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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 칼럼 문화 예술 체육의 가치와 역할

문화라는 단어에는 총체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예술도 마찬가지고 체육은 더더욱 그러하다. 먼저 문화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향유하고 지켜 가야할 지적 자산이자 특징이며 고유의 색깔이다. 그러므로 유지관리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으나 주체는 국민이다. 물론 여기에는 올바른 방향을 안내할 언론의 역할도 크다. 선진국일수로 문화수준도 높아지는 것이고 시민정신이나 기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반 상승되는 것이며 기성세대나 다음 세대들에게 더 없는 삶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인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예술가든지 뛰어난 자질과 열정이 빚어낸 창작 세계를 의미한다. 비단 눈에 보이는 그림이나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는 음악이나 건축물, 기타 모든 창작물이 여기에 속한다. 끝으로 체육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기록보존, 유지 관리하여 작게는 소규모 집단 크게는 국가 간 공통적인 룰을 정해 일정한 시기에 함께 향유하는 본능적 우월감을 채우는 장르다. 이 3가지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초월하여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요건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서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문화 예술 체육을 만들었고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바램은 지금도, 앞으로도 보다 폭 넓은 비젼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를 위한 예산만 낭비하고 실체는 정체되거나 퇴보 한다면 어째야 할까. 당연히 다시 재정립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기능을 살려야 맞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은 필자가 지난 수 십 년 문화 예술 체육을 취재하며 확인한 대한민국의 현실적 상황을 정리한 것이지 AI를 이용하거나 백과사전에 적시된 내용이 아니다. 물론 문제지적에는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모습인데 무 관중 무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거리두기로 안방극장이 후끈 달아올랐던 시기, 트롯 열풍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나머지 모든 음악을 평정해 버렸다. 동요, 민요, 가곡, 성악, 등 모든 분야의 음악은 물론 종사했거나 무대를 사랑했던 무명가수와 극단, 합주단, 심지어 예술단까지 설자리를 잃었다. 관련 산업도 사양길을 걸었다. 조명, 음향, 동네소극장까지 하나 둘씩 국민들의 선택에서 멀어졌다. 명문대 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성악가들이 무대, 관객, 배우라는 3대 요소에서 외롭게 혼자 남았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은 화려한 조명과 막강한 무대설치, 현란한 방송사의 각본대로 미쳐가고 있었고 기존의 가수들이나 무대 주인공들에 대한 비중은 그만큼 편향되게 쏠림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미술 세계도 마찬가지다. 경매시장도 얼어붙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활성화 되었던 미술작품의 주인공인 화가들이 개인전이나 정기전시회를 열었지만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어디 문화 예술뿐일까 체육 또한 부패와 예산낭비로 정부와 체육단체간의 갈등이 심화된 시기가 있었다. 년 간 수 천 억 원대의 예산으로 원로 체육단체장들의 자리다툼과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정작 경기장에서 뛰어야할 선수들은 뒷전이었다. 프로 선수들은 오로지 신기록 수립이나 금메달이 아니면 선수생명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기껏해야 일선 학교 체육교사나 개인 체육관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아마추어 체육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묶은 다음 사장된 국민들의 생활체육은 지자체장의 홍보무대로 전락했다.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뿌려가며 각 지자체 마다 경기를 개최하지만 보도 자료를 보면 대부분 현직 단체장들의 생색내기와 지역 언론사들에게 배포 되는 홍보사진이 전부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빚은 참사중 하나다. 이제 함께 모여 먹던 음식도 혼자서 배달음식으로 채우니 마치 닭장의 닭들이 사료 먹는 풍경이나 진배없고 너도나도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다른 것은 쳐다도 볼 줄 모르는 시대에 도래했다. 그렇게 생활체육은 일부 유명인사들의 잔치 마당으로 전락했으며 정작 건강한 체육활동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기껏해야 공원을 산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어쩌다 이 나라 국민들의 문화예술 체육이 이토록 황무지 나락으로 떨어졌던가. 문제는 종점이 사라지면 출발점도 동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가봐야 결론이 자명한데 누가 애써 길을 걷겠는가.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를 굳이 걸어간다면 시대에도 동떨어질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시나 소설 같은 창작세계도 AI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며 굳이 비젼도 없는 문화 예술 분야보다 돈이 되는 의대나 법대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본능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윤택함이 인간성을 타 넘어서도 안 되고 돈이 법을 사고파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미 그러한 마지노선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지키고자하는 국민적 의지와 작은 노력들이 병행된다면 다시 찬란한 문화 예술은 조금씩 원상 복구되고 계승 발전되어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영역이 확대될 것이라 믿는다. 대안이라면 그릇 만드는 공장에서 시간당 수 백 개씩 찍어내는 사기그릇과 도자기가 같지 않은 것이며 의류제조 업체에서 수 백 벌씩 생산하는 양복과 개인의 신체치수를 재어 꼭 맞는 양복을 만드는 것과 다른 이치다. 문화 예술 체육이 왜 발전되어야 하는지와 어떻게 해야 균형 있게 온 국민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금씩 망각한 3가지 분야는 이제 필요성과 중요성까지 누구하나 나서지 않는다. 원인을 알면 개선의 여지도 생긴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 발전 목적이 후대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게 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개선이 여지도 남아있고 모든 장르에서 발전시켜야할 재능과 끼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냥두면 퇴화되지만 자꾸 사용하면 향상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자 능력이다. 필자가 대한생활체육회를 설립한지 4년이 지났다. 건강한 국민이 행복의 우선조건이며 모두 각기 다른 재능을 발굴하여 생활체육을 일상화 하는 것, 애국의 실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후 7일날, 50명의 대한생활체육회 임원들이 1박 2일로 포항을 출발, 독도를 향한다. 나라사랑의 실천이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큰 계획의 완성또한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는 만큼 온 국민이 함께 건강한 미래를 지향한다.

덕암 칼럼 문화 예술 체육의 가치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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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암 칼럼 피할 수 없는 건 죽음과 세금
    덕암 칼럼 피할 수 없는 건 죽음과 세금

