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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 칼럼 승자의 여유 일지이무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결국 이재명의 승리로 종지부 졌다. 당초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한국정치의 행보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물이자 요동치는 역사의 북소리가 1차전 승리의 출정식을 가진 바 있다. 2022년 3월 당선, 그로부터 5년 임기 중 3년 만에 중도하차했다. 필자는 윤석열 당선 이후 군대도 안가보고 자식도 안 낳아본 사람이 한평생 피의자 불러다 조지기만 했던 사람이 일반 국민들 속사정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성토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군의 날 주적주적 가을비 오는 데 터덜거리며 걷는 행진모습을 보고 제 3국에서 얼마나 비웃을지 누가 볼까 TV를 꺼버린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련복을 입고 분열훈련을 했을 때나 육군에 입대하여 훈련병부터 병장 전역할 때 까지 집체 교육은 군인의 기본이었다. 어째 대통령이란 사람이 동네 깡패 조직도 아니고 위상이나 체통도 없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은 국군 통수권자로써 주변의 보좌진들 말을 죄다 무시했다는 느낌이었다. 일국의 군사적 도열은 해당 국가의 국방력을 전 세계 국방 분야 관계자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위력과시용 행사다. 화려함 중심의 이벤트나 인기 중심의 콘서트가 아니다. 당연히 일사불란한 동작, 힘과 단결력을 보여줌으로서 주변 국가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기를 죽이는 겁주기 행사다.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는 국군의 날 행사였다. 시력이 상황에 따라 정상이었다가 장애였다가 하면서 군대도 안 가본 사람이었다. 자식을 없으니 야심한 밤에 아픈 자식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가 본적도 없었을 터이고 교육비에 절절매거나 카드 값 연체되어 고민했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권력을 잡았는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초기에 건설노조를 쥐 잡듯 할 때 과연 얼마나 갈까 싶었다. 얼핏 보면 귀족노조가 와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연 그랬을까. 소나기 잠시 피해가듯 노조가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이를 믿고 그 장단에 춤췄던 건설사들은 후환이 두려워 겉모양만 따르는 시늉만 했지 결국 노조의 끈끈한 조직력은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물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노란 봉투법이 통과 되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고 누가 생각할까. 건설사들의 중대 재해법에 이은 노조의 강행군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게 신중하지 못한 윤대통령의 자기중심적 정치가 빚은 비극이다. 이미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한 민주당 입장에서 옳고 그림이 어디 있으며 지금처럼 윤대통령이 구속되어도 누가 옆에 서있을 것이며 누가 목숨 걸고 편을 들어줄까. 하지만 미국방문 당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연설을 하거나 나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일 때 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야당과 출처도 불분명한 단체들이 사소한 트집까지 물고 늘어지는 걸 보고 저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 터진 것이 계엄령인데 마치 정의의 사도마냥 자신만이 애국의 선봉에서 포효를 질렀다가 지금의 이 꼴이 난 것이다. 아무리 찝적 거리며 뒤통수를 치고 발로 걷어차도 쥐죽은 듯 임기를 마쳤다면, 차기 정권에 반듯한 지도자가 등단하도록 시간을 벌어주었더라면 지금 같은 꼴은 면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박근헤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었을 때 누가 나서던가. 죄가 저 살기 바쁜 꼬락서니를 보고서도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야당 입장에서는 보란 듯이 탄핵 수속을 밟았고 처음에는 그나마 편을 서던 사람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지금 같으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재명 말로는 할 사람이 없어야 맞다. 누가 해도 어떤 트집이든 잡아서 달달 볶는데 누군 든 해낼 수 있을까. 어쨌거나 지금 승자는 이재명이다. 한마디로 가진 자인데 여유가 없다. 설령 윤석열을 풀어주고 어느 정도 살만한 거처나 기본적인 경호라도 해 준다면 국민들이 보는 견해가 어떨까. 지금처럼 개잡듯 탈탈 털어서 주변인들까지 숨도 못쉬게 한다고 더 큰 이득이 있을까. 누가 봐도 정치보복이고 그 정도가 국제사회의 눈이 두려울 정도다. 구속 중에도 수사를 위해 출석하라니 속옷만 입고 버티는 것이나 안한다고 수사관들을 보내서 달랑 들었다 패대기쳤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진위여부를 떠나 개망신이다. 이미 승자가 되어 용상에 앉아 있는 이재명 대통령이 만약 여유 있게 베풀었다면 그런다고 전세가 뒤집어진 이런 상황에 누가 감히 다시 고개를 쳐들까. 전반적인 분위기는 조선시대 역적들이 부패한 왕권을 찬탈하고 이른바 혁명을 일으켜 임금의 주리를 틀고 단두대에 망아니 칼춤을 추게 하는 형국이다. 전쟁이 나도 어느 한쪽이 승리하면 패전국의 장수는 정중히 대우한다. 삼국시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지만 역사를 들춰보면 왕에 대한 예우는 어느 정도 챙겨 주는 것이 관례이자 승자의 여유였다. 만약 남북이 다시 충돌해 김정은이 패전국의 수장이었더라도 기본적인 예우는 해가면서 인권, 독재, 등에 대해 재론의 여지를 갖는 것이 국가 원수였던 자에 대한 기본적인 격식이다. 하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당시 국민의 절반이 넘는 지지도를 보였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지금같은 꼴을 보인다면 과연 이재명 대통령이 존경받을까, 아니면 지금의 여당들이 항변을 하며 난리를 칠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가진 자의 여유가 국민들의 분열을 잠재우고 새 정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진 않을까. 누구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제 3국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민망해서다. 일지이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처사가 아닐까.

