쟁을 막고 거란족을 돌려보내듯 상대와 자국 모두에게 좋은 묘수를 짜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이 대한민국을 어디가 예뻐서 챙기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평택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입장에서 볼 때 정박한 대형 항공모함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마치 온갖 생색을 내면서 방위비를 요구하는데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전시 작전권을 양보하면 북한이 금방이라도 쳐 내려 올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영화의 한 대사를 보면 칼 맞은 사람이 찌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 “물론 무섭지 그런데 넌들 내가 안 무섭겠나.” 북한과 남한은 이미 내부적으로 깊숙이 엉켜있다. 외향적으로 군사적 충돌도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도 간첩이 요소마다 짱박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김정은이 자멸을 각오하기 않는 한 전면전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6.25 전쟁 때 연합군과 함께 공산화를 막아주고 그 이후에도 온갖 원조를 해준 것은 사실이다. 원조란 퍼 주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를 토대로 다시 기반을 잡고 성공하는 것도 받는 자의 몫이다. 돌이켜 보건데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을 거치면서 불과 수 십 년 동안 대한민국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국민들은 잔업과 철야를 당연하듯 열심히 했었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살만한 나라를 더 잘기 위해 마무리했던 시절도 있었다. 비단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를 어떤 식으로 정치적 소재로 활용했든 윤석열 대통령이 어설프게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스스로의 매듭을 풀고 있는 것도 모두 잘살아보자고 한 것이다. 노태우 때부터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이었다. 뽑아놓고 흔들면 누군들 버틸까. 이재명 또한 마찬가지다. 지지기반이 어떤 세력이든 부정선거였든 한번 뽑았으면 일하는 거 지켜 라도 봐야할 것인데 지금 국제 정세가 돌아가는 판을 보면 돈 전쟁터의 최 일선에 나가 싸워야할 판이다. 가진 무기가 시원찮다보니 대기업 총수들 줄줄이 달고라도 성과가 있어야 할텐데 대한민국은 현재 돈 전쟁터의 미사일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누가 피해자일까. 총 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이나 돈 전쟁에서 국민들의 피를 짜야할 판이라면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참고로 부자, 중산층, 서민층, 영세민과 노숙자까지 다양한 계층이 얽혀 사는 게 사회다. 미국은 한국보다 거지나 노숙자가 더 많은 나라다. 지하철은 쥐들이 판을 치고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필자가 직접 목격한 현장이고 공원마다 동전 줍는 실버수색대가 용돈벌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동전이 떨어져도 500원짜리가 아니면 줍지도 않는 나라다. 트럼프가 자국 살리려고 한국과 전 국가들을 상대로 관세를 올린다면 이 또한 지구의 경찰로써 횡포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루 궁리는 우리가 해야 한다.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해 내란이라는 주장이 번복되자 나경원 의원이 내란이라는 단어가 만병통치약이냐며 어떤 발언이든 내란과 연계시켜 야당의 주장을 덮으려는 점에 대해 강력한 항변을 이어갔다. 내란, 그동안 민주당이 펼쳐온 각종 장외 촛불집회나 시위를 보면, 노조단체, 시민단체, 때만 되면 특정 이슈를 전제로 나타났다가 다시 흩어지는 이른 바 게릴라식 모임성격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든, 이태원 사건이나 채상병 죽음에 대한 대통령의 대노였든 그것도 아니면 광우병, 후쿠시마 핵 오염수, 든 민주당이 피켓을 들면 대형 깃발과 횃불이 뒤를 이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고 집회내용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거가 없어도 누구하나 어느 언론하나 이를 부각시키는 일은 없었고 그렇게 대한민국 보수정권의 붕괴는 번복했다. 문제는 이른 바 내부총질이 그친 적도 없었고 이는 민주당 중심의 판 뒤집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한번 흩어졌다 다시 뭉친 보수성향의 정치권들은 나름 내부적 식구 챙기기와 특정인 중심의 공천권을 둘러싼 의혹들이 속속 불거져 나왔다. 