    사람이 살면서 사회를 구성하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도 갖겠지만 버금가는 의무도 따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금인데 세금과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디 국가에 내는 국세나 지방관청에 내는 지방세 말고도 주변을 돌아보면 돈을 내야 유지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운영과정이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학교의 교실에서도 학급 반장이 학급비를 거둬 공금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동창회에서도 회비를 내야 참석할 수 있다. 따라서 나라에 내는 세금은 부과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나 내야 하는 주민세부터 재산을 남기면 증여세, 물려주면 상속세, 갑근세,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법인세, 물건사면 취득세, 팔면 양도소득세, 이익이 생기면 사업소득세, 등 세금 종류만 해도 수 십 가지가 넘는다. 문제는 법대로 내면 그만인데 그렇게 했다가 세금 내다 볼일 다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무서에 신고하는 방식이 서투르면 대행하는 것이 세무사다. 세법을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 아니 절세하는 방법도 알고 심지어 탈세하는 방법도 안다. 기업주나 사업자 입장 에서는 세무사 관련 장부 기장료를 주더라고 그게 더 싸게 먹히니 맡기는 것이다. 탈세는 불법이지만 돈이 없어 못 내는 체납은 가산세만 더 내면 된다. 세금을 내고 싶어도 못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있으면서도 아까워서 안 내는 사람이 있으니 체납에 대한 가산세가 붙는 것이다. 만약 가산세가 없다면 쓸 거 다 쓰고 남아야 낼테니 어쩌면 당연한 부과인지도 모른다. 이쯤하고 세금은 걷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걷는 것 못지않게 쓰는게 중요하다. 만약 정치인들에게 급여를 대폭 줄이고 공권력도 줄이고 분야별 업무만 준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자리 차지 못해서 안달일까. 일단 입성하면 온갖 갑질에다 거둔 세금으로 자신이 입지를 높이려는데 분탕질을 해대니 한번 권력을 잡으면 일명 기득권을 차지하여 온갖 방법으로 2선, 3선 심지어 5선까지 해 먹고도 모자라 정부 공기업으로 낙하산 타고 내려가 버티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자유로운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박수 칠 때 떠나거나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야 후배들의 진출 길도 열리며 그렇게 은퇴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인데 욕심이 끝도 없다. 어쨌거나 죽을 때 까지 해 처먹으려고 국회의원들 국무위원으로 임명하여 한평생 연금타 먹게 하려는 것이다. 입법기관의 구성원이 행정기관의 장이 되어 양다리를 걸치니 국회에서 진행하는 청문회나 행정감사는 하나 마나인 것이며 동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들 얼마나 할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런 폐단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알아서 해먹는 걸 뭐라 하는게 아니라 정작 그 자리에 와야 할 인재들이 발도 못 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깜도 안되는 장관들 임명했다가 야당의 인신공격은 물론 케케묵은 자녀들 문제까지 들먹이며 국민들 염장을 지르다 중도하차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자고로 세금은 걷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에 어떤 명분으로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령 천문학적 예산으로 국책사업을 벌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해 방치된 현장들이 한 둘 이던가. 이용률이 저조한 공항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럭 파헤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낭비 사례를 열거하면 지면으로 수 십 장을 써도 모자랄 판이니 이쯤하고 오늘은 1973년 3월 24일 제정한 납세자의 날로서 국세청이 발족한 날이다. 당초 조세의 날이었는데 2000부터 납세자의 날로 변경됐으니 53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날은 모범납세자를 선정하여 포상을 주는가 하면 포상 수상자에게는 2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해주는 혜택도 부여한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세무조사 면제인데 3년째는 할 수 있다는 전제가 나온다. 세무조사,,,,,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주체 즉,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 중소 기업 대기업 등 사업자등록을 하고 수익을 위해 운영하는 모든 사람은 매출 대비 매입자료를 준비하고 분기별 부가세 신고 이듬해 종합 소득세 신고 등 납세조건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한다. 제 아무리 대단한 사업체라도 세무조사라는 4글자 앞에 벌벌 떠는 것은 법대로 하기에 참으로 어렵다는 뜻인데 안걸리면 다행이고 여차하다 걸리면 이른바 대통령이 흔히 쓰는 단어중 하나인 패가망신 당하는 수가 있다. 검찰보다 더 무서운 세무조사, 고의적 탈세가 아니더라도 실수로 놓친 신고금액은 고스란히 탈세로 몰릴 수가 있으니 사업하는 것 못지 않게 세무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신고를 잘해도 사업 이란게 운영하다 보면 적자가 나거나 미처 세금을 다 내지 못해 제때 내지 못해 밀릴수가 있다. 물론 없어서 못 냈더라도 밀린 만큼 가산세가 붙고 적용이율이나 고지 여부는 사인 간의 거래가 아닌 만큼 융통성이나 조절이 없다. 이후 절차는 징수에 관한 방법인데 여기서 개인적인 사정이나 형편은 납부와 무관하다. 일단 금융권 압류는 기본이고 부동산 압류, 자동차는 물론 각종 금융상품, 채권 등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재산권을 대상으로 한다. 야밤에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여 체납 차량을 찾아내는가 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에서 체납 차량을 수배하여 번호판을 떼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어 명사 중에는 가렴주구라는 말이 있다.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가혹하게 억지로 거두어 백성들의 재물을 무리하게 빼앗는 일을 뜻하는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앙관청은 물론 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토호세력이 백성들을 착취했던 흔적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시대에는 본전 뽑으려는 과정에 또 얼마나 백성들의 피폐함이 성행했던가. 지금은 안 그런가 공천을 돈으로 받아 권좌에 오르면 온갖 재주껏 빼먹는 일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지만 그 돈이 엉뚱한데 샌다면 왠지 뺐기는 기분이든다. 그래서는 안된다. 편성된 예산은 집행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쓰였는지 관리 감독이 중요하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 	덕암 칼럼 한일간의 독도는
    덕암 칼럼 한일간의 독도는

    언제부턴가 일본이 독도영유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거론하면서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양국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며 싸우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으나 독도는 분명한 대한민국 영토다. 그러함에도 분쟁 거리로 만드는 것은 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에서일까 아니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보일까. 잊을만 하다가도 매년 다케시마의 날을 정해 일본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다양한 방면에서 한일간의 협력에 초를 치는 쟁점으로 부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도 분쟁문제는 거론 자체가 문제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 헛소리를 하는 일본 정부는 정작 잊을만한 시간이 지난 임진왜란과 식민지 시절까지 되새기게 만든다. 말이 이웃 나라지 그동안 온갖 굿은 짓을 다해 온걸 자꾸 찝쩍 거려서 좋을게 없을진대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판단이 든다. 어디 필자 뿐일까. 조선이라는 약소국이 한때 2차 대전까지 일으킨 강대국에게 그동안 당했던 아픈 역사가 아직도 생생한데 입장 바꿔 대한민국이 일본으로 쳐들어가 점령군의 다양한 횡포를 벌였다고 해도 이럴수 있을까. 양국은 그동안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에서 아픈 역사를 기록한 바 있다. 몽골족이 조선을 침략하여 온갖 수탈을 일삼아도 견뎌왔고 중국에서 수 백년 쳐들어 와도 무던히도 참아온 과거가 있었다. 사람이란 잘 참다가도 어떤 계기가 생기면 과거 본전 생각이 날 터인데 작금의 일본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외교적인 분야에서 늘 앞뒤가 다른 처사로 공분을 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집권 여당의 압도적인 총선 대승 이후에도 한국과의 협력 의지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일 외교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22일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자칭 '다케시마의 날' 행사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기간 다카이치 총리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장관급 정부 인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케시마의 날에 당당히 장관이 가야 좋지 않겠느냐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다 2025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정부 대표와 관련해서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한 수 낮춘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 참석을 보류하고, 예년대로 정무관급을 파견할 것으로 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일본 정부가 장관급을 보낼 경우 한일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이 불가피한 만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당초 일본은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조례안을 제시하여 3월 16일 시네마현 의회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가결했다. 이후 2014년 일본 정부가 공식 행사화를 정하면서 한일간의 논쟁으로 불거진 것이다. 이에 격분한 마산시의회가 2005년 3월 18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하면서 남의 땅따먹기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한일간이 민간교류는 물론 국교 정상화의 길목에 커다란 쟁애물로 작용했다. 민간교류 중단은 대한민국 각 도시와 일본의 도시들이 지자체간 서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가하면 물물교류, 각종 이벤트 교류등 활발한 민간시장이 한꺼번에 얼어붙었다. 특히 학생들간에 계획된 행사나 각종 대회는 전면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그런 마찰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작은 시비만 있어도 충돌하는 사태로 번졌다. 문제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원하는 대로 일본 우익단체나 보수언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영토가 좁아서 독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아니다. 독도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해양자원이나 인근 공유수면은 범위가 달라진다. 이쯤에서 대안을 제시하자면 국민 들의 관심이다. 앞서 거론했듯 독도는 분쟁 거리 자체가 옳고 그름을 따져본다는 전제에서 애시 당초 거론 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국민들의 관심은 한일 축구경기에서나 열을 올리지 독도의 가치에 대해서는 플래시몹이나 독도는 우리땅에 대한 노래 가사의 내용이 전부다. 그럼 왜 독도에 일본이 눈독을 들이는지 짚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독도는 일단 황금 어장이다 오징어, 명태, 대구 등 식단을 풍성하게 하는 식용 어종이 많이 잡히고 경제적 가치는 물론 환경 및 생태적 가치로도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하이 드레이드 분포추정지역이며 다양한 해저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해군 작전에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쯤되면 독도영유권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것이나 진배없다. 당연히 정부차원에서 과감한 응대를 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슬슬 넘볼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독도를 소재로한 전국민 플리시몹 대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생실기대회,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는 물론 시민단체들이 합세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정부 입장에서 맞장구를 치고도 남음이 있다. 외교부가 눈치보지 않고 자국 영토임을 주장할 수 있도록 명분과 빌미를 주어야 한다. 세금이란 이런데 쓰라고 모아준 것이다. 이미 울릉도는 한겨울 한파 속에서도 71%의 공정을 넘긴 울릉공항이 2028년 개항을 목표로 공사를 강행 중이다. 총 사업비 8,792억원, 울릉 공항이 완공되면 약 87km 떨어진 독도와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당연히 단거리 헬기나 고속 유람선이 접근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1년 365일 중 50번 정도만 입도를 허락하는 날씨도 그렇지만 전 국민이 독도를 다녀오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치 남성이 군대를 다녀온 것과 여성이 아이를 낳은 것 보다 더 필수적인 애국 여행임을 자부할 수 있는 코스여야 하고 국가는 여행경비를 전액 예산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입법기관은 그런 개정안을 발의하여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내야 한다.