덕암 칼럼 승자의 여유 일지이무
  • 	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프랑스에 난리가 났다. 고등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며 시작된 시위에 당국의 강력단속으로 발단이 되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번 집단행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고 참다 못한 학생들의 분노가 도화선이 되어 교사는 물론 교육 관계자들까지 합세하는 분위기다. 단순한 요구에 힘으로 누르려는 정치인들의 안일함이 불러온 참사다. 여기서 한국의 공교육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한국은 프랑스와 견주어 볼 때 가히 천국이라 할 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2026년 105개국, 1501 대학교를 대상으로 평가한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가장 대단하다는 서울대가 66위, 연세대 97위를 제외하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한국의 대학교가 얼마나 처참한 점수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카이스트도 339위로 한국 대학 10곳이 겨우 500위권 안에 들어왔다. 대부분 미국과 영국이 차지한 대학순위에서 프랑스 psl 대학이 28위를 기록했고 에코 폴리테크니크 대학이 41위를 찍었다. 둘 다 한국의 대학을 앞질렀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나타낸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왜 들고 일어 났을까. 그리고 막는다고 막아질까. 한창 자라는 10대 청소년들의 욕구와 의지가 경찰이라는 옹벽에 무너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대화로 풀고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는 관점부터 고쳐야 한다. 한창 겁 없이 자라는 청소년 들이다. 이들은 향후 프랑스의 주인이자 그 다음 세대에게 찬란한 현대사회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계층이다. 마치 이솝우화에서 비롯된 속담 중 하나인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과 같이 권력으로 입을 막는 시대는 이제 구시대적 유물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치고는 대단한 기록이다. 반면 한국은 그 어떤 고등학교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불만으로 집단 시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에는 막대한 교육예산에 학부모들의 강한 교육열은 사소한 민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만큼 철저히 학생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완비 되어 있다. 프랑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단한 인재들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재능을 찾는 노력을 하지만 대한민국은 최상의 환경 속에서도 명문대 졸업장만 따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학벌 위주의 카르텔에 기대어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간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러하고 그런 현실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다. 어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근면 성실하기로 명성이 높았던 대한민국이 가장 게으르고 안일하고 이기적인 국민으로 바뀌었을까. 하마부터 배가 불러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힘든 일을 전가 시키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놀고 먹을 수 있는 선진국에 진입한 것일까. 너무 빠르다. 풍성한 결실이 맺기도 전에 설익은 과실을 너무 빨리 따 먹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배 아플 날이 온다. 대한민국 보다 훨씬 더 잘사는 유럽국가들도 아낄 건 아끼고 근면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이다. 말로만 한다던 교육정책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학교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학교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 1명을 놓고 교사, 양호, 급식, 예체능, 시설, 행정, 온갖 명분으로 여러 명이 뜯어먹고 사는 구조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년 간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소진 시킬 수 있는 지출 내역을 만들어 이듬해도 편성 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현 시스템은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세계 대학순위 문턱에도 못 올라가는 현주소를 알고도 입시 중심의 교육방침이 바늘구멍으로 낙타 몰이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전후 세대인 50-60년대 출신들이 증명했다. 콩나물 교실에서 학급당 60명이 지엄하신 선생님들의 학습방침에 매를 맞아가면서도 공부한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척추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된 바 있다. 그러니 지금의 학생들이 이처럼 훌륭한 교육환경에 인재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막대한 예산, 부족함 없는 환경, 그러함에도 왜 낙제점 대학으로 종결될까. 문제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 유지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교육계의 카르텔이다. 한 번 만이라도 국정감사나 특검을 통해 지출 내역을 촘촘히 파헤쳐 부실한 부분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생을 한국에 입국시켜 지금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반대로 한국 학생을 프랑스 교육환경에 배치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빈부격차로 인한 교육환경의 격차, 전기도 제때 안 들어오고 화장실에 휴지도 없는 교실, 유리창이 깨져 나무판자로 대신한 교실, 학교의 건축 연한은 평균 50년, 교사 부족으로 몇 개월씩 수업이 멈추는가 하면 갈수록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 하는게 현실이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2위 경제 대국 프랑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나라 운영을 제대로 못하니 돈이 딸리는 것이고 교육환경이 함께 열악해진 것인데 수습할 길이 전혀 안 보인다. 비교 하건데 지금 대한민국 교육환경은 인재양성의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앞서 거론했듯이 문제는 교육방침이다. 현재 프랑스는 10대 학생들의 외침으로 고요했던 아침이 요란하다. 새벽 닭이 밝은 아침을 바라지만 정부는 모가지를 비튼다. 그런다고 날이 밝지 않을까. 과거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한 계층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지만 도화선은 대학생들이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030 세대들이 또 다른 독재를 우려하는 항거가 잇따르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했다. 광복이후 변함없는 입시지옥문이 대선되지 않는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변화와 발전을 공감할 때 교육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디딤돌이 되어야 할 정치가 가장 걸림돌이다. 어째서 공정해야할 교과서가 좌파사상의 교본이 되어갈까.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자동차와 인류의 공생
    덕암 칼럼 자동차와 인류의 공생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칭하고 인간이 이룩한 첨단과학의 꽃이 자동차라 한다. 이점에 대해서 부인할 사람도 없거니와 자동차는 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를 뜻하는데 당초 말이 끌던 수레를 디젤 엔진이 생기면서 말 1마리가 끄는 힘을 1마력이라 칭하는 기준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마력수는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가 수 백마리의 말이 끄는 것과 같은 막중한 동력으로 사람과 화물은 물론 현대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초기의 자동차로부터 지금의 자율주행이 상용화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가. 한국에서도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쓰다 버린 지프차의 껍데기를 두들기고 개조하여 어렵사리 출발한 지 60년, 이제 현대를 비롯한 굴지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적이라 하겠다. 지금이야 자동차가 차종도 흔하고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 선택의 폭이 많아졌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중고차의 인기는 대단했다. 필자 또한 1987년 처음 화물차를 구입한 이래 지금까지 중고차량과 신차를 포함해 약 40대 가량을 폐차시킨 이력을 갖고 있다. 돌아보면 첫 차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유사할진대 자가용 열쇠를 손에 쥐는 감동이야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현대 프레스토, 대우 티코로 시작해 고급 승용차, 덤프트럭, 화물차, 버스는 물론 땅 위에 굴러가는 굴삭기 까지 참으로 많은 차량을 구입했다. 중도에 팔기도 하고 폐차도 시켜보면서 주행해온 거리만 해도 년 간 5만km씩 200만km를 훌쩍 넘으니 지구를 50바퀴나 도는 거리를 핸들을 돌리며 차장 앞 유리로 지난 장면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파란만장했다. 그러는 동안 교통사고도 많이 겪게 되고 본의 아니게 사상자도 내 본 바 있으며 눈으로 뻔히 보고도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전복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오늘 글의 소재는 자동차 없는 날이기에 차량에 대한 무용담 보다는 자동차로 인한 대기오염감소와 관련 산업의 단점을 나열하여 가급적 하루라도 운행을 자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이미 자동차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매김하여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특히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지만 편의성을 지닌 만큼 보행의 여지를 앗아가기도 하고 도보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기도 한다.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터널, 교량, 휴게소와 정류장 등 자동차로 인한 운송환경은 물론 자동차의 실내, 외 성능개선을 추구함에 있어 추가되는 관련 산업의 발전은 탄소배출을 피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최근 수만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네팔 중국 산사태 또한 빙하가 녹아내린 호수가 범람하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해수면은 점차 상승하고 1m 상승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의 1.6배 면적이 침수된다. 