이러니 좌파성격의 민주당이 아무리 흔들어도 이렇다 할 반박이나 대안제시도 못한 채 공든 탑을 쌓았다가 무너지길 반복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엎치락 뒤치락 했다 치자 이제부터는 판이 다르다. 경제, 국방, 외교는 물론 교육, 언론, 행정과 입법, 사법까지 죄다 장악한 민주당의 폭주에 대해 누구하나 감히 방향전환을 제시할 사람도 단체도 나타나질 않는다 . 뒤늦게 장동혁 국민의 힘 대표가 대구에서 고함을 지르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국민들 대다수는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대서특필한 바 없으며 일부 유튜버들이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가짜뉴스 취급당하며 이에 대한 재갈도 하나 둘씩 준비되고 있다. 일단 사법부의 정상급에 해당하는 검찰청 폐지부터 시작되어 수사권을 경찰에 돌리면 그 경찰은 권력의 시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야당과 일부 전문학자들의 우려다. 대한민국 경제는 외교와 맞물려 있는데 트럼프를 한껏 긁어놓았으니 이에 대한 향후 진행도 염려스러운 것이고 국방 또한 시진핑이 개최하는 열병식에 참석하여 한쪽 구석이나마 자리를 배치 받아 사진이라도 찍었으니 잘 한 건지 못한 건지는 훗날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이러다가는 10월 10일 당 창건 8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 예정인 경축 열병식에도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평화만 유지될 수 있다면 참석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한 것도 해야겠지만 지금까지 북한이 남한을 대하는 태도나 정책이나 주관이 한결같았던가 아니면 비핵화에 대한 작은 의지라도 보여준 적이 있던가. 오히려 국회에서 주적을 북한이라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북한에 위협이라고 말하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역악을 금치 못하는 박충권 의원의 질문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전쟁 발발 시 군작전의 지휘계통에 최상급자인 별들이 하루아침에 교체 되는가 하면 병력 감소에도 첨단 무기로 대치하면 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향후 국방의 위기감을 더해 주고 있다는 전문가의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만 해도 그렇다. 부동산 정책을 하루 전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고 부동산 거품이 줄어들까. 측근에 부동산 관련 직언을 하는 보좌진들이 없거나 있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몇 십번이나 뒤집어 부동산시장을 통째 흔들어놓았는데 더한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다. 퇴직금을 하루아침에 동결시키거나 대출을 묶어서 그나마 집사려는 꿈을 접어야 한다거나 기본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하여 닭장 짓듯이 표장사가 가능한 계층들을 모아놓으려는 것도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 부동산을 시작하나 경제 분야 옭죄기는 건설사들의 중대재해범죄에 대한 강력한 규제, 노란 봉투법으로 대기업의 해외탈출에 이어 외국 자본의 잠식까지 국내 경기는 이미 최악의 종점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는 자영업 시장도 마찬가지다. 급증하는 공실율에 건물주 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최저시급에 대한 법률적 규제, 주 15시간 알바생 들에게도 주휴수당과 연차 유급휴가, 공휴일 유급 휴일등을 근로기준법상 권리 보장을 합법화하고 있다. 당연히 주어진 권리를 찾으려는 근로자와 죽네 사네 겨우 버티던 업체 사장들의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려면 고용인 보다는 근로자의 표가 더 많으니 정책은 지지도를 이끌 수 밖에 없다 연간 약 1조 3,700억 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발생되는데 이는 고스란히 사용자 측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누가생색을 내고 누가 책임을 지느냐 불 보듯 훤한 사실이다. 먹이사슬 구조와 사회전반에 결친 시스템 붕괴의 망가지고 말고는 그 다음 문제다. 이를 당연하듯 장점만 부각하는 언론이고 이제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현 정권의 장점만 인식하다보면 조작, 루머, 선동, 허구, 진실 앞에 드러나는 허상이 더 이상 재조명을 받지 못할 시대에 도래할 소지가 높다. 하지만 극장의 스크린처럼 멋진 영화가 슬라이드 조명만 끄면 은막만 남는 현실이 되어야만 깨닫는다면 그때는 돌이키지 못할 상황에 직면할 것이니 누가 피해자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선거의 공정성인데 보장되지 않으면 하나마나인 선거를 치른들 뭐할까. 그동안 반일은 한국이 일본한테 소비를 해줘서 먹히지만 반미는 우리가 수출을 해야 하므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족상잔에서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국가이고 중국은 우리를 침략한 민족이다. 모두 지난 과거다. 이제 시진핑 한테 뭘 얻을지와 트럼프의 보복이 두려운 시점에 도래했다.