  •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총동문회를 찾아서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총동문회를 찾아서

    갈수록 온라인에 대한 비중이 커져가는 가운데 각종 모임이나 단체들의 오프라인 활동이 대폭 줄어들고 있어 지역 경제의 침체는 물론 인적 인프라 가치까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혼 밥이나 혼 술이 유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합금지로 인한 생활습관이 크게 변화하면서 빈번하던 회식문화도 사라진 것은 물론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까지 확산되어 무대, 음향, 이벤트 기획사 등 관련 산업도 도미노처럼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남의 반가움과 상호 간의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는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취지로 본보는 한국 방송통신대학 중어 중문학과 총동문회 행사장을 찾아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먼저 방송통신대학에 대한 선입견은 입학하기는 쉬어도 졸업하기가 일반대학보다 훨씬 어렵다는 공감대를 사고 있다. 통신으로 수업하는 만큼 학습량도 많지만 졸업하기까지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여간 대단하지 않다는 평가를 들을 뿐만 아니라 졸업생들 간의 화합 또한 온라인에서 태어나 오프라인으로 성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일반 대학이 입학년도에 따라 학번이 정해진다면 통신대학은 졸업년도에 따라 학번이 정해진다. 어렵게 졸업한 학생들의 분포도는 다양하다. 나이, 성별, 개인적인 환경이 전혀 다른 졸업생들의 만남은 졸업하기 까지의 노력과 어려움을 알기에 그 어떤 모임보다 각별하다. 특히 중어중문학과는 일반 외국어와 달리 학습 과정 또한 난이도가 높아 더욱 자부심이 큰 과목이기도 하다. 지난 2월 21일 오후 6시 한양대 앞 역 인근 광덕대로1로380 한빛프라자 2층에서 열린 방송통신대학교 안산, 시흥 총 동문회장 이, 취임식이 바로 그 현장, 지난 2004년 처음 박일환 회장으로부터 출범하여 2년 재임기간 마다 회장이 새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22년째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번에 취임하는 황용천 회장은 지난 11대 채명숙 회장에 이어 12대로 취임하면서 신입생과 재학생은 물론 총학생회 임원까지 대거 참석하여 취임을 축하해 주었으며 제 13대 안산시장을 역임하고 이번에도 출마를 공식 발표한 제종길 전 안산시장도 축하의 뜻을 함께 했다. 이날 사회는 정미선 사무국장이 맡아 내빈 및 외부인사 소개로 장내 분위기가 한껏 높아졌고 음향도 신안산대학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전연호 대표가 맡아 가수쏘미까지 협연하는 자리가 됐다. 특히 황용천 회장은 취임 소감에 대해 중어중문학과의 특색을 살려 “청명”이라는 두보의 한시를 읇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상,하반기 야유회, 연말 총회, 체육대회 등 다양한 단체활동이 이어지고 있어 타 단체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약 100여명 이상의 참석자들은 이날 취임식에 대해 이구동성 황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며 지역 주민으로서 살고 싶은 도시 시흥, 안산이 되길 바란다며 동문들은 배움에 끝이 없는 시대를 사는 학생이었다는 점에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방송통신대학은 1968년 교육법에 따라 설립근거를 마련하여 1972년 서울 대학교 부설 한국방송통신대학이 개교한 바 있다. 연혁으로 보자면 개교 60년이 넘은 교령을 이어온 바 있으며 전국에 오프라인 대학교도 함께 운영하여 “하나되는 우리대학, 모두의 꿈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매년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다양한 과목으로 인재양성에 일조하고 있다. 동행취재 김균식 기자