따라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점인데 국제적 합의에 따라 탄소배출에 대한 경각심은 수출입 환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그러다 대세를 이룬 것이 전기차 시장인데 선진국일수록 전기차에 대한 연구 개발이 앞선 바람에 시장의 우선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전기차도 배터리 폭발과 수명이 만료된 폐배터리 처리에 대한 환경오염은 기존의 내연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상한선이 없었다. 일부 국가에서 개발중인 스카이 택시나 드론주행이 점차 상용화되면서 이제 하늘은 도로 못지않게 북새통을 이룰 전망이다. 물론 드론은 자동차로 분류될 수 없지만 운송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이루다 보니 이 또한 방법만 다를 뿐 자동차 기능과 역할을 할 것을 기대된다. 지금 추세 대로라면 머지 않아 자율주행으로 인해 인간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일은 점차 막을 내릴 전망이다. 따라서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 그리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자동차를 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10년도 가지 않아 모든 자동차가 전기나 태양광, 수소 등 친환경 연료가 대세를 이룰 것이며 기존의 화석연료로 운행하는 차량들은 생산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정보를 전제로 하자면 국토 교통부에서는 이미 스카이 맵을 개발중에 있으며 머지 않아 비행기만 날던 텅빈 하늘에 드론 운송기구가 줄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될 것이다. 그 때 쯤이면 지금처럼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는 무식한(?)현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해 못할 말로 전달될 것이다. 자동차가 인류에 편익을 제공하는 대신 경적 소리나 엔진소음,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 되면서 발생하는 비산먼지,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제조과정에 피할 수 없는 환경오염 등을 감안할 때 많은 단점을 안고 있기에 하루만이라도 자동차운행을 멈추고 그 도로를 거닐자는 취지로 정해진 날이 오늘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때로는 10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환경에서 자동차의 장점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고 있다. 사계절 자연 환경 속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성상 자동차로 인한 안락함과 편리함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생명체가 아니라 부품의 결합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언제든 수명이 다하면 아무 미련없이 교체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끼는 애마까지는 아니다. 당초 자동차 없는 날이기에 덜 타자는 취지를 논해야 하는데 만들어 놓고 타지 말자는 것 자체가 무색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나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일조하고자 오늘의 글을 쓴다. 독자님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이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덕암 칼럼 이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처음부터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비장한 각오로 국회에 달려갈 때의 다짐, 이름도 명예도 없이 목숨 걸고 국회에 모여 계엄군의 총과 장갑차에 맞섰던 그 날 밤을 강조하며 현 정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왜 윤 대통령이 계엄을 하게 되었는지와 각종 예산을 0원으로 삭감했다가도 정작 현 정부에서 부활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어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정치를 결심했을 때를 거론하며 자신의 무용담으로 시작했다. 발표문을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으나 20분 남짓 발표된 내용 중 “국민” 57회, “이재명” 7회 “대통령” 16회와 사자성어와 미사여구가 수시로 등장해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해 가슴 아프다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에 이어 자신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모두를 안지 못한데 대한 어필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민주당 내분을 수습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국무회의나 업무보고에서는 슈퍼맨이나 다름없이 모르는 게 없는 대통령으로서 기관장들 대답에 면박으로 대했던 점과는 대조적이었다. 각종 사건사고와 경찰의 부패, 부실수사 등 치안 문제가 산적했음에도 이에 대한 대안보다는 검찰개혁과 검수완박에 대해서도 끝까지 고수하겠다며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정작 염려하고, 궁금해하고, 야당이 질타하고 있는 국방, 외교, 치안, 경제, 개헌과 연임에 대해서도 기자들의 질문이 있기까지 발표는 없었다. 특히 인권과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공정하고 타당한 사회 질서 유지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하여 단 한 톨의 억울한 피해도, 작은 빈틈조차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명확한 입장이 전무했다. 회견문 발표 중에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이해훈, 강선영, 용혜인 등 여성 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와 김승원, 강신철 등 법무, 국방 장관에 등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과 그에 대한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없었다. 특히 호남 반도체 유치로 삼성과 LG 그룹총수들의 유보적인 운영방침에도 마치 기업의 경영을 정부가 정한 것으로 비춰져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대표가 선출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대해 유치조건이 우수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에 대한 입장도 없었다.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고 염려하고 야당 의원들이 질타하는 현안 문제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1987년 이후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5.18 광주, 부마항쟁 등 국민의 기본권과 연임제 도입을 일관되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5.18과 관련해서는 최근 이진숙 의원이 포럼개최만으로 민주당이 집단 성토하며 고소고발이 난무했는데 이에 대한 언급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늘 하는 것도 아니고 민감한 시기에 대통령 기자회견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자리였기에 더욱 말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회견장이었다. 특히 경제와 민감한 부동산 정책은 법적 단속에 비해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왔고 지방으로 갈수록 일반 서민들의 불만은 급증 했지만 이 또한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적극 노력 등 말로만 봉합하는 수준이었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서 개헌으로 인한 대통령의 연임 여부를 묻자 명확히 아니라고 답변했고 또 다른 기자의 질문에서 인사 시스템에 대한 입장을 요청하자 할수록 어렵다며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말로 마무리 했다. 후보자들이 문제가 많으니 임명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질문인데 신중하게 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온 국민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이걸 알면서도 질문에 대해 엉뚱한 말이나 판단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답변으로 본질을 흐린다. 또 다른 기자의 질문에서 공소 취소와 관련 재판을 받겠냐는데 대해 지난 정부가 무리한 수사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다며 자신 또한 피해자이고 악의적인 수사가 남발했다며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궤변으로 질문의 핵심을 흐리는 말로 대신했다. 이 같은 화법은 국회에서 장관후보자 청문회가 열렸을 때 후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국회의원이 질문하는 가운데 끼어들어 답변하고 질문과 답변이 양쪽에서 동시에 계속 충돌하는가 하면 질문과 무관한 답변으로 질문을 방해하는 수법, 가령 주적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대상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주적이냐고 물으면 또 같은 소리로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대상이라고 말한다. 동문서답, 같은 답의 번복, 상대가 말하면 동시에 같이 말해서 제 3자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드는 말솜씨 등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화법이 국회에서도, 청와대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국방과 외교부문에서 H일보 기자는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질의하자 세계 각국이 자국의 상선과 원유운반의 안전을 위해 파병하지만 한국은 최소한의 활동을 전제로 파병을 고려할 수도 있다며 어떤 경우라도 전쟁터에 우리 군인이 파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란과 러시아, 중국, 북한이야 좋아하겠지만 모든 수입구조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과연 트럼프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미 시진핑과 이란 대통령은 미국으로 온다 하고 트럼프는 북한으로 간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퍼진 상태다. 한국만 패싱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며 소통과 협력을 통해 북으로 부터의 위협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패싱은 절대 아니고 우리 정부의 역할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정작 국민들이 듣고자 하는 핵심은 미미 하지만 말은 화려했다. 많은 친척들이 모여 정치에 대한 평가를 할 추석 명절이 몇 일 남지 않았다. 일국의 지도자 회견을 비평하고자 함이 아니라 직언으로 보다 나은 국정을 지향함이다. 만약 간언은 이미 측근들의 아부로 차고도 넘침이 있을 것이니 어차피 하는 기자회견이라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고자질의 악순환