오늘은 579돌을 맞이하는 한글날이다. 이날을 기념하고자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관련 기관들의 헌화가 줄을 잇고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그 뜻을 높이 사고 있다. 한글은 1443 대한민국의 고유문자로 창제된 이후 1446년에 반포 되었으니 579돌이라 칭하는 것인데 컴퓨터나 노트북, 스마트폰 의 가나다라 아야어여에 받침을 달면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과학적 입증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더욱 높이는 잣대가 되고 있다. 앞서 한글날은 1926년 음력 9월 29일 행정안전부가 공식적인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매년 10월 9일을 그 날로 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신하들의 반발과 양반들의 거센 항의를 제치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당시 상황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데 당시 1418년 6월 21살의 나이로 조선 4대 국왕에 즉위한 세종은 백성을 귀히 여긴 대목이 곳곳에 서려있다. 일상생활에서 글을 빼고 말만 하던 백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이 전무하고 그나마 한문을 글로 삼아 득세하던 양반들의 독점이 무지한 백성들을 더더욱 얕잡아보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니 한글이 창제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반대와 항변이 심했는지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그리 어렵게 창제된 한글이 오늘날 전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연승한 것은 글자가 지닌 과학적 표현법이 쓰고 읽기에 잘 만들어진 것이라는데 부인할 민족이 없는 것이다. 2024년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올림픽대회에서 한글이 1위에 등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등 27개 국 의 문자가 겨룬 대회에서 한글은 13년 전인 2011년 제 1회에 이어 연승을 거둔 것이다. 각 국의 학자들은 30여분 씩 자국 고유 문자의 우수성을 발표했는데 문자의 기원, 구조와 유형, 결합능력, 독립성 등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했으며 실용성 응용 개발성 등을 기초로 한 평가에서도 단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세계 문자 올림픽은 쓰기 쉽고 배우기 쉽고 표현을 가장 적나라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평가 기준을 삼고 있다. 2위로는 인도어가 3위로 영어가 뒤를 이었다. 각국의 학자들은 방콕선언문을 발표하고 자국 대학에 한국어전문 학과와 한국어 단기 반을 설치하는 등, 한글 보급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경사인가. 정작 국내 언론에서는 이 같은 낭보를 알리는데 소홀히 하고 있으니 언론이 욕을 먹는 것이다. 반면 한글 보급에 대한 선언문은 인구 100만 명 이상인 국가들과 유네스코에 전달될 계획이라고 한다. 한글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음악 1위에 아리랑,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 1위에 비빔밥이 선정되었으니 한민족의 타고난 슬기와 지혜는 가히 조상대대로 축복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이 세계경제와 군사적 우위를 지니다보니 모든 세계 만국 공통어가 영어로 통한다. 현실적으로 영어를 모르면 국제 사회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으며 과거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거부했던 흥선 대원군 이하응 덕분에 일본이 물질문명에 앞장 선 것이고 그 뒤로 조선이 얼마나 낙후된 역사를 기록했던가. 필자는 브라질연수나 미국을 갔을 때 그리고 독일 세계생활체육연맹 총회나 일본 스포츠 단체를 방문했을 때에도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식하고 무의미한 여정이었는지 직접 체험한 바 있다. 마치 외눈박이 세계에 두 눈을 뜨고 다녀야하는 기분이었다. 그 충격으로 시도 때도 없이 회화를 공부하고 있지만 절실하지 않은 환경은 회화에 대한 익숙함을 허락지 않았다. 