  •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약 35년 전 일이다. 당시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을 치고 있을 무렵 노조결성은 결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탄광도시 태백에서 광부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무렵 서울 도심에서도 노동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에는 경찰 최루탄이 연일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시민들까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군사정권을 막을 내리면서 노태우 정권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권력이었다. 집회 과정에 자연스레 익히게 된 민중가요, 무노동 무임금, 동지가, 등 수 십 곡의 행진곡형 노랫말과 머리띠를 두르고 평등을 외치던 일이 필자 자신에 마치 정의의 선구자 마냥 착각하며 의기와 투지로 나날을 보내던 날들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어용노조였다. 회사 측이 노조설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짜 노조를 설립하여 정상노조의 출범을 막는 구조였다. 어쩌다 정상노조가 자리를 잡을 때면 회사를 구한다는 구사대를 고용하여 폭력으로 강제 진압하던 구시대적 산물, 세월이 40년 쯤이나 지난 2030년, 다시 정권을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권력을 비호 하기 위한 가짜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들어선다면 단순히 회사 하나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말아먹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 총선이 돌아오는 2028년,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런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여당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그래서 제동기능을 잃은 초고속 열차가 국민 안위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목적지로 질주한다면 그땐 어쩔 것인가.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독재는 스스로 정화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여야를 떠나 지금까지 당선 전과 당선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건 이미 광복 이후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지켜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당연히 자정 기능을 마련한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의 맛을 포기하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어용 야당은 겉모양은 야당인데 하는 짓이 여당보다 더 여당의 속내를 갖춘 정치인들이다. 야당의 역할은 여당에 대한 견제장치이자 건전한 정치 발전의 양대산맥으로서 선의의 경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구도다. 따라서 여야 간의 이견 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견과 대립은 그 폭이 클 수 밖에 없다. 이견은 같은 안건이라도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해 다양함을 구할 수 있으나 대립은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결과를 초래한다. 대립으로 인한 폐단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 늘 존재했다. 서인동인, 남인 북인, 노소갈등과 양반 평민, 상놈이란 계급사회가 그러했고 식민지 시대에도 친일과 반일, 지금은 영, 호남이 지역갈등, 남녀 갈라치기와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찢어 놓음으로서 다수의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분열이나 갈등도 조장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지구 반대편 밀림지대 숲속까지 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이런 계층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작 참으로 염려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견이나 대립 정도가 아니라 어용 야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진정한 견제세력이 없는 세상, 야당같은 여당이 한둘이 아니라 수십개 창당하여 여당 스스로가 만든 야당이 판을 치게 된다면 국민들의 선택은 어디로 갈까.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파랗던 색깔이 붉은색과 구분되던 지금은 도 아니면 개라도 선택하겠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파란색이 만든 붉그스럼한 색의 야당, 오렌지색 야당, 분홍빛 야당이 생겨난다면 파란색 철옹성은 절대 권력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필자는 권력에 대한 독주를 우려하는 게 아니다. 독재도 잘만 하면 국력을 강화 시키고 국민들의 화합을 유도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 당시 무슨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던가. 그래도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국민들은 국익 중심의 정책에 애국관이 투철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자유와 문명의 발달에 길들여진 국민이다. 과거마냥 하란다고 하는 국민이 아니고 갈라치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미끼로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인내로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야당의 출범이 두려운 것이다. 여당 독주의 세상에서 얼핏 보면 국민들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군소 야당들의 출범은 민과 관 사이에 기생하며 예산만 축내는 어용시민단체들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정작 나서야 할 자리에는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안 나서도 될 자리에는 촛불과 횃불을 켜며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다. 어용 야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권력 보좌의 2중대가 되어 온갖 명분으로 세금 축내며 마치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때는 무슨 대책이 있을까. 감히 그런 기형적 성장을 누가 막을 것이며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며 누가 앞장설 것인가. 지금도 수 천 개의 단체가 국민 세금을 축내며 기생하고 있는 판에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다. 어쩌면 2026년 지금의 국민의 힘이 그나마 붉은 색 야당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는 마지막 진짜 야당일지도 모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마지막 발악의 포효로 여 야라는 정치적 구도의 끝 자락 일수도 있다. 두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지키지 못했던 야당이다. 그리고 스스로 서로가 배신을 밥먹듯한 야당이다. 여당의 독주를 지켜볼뿐만 아니라 뒤로 거드는 야당이다. 역사는 흐른다. 누가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후손들에게 귀감 내지는 오점을 번복하지 않는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대한생활체육회 회장 김균식

  • 	덕암 칼럼 움직여야 산다.
    덕암 칼럼 움직여야 산다.

    이 세상 그 어떤 물질이나 생명이든 가만히 정체되면 성장이 멈추거나 부패되기 마련이다. 오래 비워둔 집에 거미줄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의 신체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조선의 왕들이 단명하는 이유도 궐내에 온갖 당파싸움이나 권력 유지를 위한 계략들이 판을 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용상에 가만히 앉아 꼼짝달싹 안 하니 신체적 운동 부족으로 소갈증을 느끼는 당뇨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 시간을 할애 한다. 2가지 전제를 두는 것은 제25회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어젯밤 화려한 폐막식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방송 3사가 나눠서 종목별 경기나 색다른 테마로 송출하는 것과는 달리 JTBC가 단독 중계를 맡아 경기장 현지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반응은 냉담하고 싸늘했다. 1%대 시청율에서 막대한 투자는 본전조차 건지지 못했고 문화예술로 고공행진을 하던 성공 가도는 정확히 예상을 빗나갔다. 문제는 국민들이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1%란 전국민 인구수를 감안할 때 약 50만명 수준이다. 100명중 1명인데 이는 대한민국이 절기상 겨울은 있지만 나머지 3계절이 눈조차 내리지 않고 그나마 어쩌다 눈이 내려도 설경에 취할 수 있는 날은 손에 꼽기 바쁘다. 당연히 익숙치 않은 계절이고 겨울 스포츠에 대한 관심보다는 각자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에 끌려다니기 바쁜 세상으로 돌변했다. 특히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관련 시설물들은 애물단지가 되어 매년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관심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JTBC 단독보도는 독점이 아니라 독약이었던 셈이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시대에 보여주는 것만 봐야 하는 상황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빙상종목의 관심도 그렇지만 아직은 낯 설은 동계올림픽 종목들을 몇 시간씩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금메달이 몇 개인지 대한민국 순위가 얼만지, 우승 종목의 하이라이트만 골라봐도 몇 분이면 보는 걸 누가 TV 앞에 앉아 별 관심도 없는 분야에 소중한 시간을 할애할까. 이쯤하고 이번 동계 올림픽 뿐만 아니다 오는 2028년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는 제 34회 올림픽 경기 또한 유사현상이 우려된다. 갈수록 스포츠나 문화예술, 열정이 필요한 분야의 관심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로는 움직이기 귀찮아한다. 3층 계단도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은 임대가 나가지 않고 등산이나 활동성이 요구되는 오프라인 모이에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단체 경기나 모임은 물론이고 과거마냥 향우회, 체육대회, 동문회, 종교활동 등 직접 몸을 움직여야 가능한 활동은 줄어드는 반면 온라인을 통한 관심이나 참여는 늘고 있다. 이러니 게으름만 늘어나는 것이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특정 계가가 없는 한 고치기가 어렵다. 당연히 현대 성인병만 증가하니 병원 좋은 일만 시키게 되는 것이며 젊은 사람들까지 당뇨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다. 수명이 다하면 잠들지 말래도 영원히 잠들텐데 깨어있는 순간까지 자고 싶을까. 얼마 전 건축 박람회를 다녀왔다. 화장실 변기도 센서가 장치되어 근처만 가도 변기 뚜껑이 열리고 냉장고 문도 음성장치가 입력되어 문 여는 것조차 손도 안 대도 열리는가 하면 창문의 커텐도 리모컨을 열고 닫는 시대에 도래했다. 편리할까. 그렇겠지만 인간의 신체적 리듬은 어디서 찾을까. 움직이지 않으면 당연히 세포 활성화도 떨어진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항생제로 대치하고 그러다 안 들으면 더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언제까지 주사에 의존할 것인가. 가장 강한 항생제는 자연 면역이다. 하계올림픽이나 동계올림픽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며 과거와는 달리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분야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심이란 젊을 때는 이성 관계가, 사회적 중심이 되었을 때는 금전 문제가, 나이가 들면서 건강 문제로 달라진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건강인데 박근혜 전 정부 시절부터 시행해온 프로 체육과 생활체육 통합은 사실상 국민 생활체육의 위축으로 정점을 찍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 두기와 집합금지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쪼그라진 생활체육은 일반인들의 손, 발목을 묶기에 부족함 없었다. 어쩌다 축구를 하려해도, 배드민턴이라도 해 보려면 이미 관련 동호인들이 구장을 점거한 것이나 진배없으니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꿈도 못 꾸고 포기하게 된다. 축구장도 관련 프로 선수들이나 관리하는 행정기관에서 인조잔디 손상을 이유로 대관을 할 수 없으며 등록되지 않은 단체는 쉽게 포기하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스포츠과학원이 진행한 조사결과 2025년 국민생활체육의 활동실태는 참여율이 6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걷기가 40% 보디빌딩 17% 등산이 17%로 나타났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시간 부족이 가장 크고 관심 부족, 체육시설 접근성 부족 순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협소하다는게 증명되는 것이다. 대안은 생활체육의 활성화다. 가장 손쉬운 종목,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종목은 수두룩하다. 다만 관심과 참여를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하고 탁월한 방법, 그래서 생활체육의 활성화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사)대한생활체육회 총재로서 정중히 당부드린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재테크라고,,,,,