    덕암 칼럼 고자질의 악순환

    말을 안해도 될 때 하는 것은 죄가 작으나 해야할 때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그 죄가 크다했다. 이는 충신들이 주군에게 직언과 충언을 아끼지 않을 때 임금이 올바른 정사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인데 간혹 왕의 비유를 맞춰 자신의 입신양명을 도모하는 경우 감언이설이 난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요즘처럼 계엄령에 동조한 군인에게 내란혐의가 더해지니 명령을 불복종한 군인은 출세를 하고 상명하복의 원칙을 따랐건 군인들은 죄다 처벌받는 경우,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군인들이 허위로 증언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먼저 고자질이란 남의 허물이나 비밀을 일러바치는 짓인데 정의감의 발현에서 하는 경우도 많으나 대부분의 경우 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고자질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나 보복심으로 또 다른 밀고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호간의 불신과 풀지 못할 인간관계가 설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정해진 규율이나 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을 침묵하지 않는 것이 사회 질서 유지에 있어 옳은 행동인데 이를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보상금을 노린 상습적 신고라면 독자님은 어떤 판단이 들까.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역모를 꾸몄다가 내부 고발로 실패한 사례도 많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회사의 중요사항을 누설시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많았다. 장점이라면 규칙 위반이나 잘못된 행동을 미리 막을 수 있어 문제를 재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며 상대방은 더 이상 규칙 위반 외 잘못된 행동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짐은 물론 지속 되지 않도록 경고나 교훈을 줄 수 있다. 반면 누군가를 일러 받치는 것이니 이것이 반복되면 집단 무리에서 배척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도적인 민원을 일으켜 평소 근무하던 사업장에 피해를 주는 경우는 업주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됨은 물론 추후 고용하려는 면접 시에도 엉뚱한 근로자에게 그 피해가 갈 수도 있다. 오늘은 국민들 간에 서로 일러바치고 고자질한다고 돈을 주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 정의감이나 공익에 이바지할 목적이 아니라 돈벌이로 전락한다면 파파라치 양성으로 인해 불신사회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1,117억원에서 745억원 늘어난 총 1862억원 규모의 2027년 예산 및 기금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는 분야는 부패·공익신고자 지원이다.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보상 예산을 49억원에서 451억 원으로 1년 만에 9배 넘게 늘리기로 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신고로 공공기관의 수입이 회복·증대되거나 비용이 절감된 금액인 1억원 이하는 30% 40억원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적용되는 비율이 4%까지 낮아지는 구조다. 앞으로는 수입 회복액의 30%를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개편한다. 최대 30억원의 상한이 적용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문으로 신고하고 돈 벌겠다는 걸 금지할 필요가 없다며 이런 부정부패를 발굴해서 신고하거나 이렇게 하는 걸 업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통령도 권하는 직업이니 돈만 번다면 이 또한 괜찮은 일로 여겨질 전망이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한 부패신고자에게 18억2,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고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을 고려하면 적극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특히 공익제보자가 신고 이후 업계 퇴출이나 소송, 생계 위기 등 각종 불이익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상금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감수하는 위험의 사후적 보전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집단·특이민원 대응 예산을 올해 2억3,000만원에서 내년 69억9,000만원으로 확대하고, 민간 전문가와 특이민원 전문대응관을 시민상담관으로 위촉한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제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사회적을 고립시킬 목적이라면 이는 범죄행위다. 최근 한동훈 국회의원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빨을 뽑겠다고 한 발언을 두고 고자질 당사자에 대한 신변위험이 대두되고 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한동훈 의원의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 신약 로비 의혹 제기를 두고 짜깁기 조작을 했고 마치 의인이 존재해서 제보에 의해 한바탕 쇼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앞에 가짜 장막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승원 후보자 신약 로비 의혹 제보자 조 아무개씨의 정보를 공개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금전회수 또는 투자 명목 환수를 해내지 못한 조씨가 본인의 목적 달성 실패 이후 사전에 국민의힘과 관계를 맺고 이것을 토대로 대검찰청에 제보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공익제보자를 아웃팅하는 것은 대단히 비열한 일일 뿐만 아니라 위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빨 뽑겠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번처럼 정치적 성향의 공방은 고발에 앞서 장관 청문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공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전제로 무차별 제보에 나선다면,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고자질을 직업으로 한다면 과연 이사회가 밝아질까. 그리고 청렴하고 부패없는 사회가 될까.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믿지 못하는 사회, 조사는 경찰이 하고 단속은 관할 공무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권할 게 없어 전문으로 신고하고 돈 벌겠다는 걸 업으로 하라고 말할까. 말에도 급이 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장점보다 단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개똥밭이라도 이승이
    덕암 칼럼 개똥밭이라도 이승이

    세계보건기구와 국제 자살 예방 협회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2003년 9월 10일 제1회 세계 자살 예방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한국에서도 2011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9월 10일을 자살 예방의 날로 정했다. 그 후 23년 동안 꾸준히 관련 행사가 이어진 바 있다. 이 같은 날이 정해진 배경에는 해마다 약 100만 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바 있으며 지난 50년간 이 같은 추세는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국은 2000년 이후 해마다 증가해 매년 평균 13,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1위로 2위와의 격차가 매우 심한 편이다. 사회적 파장이 심한 것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지인과 가족들까지 정신적 경제적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게 되며 국가 차원의 대책이 더욱 절실한 것으로 요구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한국자살예방협회를 설립했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마감한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든 허용될 수 없는 자유다. 굳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라는 말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했다. 최근 기본소득당 당직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 보란 듯이 팔뚝에 문신을 새기고 등장했다. 나름 개성이고 자유라 할 수 있겠지만 공인으로서 갖춰야할 사회적 예의이자 방송을 보는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모방의 여지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기에 이 또한 신중함이 따라야 한다. 공인과 자유인의 차이다. 각설하고, 부모가 자식을 낳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몸을 빌려 출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말 서대의 피를 흘리고 여섯말 여섯 대의 젖을 먹여 키운다는 회심곡의 한 대목이 있다. 산고를 이기고 낳은 자식을 탯줄을 자르고 업고 달래가면 키우다 보면 그 정성이 끝이 없다. 혹여 발가락 손가락 제대로 달려있는지 눈은 보이는지 커가면서 정신은 멀쩡한지 온갖 근심 걱정으로 키운다. 아프면 밤새 병원으로 달려가고 학교 다닐 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입히고 먹이고 걸음마부터 달리기까지 귀하지 않은게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어린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란 말이 있다. 그렇게 키워도 예상치 못한 후천적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성치 않을수도 있고 출가해도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까봐 염려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사람사는게 어느것 하나 마음대로 될까마는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산자의 의무이자 낙이자 보람이라 할 수 있다. 살면서 때로는 벼슬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또 때로는 뜻깊은 일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은 종족보존의 거룩한 노력이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낳고 자라고 커가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게 되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이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늘아래 땅위에 하나 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감안 할 때 생명처럼 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현실적인 이유와 대안을 찾아보자. 