이전에도 지금도 필자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한글 고유의 가치에 대해 보존하고 활성화 하고 싶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가 한글로 말장난을 하는 단어들이나 함축된 표현법으로 한글을 훼손하는 일에 대해 강한 반대의사를 표현해 왔다. 특히 정치인들이 선거철이나 기타 의정활동 과정에 글 장난 하는 걸 보면 사회지도층으로서 어찌 저럴까 싶기도 했다. 한글이면 한글, 영어면 영어를 제대로 사용해야지 이도저도 아닌 글 장난을 치는 건 우리 한글을 모욕하는 것이고 영어도 어설픈 것이다. 약소국으로서 강대국의 언어를 거부하는 것 또한 국제사회에서 무모한 짓이다 그러기에 영어도 익혀야 하고 한글은 지켜야 맞는 것이다. 누구 편을 들자는 게 아니라 미국의회에서 유창한 영어로 연설을 하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담화에서 영어한마디 못하던 이재명대통령과 비교되는 것은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보고 있는 눈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절에 가면 나무아비타불로 합장하는 것이 예절이고 교회가면 주기도문이라도 익히는 것이 기본이다. 어찌 일국의 지도자가 초등학생 영어회화 경시대회 실력도 안 되는 수준으로 무식을 지켜왔을까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한테 질문기회를 줘도 영어한마디 못하던 촌극도 있었다. 대세가 그러하니 영어는 익히고 한글은 지켜야 한다. 그리고 우수성이 입증된 만큼 무기나 돈으로 안되는 글자로 세계를 지배하는 도전정신을 발휘해 보았으면 한다. 필자는 세계 생활체육올림픽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서 목적이 달성되면 전 세계 지구촌 인류가 모두 참가하는 대 축제를 벌이고 특설 무대를 만들어 우리 민족 남과 북한만이 할 수 있는 민속경기를 개최하여 40가지도 넘는 경기를 벌일 계획이다. 이미 오징어 게임하나만으로 한류문화를 알린 바 있다. 차전놀이를 비롯해 제기차기, 공깃돌, 닭싸움, 비석치기 등 민속운동 경기의 규칙과 경기방법이 인류의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모든 경기의 홍보는 자연히 될 터이고 사용되는 한글이나 우리말을 고스란히 한글전파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언젠가 한민족이 지구의 종주국이 될 것을 확신한다. 글과 말이 총이나 돈보다 위대하다는 것,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날을 맞이할 후손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 글을 남긴다.

우리 한민족의 조상으로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로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뜻들 펼치기 시작한 날이 10월 3일 개천절이다. 기원전 2333년 10월이나 2025년을 더하면 횟수로 정확이 단기 4358년이다. 하지만 개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거나 역사적 고증으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124년 더 올라간 시점이니 4482년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날이 민족의 출발점으로 거론된 것은 1909년 나철의 대종교에 의해서다 시월 상달 추수로 풍성한 가을이 오는 어느 날 고려나 조선시대에서도 이러한 날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한민족 생일이라는 점은 대의명분을 갖고 있다. 개천절 노래 가사에서도 우리가 물이라면 출발한 샘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을진대 이 나라 한 아바님은 단군이라고 명시했다. 개천절과 관련된 행사는 국경일이니 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기념행사가 있었다. 사단법인 국학원이 앞장서고 있고 정부에서도 공식행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만 존재한다는 기독교의 실표가 무서워 대통령이 정식으로 참석한 적이 없으며 민족의 조상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표리부동의 자세가 정부의 입장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종교 박물관이다. 크리스마스 때 성탄절 분위기와 석가탄신일 거리마다 내걸린 연등을 보지 않았던가 과연 개천절 누가 감히 그런 이벤트를 할 것이며 한들 먹힐 것이며 먹힌들 지속적으로 유지 될까. 필자는 개천절 개천 대제를 수차례 지내본바 잘해야 행사 식순에 포함된 가수들이 노래를 들으러 온 것이며 행사 끝나고 경품추첨에 관심을 가질 뿐 그나마 없었으면 끝까지 남아있을 관객도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과거에 개천대제는 하늘의 아들 즉 전차만이 지낸다고 했다. 