  • 	덕암 칼럼 최상의 평화는 최고의 국방
    덕암 칼럼 최상의 평화는 최고의 국방

    군대를 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공통의 암기 사항이 있다. 군인정신, 군인의 길, 당일 암호 등 군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국방의 운영 시스템에 적응하고 명령에 복종하여 안정된 국방의무를 이행하도록 훈련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공격과 방어 개념을 교육받는 과정에 오래전 손자병법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무기가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시대에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무기가 달라질 뿐이지 적국을 공격한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죽음과 삶의 바탕이고 존속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는 전쟁이 난다하고 났던가. 오랑캐도 왜군도 동족상잔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경계와 첩보가 빠르다면 전운이야 감 잡겠지만 피하지 못할 전쟁이라면 항복하든가 싸우든가 둘중 하나다. 항복이란 우리 한민족이 숱하게 해왔다. 선조도 그랬고 인조도 그랬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여자들을 적국의 공물로 바치는 일도 많았고 그런 와중에 목숨걸고 싸운 장군들이나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으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작 임금이란 자는 이리저리 피신 다니며 그 와중에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먼저 손자병법이란 고대 중국의 병법서로서 동양에서 가장 위상이 높던 병법서들인 무경칠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병서로 꼽힌다. 병법서들 가운데서도 특히 공세와 세력확대에 중점을 두었으며 춘추시대 오왕 합려를 섬기던 손자의 저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양대군이 최초로 손자병법에 주석을 저술한 무경칠서주해를 편찬한 바 있다. 전쟁은 나라의 생사가 달려 있으므로 신중히 계획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선제공격, 전면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무식한 발언이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던 말이 얼마나 무모한 말이었는지 일국의 대통령이 맞나 싶었다. 무력사용은 결국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중에 하나에 불과하므로 적의 목표를 먼저 좌절시키는 노력을 하고 그것이 안되면 외교 수단을 동원을 하고 그 다음 군사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은 남북 전쟁 발발 시 피할길이 없다. 삼면이 바다인데 어디로 갈까. 피하지 못할 땐 즐기라고 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면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혹독하고 고난이도 훈련을 받은 북한군과 참호전을 벌이면 이길 수 있을까. 북한은 이미 지구촌 모두가 공감하는 핵보유국이나 마찬가지다. 구시대 군사 물자는 우리한테 딸리더라도 핵무기만큼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하여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안에 두고 있다. 손자병법은 여기서 화공편을 논한다. 불로 병력과 물자를 파괴하는 방법과 고려사항을 논한다. 흥미롭게도 그 파괴로 인한 정치적, 도덕적 비용문제도 다룬다. 그리고 용간편이라는 정책도 쓰는데 이는 간첩을 사용하는 법이다. 국내에 활동 중인 종북 좌파와 각종 친북 단체들이 난무하는 정국을 감안할 때 전쟁 발발 시 모두 적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손자가 생각한 최상의 병법이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인데 과거에 중국이 조선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공격했다면 지금은 경제, 외교, 서해시설물 설치 등으로 압박해오는 방법을 쓰고 있다.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죽게 된다. 전쟁은 죽냐 사느냐의 문제, 곧 명이 걸린 문제이다. 전쟁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결국 개죽음일 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며 되살아날 수 없다. 적국을 훼손하여 무너뜨릴 때 오래 끌지 않는다. 병사가 손상되지 않는 완전한 승리를 한다. 손자병법에는 적군보다 10배의 병력이면 포위하고, 5배의 병력이면 공격하고, 2배의 병력이면 적을 분리 시킨 후 차례로 공격하고, 맞먹는 병력이면 최선을 다하여 싸우고, 적보다 적은 병력이면 도망치고, 승산이 없으면 피한다. 그러므로 소수의 병력으로 무리하게 싸우면, 강대한 적의 포로가 될 따름이라고 적혀있다. 속전속결로 끝날 줄 알았던 러우 전쟁이 지난 3년 동안 끌었다는 점만으로 이미 러시아 푸틴의 리더십은 바닥을 친 것이나 진배없다. 좋든 싫든 결국 공격을 꾀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면, 가능하면 적을 포위해 역으로 내가 눌러앉고 상대기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것은 공성의 기본이기도 한데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예를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만약 내가 적보다 허약한데 공격을 해야만 한다면, 공격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그냥 도망쳐야 한다. 공짜로 적에게 이익을 퍼주느니 차라리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낫다. 36계 줄행랑도 전략이다. 나와 적의 허실과 무관하게, 어떤 경우에도, 공격의 성과가 미심쩍을 상황이라면 적당한 요새로 들어가 시간을 끌며 더 나은 공격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이는 빨치산의 댸표적인 예다. 장군이 군대의 진격이 불가능한 것을 모르면서 돌진을 명령하는 것이고, 군대의 퇴각이 불가능한 것에 모르면서 후퇴를 명령하는 것을 코 꿰인 군대라고 하는데 부하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상급자 잘못 만난 죄다.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적의 상황을 알고 나의 상황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만 알고 있다면 한 번은 승리하고 한 번은 패배한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도 모르면 매번 전쟁을 할 때마다 필히 위태로워 진다. 공격해서는 안 되는 군대가 있다. 공격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 투쟁해서는 안 되는 지형이 있다. 군주의 명을 수락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안시성이 그랬고 양만춘 장군이 그랬다 장군에게는 죽기만을 생각한다면 살해될 것이고 필히 살기만을 생각한다면 포로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곽종근 전 특수전 사령관의 진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판단이 선다면 군주가 반드시 전투를 하라고 명령해도 전투를 벌이지 않는 것이 가능한데 계엄령을 공모하고서도 막상 닥치니 아니라고 발뺌하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처세도 가관이다. 참으로 한심한 국무위원이고 국방부 지도자들인데 이걸 믿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니 .......