가장 먼저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실도피에서 비롯된다. 죽을 만큼 두렵고 괴롭고 마음을 기댈 곳이 없을 때 삶보다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에게 최명길이 올린 말 중에 죽음은 가볍지만 그 모든 치욕을 짊어지고서라도 살아남아 삶을 잇는 것은 묵직한 일이라 했다. 명분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길보다 굴욕을 겪더라도 생명의 엄연함을 택하는 길이라며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 강한 자가 승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승자다. 사람이 죽음을 선택했을 때 산자가 하는 말중에 오죽하면 그랬을까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오죽하면 이란 전제는 숱하게 겪는 일이다. 여기서 오죽이란 심하거나 대단할 때 쓰이는 말이다. 사람의 심리적 나약함이란 비교하기 나름이다. 오래전 서울 서초동 세모녀 일가족 살인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하겠다. 강남 엘리트 가장의 몰락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48세의 가장이 실직을 하고 대출금으로 전전하다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에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자해하다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다. 농촌 같았으면 대단한 부유층에 속했을 경제적 규모가 주변 이웃들과 비교우위에서 밀리자 현실을 포기한 사건이다 범인은 무기징역형에 처해져 지금도 수감중이지만 사람의 심리적 나약함이 가져온 참극이었다. 필자도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10년 주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모두 실패한 과거가 있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압박에 대한 괴로움과 인간 관계에서 겪게 되는 갈등 등으로 6번이나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또한 감내할만한 하늘의 숙제였다는 판단이 든다. 사람이 살면서 후천적 사고로 실명을 하거나 사지가 마비 되었을때의 절망감보다 클까. 사지가 모두 기형적으로 자랐어도 일상생활을 모두 해내는 억척스런 삶도 있는데 등따숩고 배부르니 이젠 별일이 다 생의 마감 이유가 되고 있다. 심지어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사망하면 동반 자살로 따라가는 베르테르 효과도 한 몫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자살 예방 지도사 학습으로 자격증까지 습득하고 살아생전 장례식을 미리 치르는 웰 다잉도 학습 과정을 운영한 바 있다.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 국가데이터처가 2025년 9월 발표한 2024년 기준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자는 1만4872명으로 2011년 1만5906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04년부터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일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명색이 대통령이 하고 많은 말중에 할 말이 없어서 올해 자살사망자 감소가 정부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까 그러면서 자살자 수 대폭 감소는 우리 정부의 여러 성과 중 가장 의미 있고,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어떤 교수는 2026년 상반기 자살사망자 수 통계가 작년에 비해 910명, 줄었다며 온 국민이 기뻐해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뻐할 일이라면 이미 극단적 선택을 마친 사람들은 뭐가 될까. 덕암 김균식

  • 잊혀져 가는 한식날
    잊혀져 가는 한식날

    한식날은 조상의 묘를 찾아 잡초를 제거하고 평소 고인의 삶을 회자하며 산 자들이 망자를 기리는 날이다. 매장문화가 화장장으로 변하면서 이제 그런 풍경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그나마 장례조차도 간소화시키는 작금의 변화를 보면서 저출산이 불러올 비극을 모두가 공감해보자. 문명의 발달이 불러온 정신문화의 추락이 문제다. 뭐든 돈 이면 안되는 게 없고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며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이 비인도적인 측면으로 발전하면서 효율성만 강조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AI나 로봇의 등장이 불러온 인간 가치의 추락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연장의 욕심은 평균수명을 100세이상으로 추구하고 있다. 살아남아 제사지낼 사람도 없는데 언제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잡초를 깎는 수고를 한단 말인가. 길어봐야 십 수년 뒷면 조상 묘도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고 어쩌다 납골당 주변 추모공원을 찾아 성냥곽같은 유골함 아파트의 유리를 어루만지다 오는게 전부일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장례를 치러도 문상객이 없다.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대폭 줄어들었다. 상조 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에 따르면 해를 거듭할수록 이런 현상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 10년 정도만 지나면 장례문화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직 까지는 부의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상조회사에서는 고인의 장례절차나 추모의 분위기가 엄숙히 지켜질 수 있도록 전문성을 더하지만 문상객이 없고 유족이 장례 치를 경제적 여유나 방법을 모른다면 과연 망자의 가는 길은 살아생전보다 더 험하지 않을까. 결혼식은 미리 알고 준비 하지만 장례는 예고 없이 치러야 한다. 당사자도 북망산천 가는 길을 미리 알 수 없지만 유족들도 미리 준비할 여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는 것이 인간의 죽음이다. 갈수록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남은 유족이 있어야 장례를 치르는 것이고 매장을 해야 무덤이 생기는 것이며 그래야 잡초를 제거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오늘은 절기상 한식 날이다. 아직은 공동묘지나 추모공원 주변이 교통정체로 복잡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조상을 모신다는 것, 자라는 아이들이 볼 때에도 산 교육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산자들은 적어도 부모를 모시고 기린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망자의 혼령 또한 자손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땅속의 흙이되어 영면하신 고인이 무슨수로 자라는 후손들을 볼 것인가. 사람이 살면서 밥만 먹고 배설만 한다고 사람은 아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은 동물도 하는 본능이다. 불과 물을 다루고 문자와 언어로서 의사소통을 하는 만물의 영장이 조상의 죽음에 대해 귀찮아하거나 소홀히 대한다면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도 아니고 아버지의 정기를 받고 어머니의 몸을 빌려 태어난 것이지 핏덩어리로 태어나 지금의 각자 모습이 있기까지 저절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들이 보거나 타국인이 봤을때도 그러하다. 자기 부모도 소홀히 하는 인간성이 무슨 이웃을 살피고 나라를 위할 것이며 자식을 낳아 인재로 양성할 것인가. 좁은 국토에 매장문화가 발달하면 환경적으로나 국토 이용에 관한 문제점도 피할 수 없지만 이제 달라지는 매장문화에 따라 한식날은 날일 뿐인 기록으로 남게 돨 전망이다. 향후 24년 뒤 2050년 한식날 묘지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평범한 야산일 뿐이며 성묘객 없는 무덤은 풀이 자라고 봉분도 무너져 비석조차 나뒹굴 것이다. 적어도 한 나라, 한 시대의 변천을 이뤄낸 주인공들이다. 후손에게 돈만 남기면 돈벌레가 될 것이고 부동산을 남기면 당대에는 잘 산다 하지만 선조들은 잊혀질 것이며 책을 남기면 도서가 양식이 되고 얼과 혼을 남기면 찬란한 정신문화의 발전을 이룩한다. 사람이 살면서 하나 둘씩 변하고 달라질 수 밖에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잊혀진 것이 너무 많고 앞으로도 간직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문명의 발달과 인식의 변화로 인해 무형의 자산을 잃고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도 잊고 동짓날 팥죽도 잊어간다. 연예인 생일은 알아도 부모님 생신은 모르며 개똥은 봉투를 갖고 따라다니며 우리 애기 응가 했냐며 치워 주지만 부모는 침만 흘려도 더럽다고 피한다. 갈수록 초고령화로 수직 상승하는 대한민국의 인구분포도로 인해 젊은이들이 애써 번돈으로 노인들이 기대어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과연 그때도 한식날 산소를 찾아갈 것인가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면 부모가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성묘나 산소에 잡초 제거하러 갈 사람이 없다면 그 삶은 안 죽고 영생 하는게 아니다. 다시 말해 지금이라도 조상을 추모하는 예의와 후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지켜야 하는게 맞는 것이고 그래도 후손들이 보고 배울까 말까 하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한식날만큼이라도 자신을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가 생전에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고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가정교육이 될 것이다. 이제 장묘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그리고 수목장이나 유골을 구슬이나 도자기로 만드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일부는 바다나 강에 뿌리기도 하고 가진 재력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명당을 찾아 묘를 쓰는 경우도 있다. 생로병사의 굴레는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죽음이 끝이라면 어찌 국립묘지가 운영되는 것이고 불가에서 윤회를 논하고 예수가 영생을 전제로 믿음을 강조할 수 있을까. 우리네 인간은 길어야 100년도 못하는 삶속에 온갖 오만과 건방과 자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일부 철학가나 종교인이 신과의 교감을 추구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삶이고 일반인들의 삶은 태어나서 20년은 몸만 키울 뿐이고 70살이 넘으면 살아도 열정이 사라진 채 남을 삶을 영위할 뿐이다. 그렇다면 삶다운 삶은 50년 중 15년 자고 10년 먹고 25년이 전부인데 그 짧은 삶을 사는 것조차 동물보다 못하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태어나서 한 줌의 재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촌각이라하고 큰바위 위에서 승려가 승무를 추는 동안 그 바위가 다 닳는 시간을 1겁이라한다. 억겁의 세월앞에 인간의 삶이 얼마나 하루살이 보다 못한 것인지 느낀다면 조상을 섬기는 일 만큼 고귀하고 갸륵한 일이 없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약 35년 전 일이다. 