푸른색 한복을 입고 온갖 과실과 술과 제수음식을 재단에 올려놓고 국태민안 태평성대를 바라는 기도문을 읋조리다 보면 큰절로 예를 표하고 때로는 연등을 띄워 소원을 빌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일각에서는 비웃기도하고 먼 발치서 지켜보기도 하며 때로는 사진이라도 찍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기를 한해 두해 하다가 언젠가부터 강원도 태백산 천제 단을 찾아 같은 대제를 지냈는데 그나마 국립공원을 지정되고 나서는 미신타파라는 명분으로 아무나 천제 단에서 대제를 지닐 수 없게 됐다. 해당 지자체 단체장이나 되어야 기자들과 행사관계자들을 대동하여 개천절 행사를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후손들의 발전을 바래는 진정한 기도는 유튜브 “덕암 스토리 개천절”을 치면 여러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한해를 넘기는 새해에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뎌가며 일출에 맞춰 기도문을 올렸고 때로는 해당 지역 지자체 단체장과 함께 기도문을 읽기도 했다. 개천절은 본디 하늘이 열린 날이라 신성한 축하받으며 온 국민이 함께 절하고 춤을 추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 어떤 일이 있었던가 광화문에는 젊은 청년들을 비롯해 종교단체, 정당 정치인 등 수 만 명의 군중들이 거리로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언론에서는 방송조차 하지 않고 짧은 단신으로 보도되었지만 해당 장소에는 많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은 동맹국인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를 자극했고 책임지지도 못할 협상금을 제시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중대 재해 사업법으로 건설현장을 죄다 마비시키고 그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이어져 왔음에도 하루아침에 수 백 만명을 실업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포스코이앤시 103곳 대우건설 105곳 dl 건설 40곳 굴지의 건설사 중대재해 248곳의 공사현장이 멈췄다. 이유는 바로 대통령이 밀어부친 산재와의 전쟁이고 피해는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까지 생계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건설업은 멈출 경우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협력업체는 대금 못 받고 경제적 손실은 약 4000억 원에 육박하며 유휴인건비나 기타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수준이다. 이번 사태로 중단된 포스코는 21,297명 대우건설17963명 dl 8028 명 등 약 49,248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대기업 정규직 말고 하청 업체 직원들이나 일용노동자까지 합한다면 파장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이 단독주택 짓는 것도 아니고 국책사업이나 기타 입주일자가 임박한 아파트 현장 등 다양한 분야까지 감안한다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물론 집회 목적은 노란 봉투법으로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나 대북 관련 각종 경비태세를 약화시키는 안보문제, 검찰청 폐지로 인한 강력범죄의 기승, 미군철수로 인한 남북 간의 전쟁 긴장상승 분위기, 최근 정친과 연계되어 살벌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수사, 중국인들의 무비자 입국으로 인한 실체 파악의 필요성, 국가 정보자원관리국의 화재로 인해 파악차 할 수 없는 현실 등을 손꼽았다. 이쯤되면 퇴직금 동결로 연금실행, 대출금지로 인한 부동산시장 위축, 자영업자들에 대한 강력한 근로기준법 적용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경축할 분위기가 사라지고 땅에서는 국민들이 죽어라 목 놓아 소리치고 있다 이러니 필자는 하늘도 땅도 어지러운 날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본디 어찌해야 하는지를 논하자면 이러하다 개천절은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어깨춤을 덩실 추며 기뻐해야 마땅하고 이처럼 성스러운 날 광화문 광장은 축하 잔치가 벌어져야 마땅하다. 개천절에는 상스러운 말이나 퍼포먼스도 삼가야 하고 성탄절과 석가 탄신일을 합한 것보다 더 성대한 잔치가 전국 지방마다 벌어져야 마땅하다 그러함에도 미신숭배라며 비난하고 시위와 집회로 얼룩지니 이 어찌 하늘도 땅도 어지러운 날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조차 지실까 1536년 태어나 1593년 고작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지은 시조다. 요즘 평균연령으로 치자면 노인도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 노인의 마음을 읽고 지은 것이 된다. 