  • 	덕암 칼럼 호랑이와 고양이
    덕암 칼럼 호랑이와 고양이

    고양이가 어쩌다 운이 좋아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될까. 야옹하는 울음소리를 어흥 하는 소리로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동네 양아치가 삭발한다고 하루아침에 스님이 될까. 목탁도 쳐본 중이 치는 것이고 고기도 먹어본 자가 먹는다 했다. 강도 손에 쥐어진 칼은 결코 음식을 조리하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결국 밑천이 드러나 금품을 갈취하는데 사용 되고 만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예배당 종이나 사찰에 걸린 종은 크기만큼 웅장하거나 땡그랑 거리는 소리를 낸다. 방울은 아무리 흔들어도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지 에밀레종처럼 그윽한 소리를 낼 수 없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후배들과 학생기자단, 시민기자단을 양성한 과거가 있었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기자를 하게 되면 언론이라는 사명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펜이 칼보다 무서운 흉기로 남용되어 프레임 뉴스나 가짜뉴스를 양산하게 되며 종래에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자신도 낭패를 겪게 된다고 항상 강조했었다. 다시 말해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왕관을 쓰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당사자와 주변 모두가 힘들게 된다는 논리다. 행정직에는 동네 이장과 통, 반장, 면장까지는 임명직이지만 군수, 시장 도지사, 대통령까지 국민 손으로 선출되어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국민의 복리 증진에 힘써야 하는 공무원이다. 비단 어느 누구를 지목해서가 아니라 직위란 직위에 걸맞는 실력과 인품, 그리고 정치적 철학이 분명해야 태평성대를 일구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지 개인적인 탐욕이나 사리사욕, 권력욕으로 점철된다면 그 야욕의 밑천, 곧 드러나고 종래에는 권불십년이라는 진리에 무릎을 꿇게 된다. 과거에야 강화도에 꽈리를 틀고 앉아 100년도 해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자유에 길들여지고, 게을러지고, 거만해지며, 국가가 해주기만 바라고 있는 습관에 젖어 있으니 인간의 본능 상 더 쉬어야 조용하지만 어려우면 난리가 날 것이다. 먼저 자만심과 자부심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 유사한 단어 같지만 자만심은 자신감이 넘칠 경우 발생하는 정신적 질병이다. 조절만 잘하면 스스로 긍지를 느껴 공익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자부심인데 스스로 자부심이라 하고 남이 볼 때 자만이면 자만인 것이다. 문제는 자만이 넘치면 거만이 되고 거만이 넘치면 눈에 뵈는게 없다는 점이다. 가령 군대도 안 가본 사람이 국군 통수권자가 되는 것까지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므로 가능하지만 군 체계에 대한 상식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이를 직위라는 권좌에서 조직폭력배 다루듯 한다면 명령에 복종하던 군 복무의 특성상 자칫 엄청난 위력이 적군이 아니라 국민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디 국방뿐일까.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막대한 예산, 장비, 전문인력이 국민을 향하지 않고 권력을 지향할 경우 이는 심각한 국난에 봉착하게 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고 면박을 주고, 거드름을 피운다면 이는 직권남용이요, 한 평생 관련 분야를 지켜오던 많은 종사자들의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말과 글을 쓴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영상도 있고 인공지능도 포함되지만 말은 발언자의 인격과 맞물려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격이 있으며 입에 베인 말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앞서 어필하였듯 고양이는 절대 호랑이 소리를 낼 수 없고 방울은 종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네 이장과 군수는 말의 격이 다르다. 군수와 대통령의 말의 격도 다르며 조폭과 스님이 말은 어순이나 적용하는 단어나열 자체가 다르다. 옛말에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없다면 성인이 되어 티가 난다. 제멋대로 자란 아이와 부모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후천적으로 자수성가하여 학문에 정진할 경우 다를수도 있지만 한번 길들여진 말의 습관은 쉽게 고치기 어렵다. 간혹 영화의 한 장면, 폼 나는 말, 일명 뽀대 나는 말, 거드름을 피우며 건들거리는 동네 건달들의 용어가 있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선량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삥을 뜯는 양아치가 쓰는 단어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 학생, 일반 시민들의 단어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건들거리며 상대방을 얕잡아 보고 트집 잡듯이 말하다가 듣기 싫으면 면박을 줘서 막아 버리지만 후자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걸맞는 답변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특히 갑의 위치에 있다면 더욱 신중을 기하고 을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가령 군부대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온갖 개폼을 잡고 건들거리며 시비조로 말하는 것과 계급에 걸맞게 정중하고 반듯하게 말할 때 하급자들은 존경과 복종의 예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말은 급과 격이 있는 것이고 인격과도 맞물려 있는 것이다. 필자 또한 청소년 시절 온갖 욕설과 폭력의 환경속에서 험한 꼴을 수 백 번 봐왔고 군 복무 시절에도 위병소와 자체 헌병대 요원이 되어 살벌한 환경을 거쳐왔지만 지금까지 누구에게 욕설이나 인격모독을 해 본적이 없다. 정작 마음이 상할때면 피해 버리고 말지 굳이 싸움을 벌이고 싶지않은 것이다. 문득 영화 “친구”에서 나온 대사 중 동수역을 맡은 장동건이 준석역을 맡은 유오성에게 내가 니 시다바리가, 하니 준석이가 이기 죽고 싶냐며 눈을 부라린다. 그리고 중간 쯤에 다시 준석이 동수에게 잠시 하와이로 가 있으라 하니 동수가 “하와이 니가 가라”고 한다. 목소리를 깔면서 서로에 눈빛으로 기 싸움 하는 장면이 있다. 말에는 기가 실려있다. 그래서 부패한 검사나 경찰이 참고인을 윽박지르며 겁을 주거나 살살 달래서 기망의 수사를 하는 경우, 그것도 아니면 국회에서 참고인의 답변을 겁박하여 입도 뻥긋 못하게 하고 소리만 요란하게 지르는 장면은 국민 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추궁하고 소리 지르고 질책하는 사람은 과연 그 자리에 오를 때 까지 티 없이 맑은가 털어서 먼지 안날까. 내분하는 국힘, 질주하는 여당, 천지지지요 자지아지라 했다. 하늘이 알고 너와 내가 아는데 무슨 비밀이 있을까. 쑈를 해라 한 푼도 안 받았다고 하고 1억 줬다고 하고 지금 국민들을 죄다 호구로 본 게 아니라면 저러지 못한다. 그냥 입 다물고 가만있으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갑의 위치에서 갈구듯 말하는 말투는 자리에 걸맞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수준을 갖출 수 있다. 하는 사람이나 이를 보고도 만류하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 모두가 언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범이다. 언어폭력이란 말로 인한 상실감도 포함되는 것이며 마음의 상처는 칼로 베인 몸의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간다. 패가망신이란 국어사전에서 집안의 재산을 다 써서 없애고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뜻인데 동네 양아치나 폭력배들이 약자를 겁박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절기상 우수를 맞이하는 아침은 제법 포근하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면 오늘처럼 포근한 마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안산인터넷뉴스 대표 김균식

