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방법이
2025.11.27 04:33:49
국민의 힘이 전당대회를 진행하는 과정에 찬탄과 반탄으로 나뉘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말에 대해 의견이 나누어진 것인데 찬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이고 반탄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탄핵 반대에는 김문수 후보와 장동혁 후보가 탄핵 찬성에는 안철수와 조경태가 같은 당이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미 국민의 힘은 민주당에게 털릴대로 죄다 털렸음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한 배신의 길에서 불과 4명의 후보들이 분열의 정점을 향해 자신들의 소신을 밝혔다.
이미 박근혜 전대통령이 유사한 전철을 밟았음에도 같은 일이 데자뷰를 보듯 번복되었지만 내분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혀지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최초 계엄령을 발표 하고 야당들에게 탄핵 당했을 때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물론 계엄령의 원인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염려들이 몰랐던 국민들을 계몽했다는 이유에서지만 반대로 국민의 힘은 지지도 조사에서 17%대에 머무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민의가 대통령 말은 맞지만 정당에 대한 실망감은 별개의 문제로 다르다는 뜻이다. 지난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선출 때도 그랬고 지난 총선이나 지방선거도 그랬다.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정당이 없어서 선택의 폭이 없어서 소중한 주권이 실표가 될까봐 찍은 것인데 이를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선택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인가 걸핏하면 국민을 팔아먹는다. 국민의 선택이니 국민의 명령이나 하며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민위에 올라타고 군림하면서 국민을 떠받드는 것처럼 표현하고 언론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쓰기 하듯 재생산한다. 이제는 국민들도 제법 유식해졌다. 손안에 들어오는 미디어가 우민정책의 걸림돌이 되었고 최종 판단은 국민들이 한다.
마치 일본의 사회당이 몰락한 것처럼 1975년 중국의 장제스가 사망한 것처럼 부패한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근 전국을 돌며 경선대회를 벌이고 있는 국민의 힘에서 윤대통령 탄핵 찬성을 외치는 것은 아직도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분열이 가져온 비극이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전한길 언론사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배신자”를 연호한 죄로 경징계를 당했다. 배신자를 배신지라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에도 이를 징계절차에 착수하는 것이 국민의 힘 현주소다.
이러니 향후에 어떤 지도자를 선출해도 민주당의 폭주에 감당키 어려운 것이며 과거 군부독재가 재현되지 않는 한 한국정치의 정상궤도는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도 잘해서 지지도가 절반을 넘길까 글쎄 필자의 판단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강성노조, 사회단체 보조금으로 받아먹고 인건비를 챙겨가며 연명하는 시민단체들, 그리고 공무원과 정부미를 받아먹어야 사는 관급업체, 먹이사슬에 포함된 사람들, 이들도 궁핍해지면 판단이 달라진다.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회사가 망해서 노조활동을 할 기업들이 사라져도 그럴까.
정부미의 양이 줄어들고 국민연금이 고갈되어도 그럴 것이며 남녀 간의 갈라치기로 저 출산이 극에 달해 국가는 있어도 국민이 없는 시대에 와도 같은 선택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 보건데 1196년부터 집권한 최씨 무신정권이 1258년 까지 62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권력이 잘해서가 아니라 무지한 백성들이 임금에 대해 기본적인 섬김과 애국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군에 의해 백성들이 피폐함에 극치를 달리던 시기에도 강화도에 숨어 온갖 방법으로 고혈을 빨아 연일 잔치를 벌이던 부패한 권력이었다.
물론 불만을 품은 부하들에 의해 무너졌지만 그러는 동안 백성들의 어려움은 얼마나 심각했을까. 세월이 훌쩍 550년 정도 지난 1806년 병인경화를 통해 안동김씨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소불위의 세력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60년 세도를 기록했던 안동김씨의 힘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다시 220년 정도 지난 2025년 광복이후 수 십 년 동안 공산국가의 이념과 사상이 자본주의 곳곳에 뿌리내리면서 반미 반일, 친중 친북으로 나뉘어 서로 지향하는 방향과 색깔이 달라졌고 결국 정권을 찬탈하려는 노력들이 빈번한 가운데 과거의 백성, 지금의 국민들만 온갖 혈세징수의 호구가 되는 일이 번복됐다.
과거에도 지금도 잘해서 권력의 그늘에 순종한 국민들이 아니라 달리 선택할 방법도 여지도 그럴만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따로 나와 있다. 투명하고 공익에 부합되며 오로지 국민들을 위한 정당, 국민들이 주인이 되어 힘을 갖춘 정당이 창당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 연속되어 창당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타서 기도가 달라붙을 만큼 간절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몇 백배는 더 힘든 시절이 오고 일제 식민지 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을 피부로 겪어 봐야 한다.
그래야 한 방울의 물과 한줄기의 햇빛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유와 자본주의 성장기반이 얼마나 경제적, 문화적 윤택함을 가져오는지를 겪어봐야 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한 측면이 있다. 광복이후 6.25를 겪고 나서 밥술이라도 입에 채울 수 있었던 시기는 1990년도 이후였고 그래봐야 불과 30년도 채 안된다.
어쨌거나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던 기억도 있고 국민각자의 인자는 전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개인기를 갖추고 있다. 지금이야 기반이 무너졌지만 기능올림픽의 재패는 한국이 단연 1등이었고 한글 또한 문자 올림픽에서 항상 금메달이었다.
새로운 정당,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지금의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곧 세상 밖으로 나올 참신하고 통쾌한 공약을 갖춘 정당, 기대해 본다.

hyunsur s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