당시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을 치고 있을 무렵 노조결성은 결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탄광도시 태백에서 광부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무렵 서울 도심에서도 노동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에는 경찰 최루탄이 연일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시민들까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군사정권을 막을 내리면서 노태우 정권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권력이었다. 집회 과정에 자연스레 익히게 된 민중가요, 무노동 무임금, 동지가, 등 수 십 곡의 행진곡형 노랫말과 머리띠를 두르고 평등을 외치던 일이 필자 자신에 마치 정의의 선구자 마냥 착각하며 의기와 투지로 나날을 보내던 날들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어용노조였다. 회사 측이 노조설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짜 노조를 설립하여 정상노조의 출범을 막는 구조였다. 어쩌다 정상노조가 자리를 잡을 때면 회사를 구한다는 구사대를 고용하여 폭력으로 강제 진압하던 구시대적 산물, 세월이 40년 쯤이나 지난 2030년, 다시 정권을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권력을 비호 하기 위한 가짜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들어선다면 단순히 회사 하나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말아먹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 총선이 돌아오는 2028년,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런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여당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그래서 제동기능을 잃은 초고속 열차가 국민 안위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목적지로 질주한다면 그땐 어쩔 것인가.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독재는 스스로 정화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여야를 떠나 지금까지 당선 전과 당선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건 이미 광복 이후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지켜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당연히 자정 기능을 마련한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의 맛을 포기하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어용 야당은 겉모양은 야당인데 하는 짓이 여당보다 더 여당의 속내를 갖춘 정치인들이다. 야당의 역할은 여당에 대한 견제장치이자 건전한 정치 발전의 양대산맥으로서 선의의 경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구도다. 따라서 여야 간의 이견 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견과 대립은 그 폭이 클 수 밖에 없다. 이견은 같은 안건이라도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해 다양함을 구할 수 있으나 대립은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결과를 초래한다. 대립으로 인한 폐단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 늘 존재했다. 서인동인, 남인 북인, 노소갈등과 양반 평민, 상놈이란 계급사회가 그러했고 식민지 시대에도 친일과 반일, 지금은 영, 호남이 지역갈등, 남녀 갈라치기와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찢어 놓음으로서 다수의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분열이나 갈등도 조장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지구 반대편 밀림지대 숲속까지 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이런 계층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작 참으로 염려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견이나 대립 정도가 아니라 어용 야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진정한 견제세력이 없는 세상, 야당같은 여당이 한둘이 아니라 수십개 창당하여 여당 스스로가 만든 야당이 판을 치게 된다면 국민들의 선택은 어디로 갈까.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파랗던 색깔이 붉은색과 구분되던 지금은 도 아니면 개라도 선택하겠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파란색이 만든 붉그스럼한 색의 야당, 오렌지색 야당, 분홍빛 야당이 생겨난다면 파란색 철옹성은 절대 권력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필자는 권력에 대한 독주를 우려하는 게 아니다. 독재도 잘만 하면 국력을 강화 시키고 국민들의 화합을 유도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 당시 무슨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던가. 그래도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국민들은 국익 중심의 정책에 애국관이 투철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자유와 문명의 발달에 길들여진 국민이다. 과거마냥 하란다고 하는 국민이 아니고 갈라치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미끼로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인내로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야당의 출범이 두려운 것이다. 여당 독주의 세상에서 얼핏 보면 국민들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군소 야당들의 출범은 민과 관 사이에 기생하며 예산만 축내는 어용시민단체들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정작 나서야 할 자리에는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안 나서도 될 자리에는 촛불과 횃불을 켜며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다. 어용 야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권력 보좌의 2중대가 되어 온갖 명분으로 세금 축내며 마치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때는 무슨 대책이 있을까. 감히 그런 기형적 성장을 누가 막을 것이며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며 누가 앞장설 것인가. 지금도 수 천 개의 단체가 국민 세금을 축내며 기생하고 있는 판에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다. 어쩌면 2026년 지금의 국민의 힘이 그나마 붉은 색 야당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는 마지막 진짜 야당일지도 모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마지막 발악의 포효로 여 야라는 정치적 구도의 끝 자락 일수도 있다. 두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지키지 못했던 야당이다. 그리고 스스로 서로가 배신을 밥먹듯한 야당이다. 여당의 독주를 지켜볼뿐만 아니라 뒤로 거드는 야당이다. 역사는 흐른다. 누가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후손들에게 귀감 내지는 오점을 번복하지 않는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대한생활체육회 회장 김균식

  • 	덕암 칼럼 최상의 평화는 최고의 국방
    덕암 칼럼 최상의 평화는 최고의 국방

    군대를 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공통의 암기 사항이 있다. 군인정신, 군인의 길, 당일 암호 등 군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국방의 운영 시스템에 적응하고 명령에 복종하여 안정된 국방의무를 이행하도록 훈련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공격과 방어 개념을 교육받는 과정에 오래전 손자병법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무기가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시대에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무기가 달라질 뿐이지 적국을 공격한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죽음과 삶의 바탕이고 존속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는 전쟁이 난다하고 났던가. 오랑캐도 왜군도 동족상잔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경계와 첩보가 빠르다면 전운이야 감 잡겠지만 피하지 못할 전쟁이라면 항복하든가 싸우든가 둘중 하나다. 항복이란 우리 한민족이 숱하게 해왔다. 선조도 그랬고 인조도 그랬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여자들을 적국의 공물로 바치는 일도 많았고 그런 와중에 목숨걸고 싸운 장군들이나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으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작 임금이란 자는 이리저리 피신 다니며 그 와중에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먼저 손자병법이란 고대 중국의 병법서로서 동양에서 가장 위상이 높던 병법서들인 무경칠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병서로 꼽힌다. 병법서들 가운데서도 특히 공세와 세력확대에 중점을 두었으며 춘추시대 오왕 합려를 섬기던 손자의 저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양대군이 최초로 손자병법에 주석을 저술한 무경칠서주해를 편찬한 바 있다. 전쟁은 나라의 생사가 달려 있으므로 신중히 계획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선제공격, 전면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무식한 발언이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던 말이 얼마나 무모한 말이었는지 일국의 대통령이 맞나 싶었다. 무력사용은 결국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중에 하나에 불과하므로 적의 목표를 먼저 좌절시키는 노력을 하고 그것이 안되면 외교 수단을 동원을 하고 그 다음 군사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은 남북 전쟁 발발 시 피할길이 없다. 삼면이 바다인데 어디로 갈까. 피하지 못할 땐 즐기라고 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면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혹독하고 고난이도 훈련을 받은 북한군과 참호전을 벌이면 이길 수 있을까. 북한은 이미 지구촌 모두가 공감하는 핵보유국이나 마찬가지다. 구시대 군사 물자는 우리한테 딸리더라도 핵무기만큼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하여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안에 두고 있다. 손자병법은 여기서 화공편을 논한다. 불로 병력과 물자를 파괴하는 방법과 고려사항을 논한다. 흥미롭게도 그 파괴로 인한 정치적, 도덕적 비용문제도 다룬다. 그리고 용간편이라는 정책도 쓰는데 이는 간첩을 사용하는 법이다. 국내에 활동 중인 종북 좌파와 각종 친북 단체들이 난무하는 정국을 감안할 때 전쟁 발발 시 모두 적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손자가 생각한 최상의 병법이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인데 과거에 중국이 조선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공격했다면 지금은 경제, 외교, 서해시설물 설치 등으로 압박해오는 방법을 쓰고 있다.