  •    덕암 칼럼 당뇨와 알고리즘의 공통점
    덕암 칼럼 당뇨와 알고리즘의 공통점

    당뇨병 환자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에 600만 명이나 기록했는데 이는 2050년 쯤에나 예측했던 숫자다. 고위험군인 전 단계는 1500만 명을 찍었고 국민의 40%가 넘는 2,000만 명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당뇨측정 과정에서 당화혈색소는 3개월간 평균적인 혈당수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6.5% 이상이면 당뇨로 진단한다. 문제는 고령 노인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환자 분포도가 30-40대 까지 확산 되는가 하면 이제는 MZ세대까지 유병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슐린의 분비량이 부족하거나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져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증상을 당뇨는 한번 걸리면 좀체 완치가 불 가능한 질병이다. 꾸준한 운동과 식생활개선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검진과 투약, 심지어 인슐린 주사까지 맞아야 하는 고질병이다. 이미 관련 분야에서는 당뇨병 2차 대란 위기가 오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사회문제로 확산되어 예방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일단 심한 갈증과 함께 소변에 거품이 일면서 배출량도 늘어나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가 하면 상처가 나도 평소보다 더 늦게 아문다. 만병의 근원이라 할 만큼 시력상실까지 불러오는 당뇨는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는데 10년 이상 앓았을 경우 98%까지 망막병증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소리없는 침묵이 살인자로 소갈증세를 보이면 일단 수분공급이 응급조치나 마찬가지다. 피가 끈적해지는 경우인데 이를 조금만 방치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당뇨에 대한 두려움과 설마했던 진료결과에서 유병 여부가 발견되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당뇨 수치를 낮추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평생달고 가야하는 친구로 여겨야 한다. 아직은 완치 약물이 없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곧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게 차라리 나은 편이다. 그리고 일종의 차단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유병 증세가 발생하면 이는 음식조절과 꾸준한 운동이 필수적인데 안 해도 될 여러 가지 노력이 수반된다. 무리한 도전도 신중히 해야 하고 점차 말라가는 마른 당뇨의 경우 표정 관리조차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뭐든 조심해야 하는데 이래서 나온 말이 골골백세라 한다. 잘만 관리하면 100세까지 간다는 뜻이다. 건강하다고 함무로 먹고 마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을 다하는 게 아니라 평소 질병이 신체적 관리를 신중히 하게 되는 동기가 되다 보니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경계심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긍정의 힘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된다. 한번 걸리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게 또 있다. 당뇨는 의료계에서 진료와 치료도 할 수 있지만 검진결과 에서도 알 수 없는 병, 이른바 알고리즘이다. 이미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문제점은 심각한 사회적 질병으로 손꼽힌지 오래다. 청소년들에게는 관련 치료법까지 등장할 정도니 말해서 뭐하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성년자들의 검색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관계의 먹통시대, 게임중독은 물론, 무분별한 폭력성, 음란물 구독은 비정상적인 사고를 갖게 되는 동기로 작용하여 범죄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는 발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 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30%이던 비중이 2025년 43%로 증가할 만큼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하기야 부모들부터 틈만 나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으니 누가 누굴 나무랄 수 있을까.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오는 것은 당뇨병이나 스마트폰 중독이나 공통점이 있다. 당뇨가 예측 가능하거나 진단으로 알 수 있는 질병이라면 스마트폰에서 작용하는 알고리즘, 일명 추천, 규칙의 기능은 구독한 영상과 관련된 유사영상들이 꾸준히 연결되면서 관심 분야에 대한 추가 영상으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칫 돌이키지 못한 성범죄로 이어지고 젊거나 중년까지는 경제적 창출에 대한 영상이 나이가 들면서 건강 분야에 대한 관심을 해소해 주니 당연히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것은 공통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알고리즘의 작동이 스마트폰 중독의 주 원이라는 점이다. 꼭 필요한 정보만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관련 영상이 끝도 없이 접목되니 관심은 관심을 불러 1-2시간을 쉽게 넘기게 된다. 정보의 홍수는 가짜 뉴스도 생성되어 판단의 오류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선을 넘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AI가 도입되면서 현실적으로 삶의 질적 변화까지 우려된다. 여기서 우려란 단어를 적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구독하던 영상들의 환경이나 수준이 상상 그 이상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이 영상을 만들거나 좋은 글을 올리는 시대가 지났다. 원하면 무슨 영상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 쳇GPT가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제공하니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은 점차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제 연륜이나 경륜을 자랑하거나 어려운 산술적 문제, 전문가들만이 공유하던 그들만의 정보, 특히 딥페이크로 인한 폐단은 더욱 심각하다. 이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인을 범죄자로 몰 수도 있고 음란물과 합성하여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상처도 입힐 수 있다. 여기에 대한 관련 법규의 개정안은 발생하는 범죄속도의 변화를 따라 올 수 없는 게 문제다.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들 스마트폰의 사용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온라인에 미처 있는 만큼 오프라인의 참여, 관심, 이용이 감소했다. 상상 속의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과 구분되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아이들을 구제하기에 늦는다. 문제가 심각함에도 여의도에서는 여전히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말만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정작 미래세대들의 뇌가 병들어가는 심각함은 무감각하다.