하지만 어쩌랴 현재의 노인들은 기초연금에 그나마 학교 앞 학생들의 등교시간에 맞워 깃발이라도 들어야 몇 푼 더 받을 수 있으니 대한민국 노인들의 현 주소다. 한때 대한민국 발전에 온 몸을 다 받쳐 노력하고 5남매 심지어 9남매를 길러가며 인재양성의 실질적 바탕이 되었던 노인들이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는 현실은 더 늦추지 말고 개선방안이 나와야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노인학대 신고 중 아들 이 55% 며느리가 14% 딸이 12%나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집안에서 알게 모르게 부모님 학대가 있었다는 것인데 젊은 것들이 제 생각과 다르다고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문제다. 비록 몸은 늙어서 힘이 없고 제대 씻지 않으면 냄새가 날수도 있고 돈을 못 버니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경험이요 지극한 사랑이고 자나 깨나 걱정하는 염려다. 노인이 날 때 부터 노인이 아니고 지금 젊은이들 또한 머잖아 노인이 될 터인데 어찌 현재의 노인만 노인이라 칭할까 너무 괄시하지 않아도 곧 고인이 될 것이며 북망산천 가보면 먼저 간자나 나중 온자나 거기서 거기다. 각설하고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앞서 6월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노인의 날과 학대예방의 날이 정해졌을까. 노인학대는 남도 아닌 부부간의 문제도 심각하다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학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성이 학대 받는 경우도 만만찮다. 약 88%가 할아버지 뒷수발에 인격모독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인데 자손들 부끄러워 이혼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은 초 고령 시대에 접어들어 저 출산과 맞물리면서 평균연령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관공서, 일선 매장, 공공기관에 노인들의 취업이 급속히 확산될 것이다 이미 일본이 그러하고 전 세계적인 추세다. 노인이란 말 그대로 늙은 사람인데 늙고 젊음의 차이는 시간이 결정하는 것이며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난 사람은 인류역사상 그 누구도 없었다. 어떤 의학박사는 첨단 의료의 발달로 영생이 가능하다했고 어떤 종교지도자는 죽어도 영원히 사는 세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윤회설을 주장하며 있는 돈 없는 돈 다 갖다 바치라고도 했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을 뿐이며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에 불로초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빠르지도 늦추지도 않게 정확한 초침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자식이나 이웃이나 지인이나 기타 주변인들이 괄시를 하든 떠받들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인 스스로가 남은 삶을 귀하게 여기며 시간의 흐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 먹고 배설하는 것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볼일이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숨 쉬는 날까지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살다보면 가장 필요한 게 돈이고 그나마 뼈 빠지게 땀 흘려 번 돈은 이미 말만 번지르르 하던 자식한데 다 털리고 난 뒤라 누구에게 무슨 염치로 신세를 질까. 자식인들 제 맘대로 할 것이며 며느리나 딸자식의 사위가 필요하다는데 필요한때 주지 않았다가 돌아올 원망도 그러하거니와 죽어 가져갈 것도 아닐진대 움켜쥔들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러니 장례식장에서 만난 자식들이 불과 1억 원도 안 되는 유산 갖고 소송을 하는가하면 피터지게 싸우기 마련이다. 이미 그러한 장면은 문상객들 눈만 없다면 집집마다 멱살잡이가 벌어지고도 남음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있는 돈이라면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줘도 욕먹고 안줘도 욕 먹는게 유산이며 노인의 날 노인을 위해 줄 사람은 노인복지라며 생색만 내고 빈껍데기인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인도 아니요 낳고 길러주고 가르치고 출가까지 시킨 자식은 더더욱 아니며 요양병원의 간병인이나 온갖 검사한답시고 X레이, MRI, CT 찍어대며 의료수가를 올리는 의사도 아니고 빈손으로 찾아오는 친구도 아니다. 어릴 때 자라던 혈육도 아니며 겪 없던 동창생이나 사촌 육촌 형제도 아닌 것이다. 