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죽게 된다. 전쟁은 죽냐 사느냐의 문제, 곧 명이 걸린 문제이다. 전쟁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결국 개죽음일 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며 되살아날 수 없다. 적국을 훼손하여 무너뜨릴 때 오래 끌지 않는다. 병사가 손상되지 않는 완전한 승리를 한다. 손자병법에는 적군보다 10배의 병력이면 포위하고, 5배의 병력이면 공격하고, 2배의 병력이면 적을 분리 시킨 후 차례로 공격하고, 맞먹는 병력이면 최선을 다하여 싸우고, 적보다 적은 병력이면 도망치고, 승산이 없으면 피한다. 그러므로 소수의 병력으로 무리하게 싸우면, 강대한 적의 포로가 될 따름이라고 적혀있다. 속전속결로 끝날 줄 알았던 러우 전쟁이 지난 3년 동안 끌었다는 점만으로 이미 러시아 푸틴의 리더십은 바닥을 친 것이나 진배없다. 좋든 싫든 결국 공격을 꾀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면, 가능하면 적을 포위해 역으로 내가 눌러앉고 상대기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것은 공성의 기본이기도 한데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예를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만약 내가 적보다 허약한데 공격을 해야만 한다면, 공격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그냥 도망쳐야 한다. 공짜로 적에게 이익을 퍼주느니 차라리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낫다. 36계 줄행랑도 전략이다. 나와 적의 허실과 무관하게, 어떤 경우에도, 공격의 성과가 미심쩍을 상황이라면 적당한 요새로 들어가 시간을 끌며 더 나은 공격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이는 빨치산의 댸표적인 예다. 장군이 군대의 진격이 불가능한 것을 모르면서 돌진을 명령하는 것이고, 군대의 퇴각이 불가능한 것에 모르면서 후퇴를 명령하는 것을 코 꿰인 군대라고 하는데 부하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상급자 잘못 만난 죄다.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적의 상황을 알고 나의 상황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만 알고 있다면 한 번은 승리하고 한 번은 패배한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도 모르면 매번 전쟁을 할 때마다 필히 위태로워 진다. 공격해서는 안 되는 군대가 있다. 공격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 투쟁해서는 안 되는 지형이 있다. 군주의 명을 수락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안시성이 그랬고 양만춘 장군이 그랬다 장군에게는 죽기만을 생각한다면 살해될 것이고 필히 살기만을 생각한다면 포로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곽종근 전 특수전 사령관의 진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판단이 선다면 군주가 반드시 전투를 하라고 명령해도 전투를 벌이지 않는 것이 가능한데 계엄령을 공모하고서도 막상 닥치니 아니라고 발뺌하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처세도 가관이다. 참으로 한심한 국무위원이고 국방부 지도자들인데 이걸 믿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니 .......

  • 덕암 칼럼 문화 예술 체육의 가치와 역할
    덕암 칼럼 문화 예술 체육의 가치와 역할

    문화라는 단어에는 총체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예술도 마찬가지고 체육은 더더욱 그러하다. 먼저 문화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향유하고 지켜 가야할 지적 자산이자 특징이며 고유의 색깔이다. 그러므로 유지관리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으나 주체는 국민이다. 물론 여기에는 올바른 방향을 안내할 언론의 역할도 크다. 선진국일수로 문화수준도 높아지는 것이고 시민정신이나 기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반 상승되는 것이며 기성세대나 다음 세대들에게 더 없는 삶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인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예술가든지 뛰어난 자질과 열정이 빚어낸 창작 세계를 의미한다. 비단 눈에 보이는 그림이나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는 음악이나 건축물, 기타 모든 창작물이 여기에 속한다. 끝으로 체육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기록보존, 유지 관리하여 작게는 소규모 집단 크게는 국가 간 공통적인 룰을 정해 일정한 시기에 함께 향유하는 본능적 우월감을 채우는 장르다. 이 3가지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초월하여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요건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서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문화 예술 체육을 만들었고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바램은 지금도, 앞으로도 보다 폭 넓은 비젼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를 위한 예산만 낭비하고 실체는 정체되거나 퇴보 한다면 어째야 할까. 당연히 다시 재정립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기능을 살려야 맞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은 필자가 지난 수 십 년 문화 예술 체육을 취재하며 확인한 대한민국의 현실적 상황을 정리한 것이지 AI를 이용하거나 백과사전에 적시된 내용이 아니다. 물론 문제지적에는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모습인데 무 관중 무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거리두기로 안방극장이 후끈 달아올랐던 시기, 트롯 열풍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나머지 모든 음악을 평정해 버렸다. 동요, 민요, 가곡, 성악, 등 모든 분야의 음악은 물론 종사했거나 무대를 사랑했던 무명가수와 극단, 합주단, 심지어 예술단까지 설자리를 잃었다. 관련 산업도 사양길을 걸었다. 조명, 음향, 동네소극장까지 하나 둘씩 국민들의 선택에서 멀어졌다. 명문대 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성악가들이 무대, 관객, 배우라는 3대 요소에서 외롭게 혼자 남았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은 화려한 조명과 막강한 무대설치, 현란한 방송사의 각본대로 미쳐가고 있었고 기존의 가수들이나 무대 주인공들에 대한 비중은 그만큼 편향되게 쏠림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미술 세계도 마찬가지다. 경매시장도 얼어붙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활성화 되었던 미술작품의 주인공인 화가들이 개인전이나 정기전시회를 열었지만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어디 문화 예술뿐일까 체육 또한 부패와 예산낭비로 정부와 체육단체간의 갈등이 심화된 시기가 있었다. 년 간 수 천 억 원대의 예산으로 원로 체육단체장들의 자리다툼과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정작 경기장에서 뛰어야할 선수들은 뒷전이었다. 프로 선수들은 오로지 신기록 수립이나 금메달이 아니면 선수생명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기껏해야 일선 학교 체육교사나 개인 체육관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아마추어 체육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묶은 다음 사장된 국민들의 생활체육은 지자체장의 홍보무대로 전락했다.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뿌려가며 각 지자체 마다 경기를 개최하지만 보도 자료를 보면 대부분 현직 단체장들의 생색내기와 지역 언론사들에게 배포 되는 홍보사진이 전부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빚은 참사중 하나다. 이제 함께 모여 먹던 음식도 혼자서 배달음식으로 채우니 마치 닭장의 닭들이 사료 먹는 풍경이나 진배없고 너도나도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다른 것은 쳐다도 볼 줄 모르는 시대에 도래했다. 그렇게 생활체육은 일부 유명인사들의 잔치 마당으로 전락했으며 정작 건강한 체육활동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기껏해야 공원을 산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어쩌다 이 나라 국민들의 문화예술 체육이 이토록 황무지 나락으로 떨어졌던가. 문제는 종점이 사라지면 출발점도 동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가봐야 결론이 자명한데 누가 애써 길을 걷겠는가.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를 굳이 걸어간다면 시대에도 동떨어질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시나 소설 같은 창작세계도 AI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며 굳이 비젼도 없는 문화 예술 분야보다 돈이 되는 의대나 법대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본능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윤택함이 인간성을 타 넘어서도 안 되고 돈이 법을 사고파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미 그러한 마지노선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지키고자하는 국민적 의지와 작은 노력들이 병행된다면 다시 찬란한 문화 예술은 조금씩 원상 복구되고 계승 발전되어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영역이 확대될 것이라 믿는다. 대안이라면 그릇 만드는 공장에서 시간당 수 백 개씩 찍어내는 사기그릇과 도자기가 같지 않은 것이며 의류제조 업체에서 수 백 벌씩 생산하는 양복과 개인의 신체치수를 재어 꼭 맞는 양복을 만드는 것과 다른 이치다. 문화 예술 체육이 왜 발전되어야 하는지와 어떻게 해야 균형 있게 온 국민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금씩 망각한 3가지 분야는 이제 필요성과 중요성까지 누구하나 나서지 않는다. 원인을 알면 개선의 여지도 생긴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 발전 목적이 후대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게 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개선이 여지도 남아있고 모든 장르에서 발전시켜야할 재능과 끼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냥두면 퇴화되지만 자꾸 사용하면 향상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자 능력이다. 필자가 대한생활체육회를 설립한지 4년이 지났다. 건강한 국민이 행복의 우선조건이며 모두 각기 다른 재능을 발굴하여 생활체육을 일상화 하는 것, 애국의 실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후 7일날, 50명의 대한생활체육회 임원들이 1박 2일로 포항을 출발, 독도를 향한다. 나라사랑의 실천이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큰 계획의 완성또한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는 만큼 온 국민이 함께 건강한 미래를 지향한다.