  • 	덕암 칼럼 달도 짧고 날도 줄고
    덕암 칼럼 달도 짧고 날도 줄고

    2026년 2월은 28일이다. 31일까지 있는 달과 비교하자면 2일이나 적은 셈인데 2일이 누구에게는 달콤한 휴일이고 빨리 다가오는 월급날이지만 누구에게는 같은 달이라도 적은 근로에 같은 월급을 주어야 하며 명절 상여금까지 줘도 당연한 것이 되는 달이다. 게다가 14일부터 18일까지 연휴에다 19일과 20일 년 차 월차를 쓰면 21일과 22일까지 쉴 수 있으니 실제 일하는 날짜는 15일에 불과하다. 절반을 일하고도 한 달 치 월급을 타는 사람이야 좋겠지만 반대급부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더구나 3월 1일 삼일절이 일요일이라 휴일을 못 찾아 먹어 손해를 본 것이나 진배없으니 다음날인 2일 날을 대체 공휴일로 정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누가 기업을 운영하며 누가 자영 업장에서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공휴일이란 개념은 누가 정했으며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렇게 놀고 싶으면 그만두면 될 일 아닌가. 일은 하기 싫고 돈은 받고 싶으면 결국 채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부족하여 업종 관계 없이 임금이 같아야 하고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불법이고 근무시간을 초과하면 초과수당, 휴일에 일하면 특근 수당, 온갖 수당에 오는 3월 1일부터는 노란 봉투법 까지 시행되니 고용시장은 더욱 얼어붙게 될 수밖에 없다. 근로의욕 상실, 기회주의, 게을러지고 종래에는 온갖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질텐데 사람의 본능 이란 게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쯤되면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진통제를 맞은 것이고 놀고도 돈만 받으려는 마약에 중독된 것이고 더 나아가 수당에 길들여져 방안에 은둔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니 나라 꼬락서니가 산으로 가는 것이다. 명분만 그럴싸하면 현실에 맞지 않더라도 정책실패의 원인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이래서는 안된다. 명절은 누가 뭐래도 풍요롭고 넉넉하고 다복한 날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래저래 자기 무덤을 판 사람들이 당장은 몇 푼의 수당과 공휴일에 맛이 들여 일단은 쉬는 날이 많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명절은 차라리 평일보다 나을 게 없다. 특히 부모 자식이나 형제간에 만남이 반갑기보다 서로 갈등만 생기고 일각에서는 자식들의 비교우위에서 뻘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디 그 뿐 인가 과거와 비교 하자는 게 아니라 명절이면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심하다며 남성들의 협조가 필수다. 그런 명절날 무엇보다 차례상을 차리는 비용이나 절차는 현대 여성들에게 여간 까다로운 행사가 아니다. 설날은 집에서 차례상을 차리거나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하기도 한다. 말 나온 김에 차례상을 차리지 않더라도 기본은 알고 가자. 차례는 설날 차리는 상이고 제사는 작고하신 조상님의 기일에 맞춰 차리는 차이가 있는데 상차림 또한 당연히 다르다. 차례상은 떡국이 올라가는데 밥은 서쪽 국은 동쪽이라 해서 반서경동, 육전은 서쪽 생선은 동쪽이라해서, 어동규서, 생선은 머리가 동쪽 꼬리가 서쪽이라 해서 두동서미, 육탕은 서쪽 어탕은 동쪽이고 생선포는 서쪽 식혜는 동쪽이니 좌포우혜, 대추, 밤, 배, 감을 순서대로 놓으니 조율이시, 붉은 과인은 동쪽 흰과일은 서쪽이니 홍동백서, 치자 들어가는 생선이나 복숭아를 빼고 향신료가 들어가는 양념을 빼니 차례상을 차리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이나 문화요 집안의 가풍을 이어가는 행사라 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도 고향 집 방향을 향해 사과 한 개를 놓고서라도 제사를 지냈던 우리 민족의 영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던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장기간 공휴일 이다 보니 해외로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이 영종도나 김해, 등 국제공항을 북새통으로 만든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져 향후 10년쯤 지난 뒤에는 설날 세시풍속들이 촌스럽고 케케묵은 구 시대적 유물로 남을 것이며 민족 대이동이라는 명절 귀향길도 기다리는 부모세대가 없으니 이 또한 자라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 될 것이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얼음판 위에서 팽이를 치고 앉은뱅이 썰매를 타던 시절, 연날리기와 윷놀이에 온 가족들이 박장대소와 환호를 지르던 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핵가족화를 넘어 독신 가구가 늘다 보니 명절이라도 조용히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주문하고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어쩌면 그나마도 사람 사는 낙이 있는 것이지 이제 AI가 판을 치고 웬만한 노동은 로봇이 대체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면 사각 콘크리트 안에 갇힌 채 그 어떤 일도 안 하고 뒹구는 한 덩어리 단백질에 불과해질 날도 머지 않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곤충까지도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교미라는 과정이 있다. 이른바 육체적 성관계인데 여권신장이라는 명분으로 남녀를 갈라치기 해서 남성은 여성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고 심지어 성관계마저 하다가도 중도에 그만두라면 둬야 하는 비동의 강간죄가 올해는 국회, 법무부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차하면 무고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러고도 저출산에 대한 국운의 종말을 돈으로 메우려는 무식한 정책을 펼치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2026년 설날은 어느 날 보다 모순과 혼란의 범벅이 된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결자해지, 자기 매듭은 자기가 푼다 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남발한 정책들이 일시적인 성공은 했을지라도 고용주와 근로자, 남성과 여성을 이간질하여 이념전쟁으로 일국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영, 호남 지역감정, 온갖 학연, 혈연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각자도생의 분위기로 표는 얻었겠지만 사람이 사는 목적과 희망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안이 있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성 회복 운동, 도덕과 윤리적 가치관을 다시 되찾는 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 	덕암 칼럼 펜트하우스와 대웅전
    덕암 칼럼 펜트하우스와 대웅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츠 최상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주거공간으로 평균 100평이 넘는 넓이에 싯가 수 백 억원대의 고급 주택이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주거공간이다. 경제적이나 실용가치로 보면 상당한 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특정 소유자의 부동산에 불과한 것이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주상복합시설에 불과하다. 물론 문화적 가치나 역사적으로 후손들에게 전달할 만한 메시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때가 되면 안전진단을 받고 재 건축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매수했을 경우 리모델링을 거쳐 입주민의 만족을 채울 뿐이다. 어디 펜트하우스 한 곳만 그럴까.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들어선 많은 초고층 아파트, 주상복합상가, 기타 공공 시설물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 용도를 보고 건립되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기껏 해야 수 십년 정도의 수명을 갖고 있다. 반면 문화재는 수명이 따로 없다. 수 백년 수 천 년 지나도 재생할 수 없는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반 건축물과는 달리 한번 화재로 소실되면 같은 이력을 갖출 수 없다. 재건, 복원이라는 과정을 가치지만 이끼 낀 바위와 수 백 년 이슬과 바람을 머금은 대들보를 어찌 흉내 낼 것인가. 비단 수명뿐만 아니라 해당 건축물에 담긴 사연이나 깊은 뜻보다는 얼마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느냐, 아니면 재 건축 시 토지에 대한 지분율이 얼마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대 건축물과는 달리 문화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 시내 대형호텔과 경복궁을 비교해보자 지난 2008년 2월 10일 저녁, 70대 방화범 채종기가 국보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5시간이나 불을 끄지 못해 소실된 바 있다. 2층의 90% 1층의 10%가 불에 탔다. 5년이 지난 2013년 5월에야 277억 원을 들여 복원되었지만 완공 직후 단청이 벗겨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목재는 갈라졌으며 기와는 탈색과 변색이 진행됐다. 이후에도 문화재 관리에 대한 부실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물론 자연재해도 있겠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들도 많았다. 이 두 건축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경제적 잣대로 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작성하는 글의 공통점은 문제 제기에 대한 대안 제시다. 문제의 심각성을 짚어보자. 2025년 6월 30일에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명승지 내 별서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내부의 목조구조와 고서적, 전통 공예품 등이 소실됐다. 앞서 동년 6월 10일에도 종로구 경지동 조계사 불교 중앙 박물관 옆 국제회의장 내 나무갤러리 카페에서 화재가 발생해 문화재 관리에 대한 적색 신호등이 켜진 셈이다. 지난 1월 24일 오전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위치한 고택이 화재로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금양정사는 1시간 40분 만에 전소됐다. 해당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황준량이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하던 장소다. 최근에는 지난 2월 7일 오후 9시 40분쯤 문무대왕면 입천리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 다음 날이 8일 오후 6시경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당시 불은 순간 최대 풍속 초속 21.6m의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인근 지역으로 번졌으나 소방당국의 밤샘 진화작업 끝내 불길을 잡았다. 불이 난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과의 직선거리 8km 안팎으로 가까운 거리였다. 어디 불이 상황이나 사물을 봐가며 번지던가. 인화 물질과 산소만 있으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가장 큰 사건으로는 1954년 12월 26일 당시 부산 용두산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쟁 당시 부산으로 대피시켰던 국보급 문화재 3,500여점이 소실된 바 있다. 가치로 볼 때 현금으로 상환할 수 없는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 자연화재인지 알 수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우리나라 국보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산불이 자주나는 영동지역에서는 평소 훈련을 심화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있는 것이니 대안이라고는 사전예방이나 조기 진화가 방법이다. 하지만 불이 어디 난다 하고 나던가. 지금도 눈에 선한 2005년 대웅전 등 국보급문화재로 정해진 낙산사 전소 장면은 산불이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크게 심어주고 있다. 강원도는 특히 산불에 취약하다. 2019년 4월 5일, 다른 곳은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지만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성콘도 변압기에 서 발생한 폭발은 인근 산으로 옮겨붙어 대형화재로 번진 바 있다. 여의도 면적을 태운 불길은 막대한 자연재해를 남기고 소방기록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은 바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재 소실은 돈을 계산되지 않는 손실이다. 문득 2025년 3월 영남 지역을 강타한 산불이 새삼 연상된다. 당시 산불은 연소재가 될 만 한 것은 가리지 않고 확산 됐다. 경북 의성군에 있는 만장사의 석조 여래좌상이나 비안면 자락동의 석조 석가 여래좌상은 경북 유형 문화제 제 56호로 해당 사찰의 스님들이 긴급 수습에 나서면서 겨우 보호될 수 있었다. 필자 또한 해당 사찰을 방문하여 성금을 전달하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오늘은 문화재 방제의 날이다. 매년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했다. 일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건 화재 발생에 대한 예방이다. 발화원인이 될만한 작은 소재라도 절대 금기시하는 협조가 필요하다. 문화재보호법 제 82조 손상 등의 금지에 따라 법률적 책임이 따르게 된다. 법적 처벌을 떠나 문화재는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외국인에게는 국격을 보여주는 바로 미터라 할 수 있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재 보호에 예산을 투자하고 철저한 관리로 보호하는 것이 이러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도 타워 팰리츠 펜트하우스와 어느 깊은 산속 고즈넉한 사찰의 가치가 같을 수 있을까.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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