오직 각자의 건강을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할 때 그나마 덜 추한 것일진대 나이 먹고도 부끄러울 줄 모르고 여기저기 손 벌리거나 단체 활동에 끼어들어 기념 수건이라도 챙기려는 추함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가을이 괜히 가을이며 겨울이 괜히 겨울 이던가 한여름 푸르렀으면 조금씩 내려놓으라고 낙엽으로 변케 한 것이고 간혹 푸른 잎 유지하다가 폭설이라도 오면 그 무게 못 이겨 가지째 부러지니 자연의 이치란 참으로 사소한 것 하나까지 그럴만한 이유를 품고 있음이다. 태어나서 성년이 되고 나니 남자는 군대에 가고 여자는 조신하게 신부수업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해도 결혼하여 자식 낳고 보면 금새 마흔 되고 오십 되니 실제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은 그리 많이 않다. 어디 그 뿐인가 자식이 원수라는 말이 괜히 있으며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도 괜히 있지는 않은 듯 싶다. 살아도 죽은 것이나 진배없이 침상에 누워 세월을 보낸 들 숨만 쉬는 것이지 대소변 남에게 맡긴 이상 건강수명이 아니라 생존수명일 뿐이다. 그러니 결국 퇴직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인의 수명은 불과 10년 남짓하다 머리맡에 약봉지만 수두룩하니 젊었을 때 생각이나 했을까.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니 건강 수명 살면서 노인취급 당한다면 삶이 너무 짧지 않을까.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될 수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 작금의 시기에 되새겨지는 의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비단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역사왜곡도 문제겠지만 국정농단을 두고 견해의 차이를 넘어 이념의 갈등까지 빚어지는 작금의 행태는 한국의 미래가 참으로 암울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연일 속보로 쏟아내는 메이저 언론사들의 장단에 춤추는 여론은 두 패로 갈라진 국민들을 더욱 선명하게 분열시키고 어느 한쪽과 뜻이 같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는 갈수록 심각성을 드러낸다. 망명정부의 애국 열사들과 전쟁터의 순국선열들이 이러라고 목숨 걸고 나라를 찾으려 애썼단 말인가. 숱한 침탈의 역사를 겪은 끝에 되찾은 국권을 정치권의 당리당략의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지, 공백날지 모르는 대권주자의 자리가 어부지리로 얻어질 동네 반장쯤으로 여기는지 아연실색할 뿐이다. 예상되는 대선후보자들의 주장이 그렇고, 마치 대통령당선자가 정해진 것 마냥 여론을 주도하는 일부 매체들이 그렇다. 아직도 국민을 호구로 아는 분위기다. 이럴 에너지가 있다면 국경일 행사라도 제대로 치르는 게 먼저가신 호국영령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본보는 해마다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개최, 운영해 온바 있다. 행사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고 재능기부로 애국심을 불살랐던 가수, 연극인, 교향악단은 물론 군악대까지 망설임 없이 함께 했다. 하지만 해마다 치르던 국경일 행사가 전격 중단된 이유는 갑자기 사라진 관객들이다. 종교단체, 봉사단체, 등 어느 한곳도 참석여부가 없다보니 행사개최에 대한 여지가 함께 증발했다. 쉬는 날 귀찮게 하지 말라는 답변과 함께 일부 교회에서는 미친 짓 말고 기도나 하라는 반응이다. 시민들의 반응이 냉담해진 이유 중 하나가 이기심이나 무관심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국정에 대한 실망감이라면 이는 실로 심각한 현상이다.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많은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 받은 날이고 우리 민족을 찬탈하고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천황의 아들 왕세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을 기념으로 네덜란드 군인들의 배낭을 선물하면서 시작된 란도셀 가방은 한국 중산층 자녀들의 필수품이 됐다. 개당 100만원을 호가하면서도 없어서 못 팔 만큼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반면 국내 가방제조사들은 그만큼 수요가 줄면서 곤경위기에 처해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도 미래도 지배한다는 말이 두려운 시기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떠나며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라는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 우리고유의 영토인 대마도까지 지배하고도 독도를 넘보는 침탈행위에 전 국민이 앞장서서 현대판 강강수월래인 독도플래시 몹을 추며 우리땅 임을 몸으로 익히며 새겨야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나라사랑에 대한 작은 참여와 관심이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는 소중한 선물이자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을....