  • 덕암 칼럼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방법이
    덕암 칼럼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방법이

    국민의 힘이 전당대회를 진행하는 과정에 찬탄과 반탄으로 나뉘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말에 대해 의견이 나누어진 것인데 찬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이고 반탄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탄핵 반대에는 김문수 후보와 장동혁 후보가 탄핵 찬성에는 안철수와 조경태가 같은 당이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미 국민의 힘은 민주당에게 털릴대로 죄다 털렸음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한 배신의 길에서 불과 4명의 후보들이 분열의 정점을 향해 자신들의 소신을 밝혔다. 이미 박근혜 전대통령이 유사한 전철을 밟았음에도 같은 일이 데자뷰를 보듯 번복되었지만 내분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혀지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최초 계엄령을 발표 하고 야당들에게 탄핵 당했을 때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물론 계엄령의 원인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염려들이 몰랐던 국민들을 계몽했다는 이유에서지만 반대로 국민의 힘은 지지도 조사에서 17%대에 머무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민의가 대통령 말은 맞지만 정당에 대한 실망감은 별개의 문제로 다르다는 뜻이다. 지난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선출 때도 그랬고 지난 총선이나 지방선거도 그랬다. 잘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정당이 없어서 선택의 폭이 없어서 소중한 주권이 실표가 될까봐 찍은 것인데 이를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선택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인가 걸핏하면 국민을 팔아먹는다. 국민의 선택이니 국민의 명령이나 하며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민위에 올라타고 군림하면서 국민을 떠받드는 것처럼 표현하고 언론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쓰기 하듯 재생산한다. 이제는 국민들도 제법 유식해졌다. 손안에 들어오는 미디어가 우민정책의 걸림돌이 되었고 최종 판단은 국민들이 한다. 마치 일본의 사회당이 몰락한 것처럼 1975년 중국의 장제스가 사망한 것처럼 부패한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근 전국을 돌며 경선대회를 벌이고 있는 국민의 힘에서 윤대통령 탄핵 찬성을 외치는 것은 아직도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분열이 가져온 비극이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전한길 언론사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배신자”를 연호한 죄로 경징계를 당했다. 배신자를 배신지라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에도 이를 징계절차에 착수하는 것이 국민의 힘 현주소다. 이러니 향후에 어떤 지도자를 선출해도 민주당의 폭주에 감당키 어려운 것이며 과거 군부독재가 재현되지 않는 한 한국정치의 정상궤도는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도 잘해서 지지도가 절반을 넘길까 글쎄 필자의 판단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강성노조, 사회단체 보조금으로 받아먹고 인건비를 챙겨가며 연명하는 시민단체들, 그리고 공무원과 정부미를 받아먹어야 사는 관급업체, 먹이사슬에 포함된 사람들, 이들도 궁핍해지면 판단이 달라진다.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회사가 망해서 노조활동을 할 기업들이 사라져도 그럴까. 정부미의 양이 줄어들고 국민연금이 고갈되어도 그럴 것이며 남녀 간의 갈라치기로 저 출산이 극에 달해 국가는 있어도 국민이 없는 시대에 와도 같은 선택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 보건데 1196년부터 집권한 최씨 무신정권이 1258년 까지 62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권력이 잘해서가 아니라 무지한 백성들이 임금에 대해 기본적인 섬김과 애국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군에 의해 백성들이 피폐함에 극치를 달리던 시기에도 강화도에 숨어 온갖 방법으로 고혈을 빨아 연일 잔치를 벌이던 부패한 권력이었다. 물론 불만을 품은 부하들에 의해 무너졌지만 그러는 동안 백성들의 어려움은 얼마나 심각했을까. 세월이 훌쩍 550년 정도 지난 1806년 병인경화를 통해 안동김씨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소불위의 세력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60년 세도를 기록했던 안동김씨의 힘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다시 220년 정도 지난 2025년 광복이후 수 십 년 동안 공산국가의 이념과 사상이 자본주의 곳곳에 뿌리내리면서 반미 반일, 친중 친북으로 나뉘어 서로 지향하는 방향과 색깔이 달라졌고 결국 정권을 찬탈하려는 노력들이 빈번한 가운데 과거의 백성, 지금의 국민들만 온갖 혈세징수의 호구가 되는 일이 번복됐다. 과거에도 지금도 잘해서 권력의 그늘에 순종한 국민들이 아니라 달리 선택할 방법도 여지도 그럴만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따로 나와 있다. 투명하고 공익에 부합되며 오로지 국민들을 위한 정당, 국민들이 주인이 되어 힘을 갖춘 정당이 창당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 연속되어 창당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타서 기도가 달라붙을 만큼 간절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몇 백배는 더 힘든 시절이 오고 일제 식민지 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을 피부로 겪어 봐야 한다. 그래야 한 방울의 물과 한줄기의 햇빛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유와 자본주의 성장기반이 얼마나 경제적, 문화적 윤택함을 가져오는지를 겪어봐야 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한 측면이 있다. 광복이후 6.25를 겪고 나서 밥술이라도 입에 채울 수 있었던 시기는 1990년도 이후였고 그래봐야 불과 30년도 채 안된다. 어쨌거나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던 기억도 있고 국민각자의 인자는 전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개인기를 갖추고 있다. 지금이야 기반이 무너졌지만 기능올림픽의 재패는 한국이 단연 1등이었고 한글 또한 문자 올림픽에서 항상 금메달이었다. 새로운 정당,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지금의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곧 세상 밖으로 나올 참신하고 통쾌한 공약을 갖춘 정당,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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