위안부소녀상을 애물단지 여기듯 함부로 여기는 일본정부의 자세에 대해 한일관계개선을 명분으로 피할게 아니라 나치 전범처리과정의 백분의 일이라도 밟아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조차 눈치보는 친일청산, 아직도 권력 깊숙이 자리하며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기득권의 중심이 바뀌지 않는 한 조선은 백년 아니 이백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경기 서남부권 서해안의 거점도시 안산이 민민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안산시의 중심지 화랑유원지내 416안전공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납골당 유치를 추진하고 이를 적극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항변은 고요속의 외침으로 그치고 있다. 안전공원을 찬성하는 416연대라는 단체와 장소를 변경해 달라는 화랑지킴이와의 대립은 자칫 민간단체와의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정작 내면에는 안산시민의 절대 행복이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 종교 기타 사익을 떠나 오로지 안산의 발전을 추구하겠다며 공익적 목적으로 위해 결성된 화랑지킴이는 지난 2017년 2월 20일 결성된 이래 2019년 9월 2일 현재까지 안산시청 앞에서 매주 월요일 129차례 집회를 통해 시민의 뜻을 대변해 왔다. 국무조정실과 해양수산부로 구성된 416안전공원 건립은 2016년부터 상징적인 건축물을 구상,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현재 건립 초읽기에 와 있으며 70만 안산시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부가 주도한 일방적인 졸속행정 절차를 거쳐왔다. 문제는 이 같은 납골당이 안전공원이라는 명칭으로 안산시의 중심인 화랑유원지에 건립될 경우 향후 10년, 100년이 지나도 안전의식강화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보다는 도심지 내 무거운 분위기의 건축물로 남을 것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화랑지킴이는 사전에 유치장소를 시 외곽으로 정해줄 것을 요구 했지만 2019년 8월 28일에도 안산시가 초지 역세권을 개발하겠다며 공식적인 설명회까지 가진 입지임에도 여전히 정부 주도의 추진은 정해진 순서를 밟고 있다. 안산의 심장부가 되어야할 명소가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진행되는 416 안전공원의 청사진은 이제 수면위로 드러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윤화섭 안산시장의 입장은 진퇴양난이다. 현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사업이다 보니 해당 정당소속 국회의원, 도·시의원은 물론 야당 정치인들까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안산의 미래발전을 위한다는 기관단체나 민의를 대변해 야할 NGO단체 또한 침묵내지는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자치단체로써 향후 유지 관리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 대해 이의제기조차 못하는 안산시의 입장은 훗날 뭐라 대변할 것인지 대략난감이다. 현 촛불정권 창출의 불씨가 된 세월호 참사는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화랑유원지 납골당 추진은 어떤 정치인이나 NGO단체도 거부하지 못하는 초법적인 세월호 특별법이 적용되어 관련법률 제정의 취지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지만 감히 누가 반대의 의사표명을 할 것인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격이다. 현재 화랑지킴이는 그 어떤 분들보다 유족들의 뜻을 존중하며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의 안전의식고취에 바로미터가 되어 같은 일이 번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시 외곽에 416안전공원을 건립하여 망자들이나 유족은 물론 안산시민들까지 함께 추모하는 안전의 성지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칫 현 정권창출의 전리품으로 안산시민들의 희생이 요구된다면 공사 착공부터 시민들의 전면적인 반대에 직면할 것이 불보듯 뻔한 순서다. 시민들이 찬반으로 대립하고 있는 시점, 누가 이 사태를 책임질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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