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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 덕암 칼럼 문자가 국력이다.

  • 덕암 칼럼 브로커와 로비스트의 차이점

  • 덕암 칼럼 사라지는 동물과 살아남는 사람

  • 덕암 칼럼 살면서 알고는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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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프랑스에 난리가 났다. 고등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며 시작된 시위에 당국의 강력단속으로 발단이 되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번 집단행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고 참다 못한 학생들의 분노가 도화선이 되어 교사는 물론 교육 관계자들까지 합세하는 분위기다. 단순한 요구에 힘으로 누르려는 정치인들의 안일함이 불러온 참사다. 여기서 한국의 공교육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한국은 프랑스와 견주어 볼 때 가히 천국이라 할 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2026년 105개국, 1501 대학교를 대상으로 평가한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가장 대단하다는 서울대가 66위, 연세대 97위를 제외하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한국의 대학교가 얼마나 처참한 점수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카이스트도 339위로 한국 대학 10곳이 겨우 500위권 안에 들어왔다. 대부분 미국과 영국이 차지한 대학순위에서 프랑스 psl 대학이 28위를 기록했고 에코 폴리테크니크 대학이 41위를 찍었다. 둘 다 한국의 대학을 앞질렀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나타낸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왜 들고 일어 났을까. 그리고 막는다고 막아질까. 한창 자라는 10대 청소년들의 욕구와 의지가 경찰이라는 옹벽에 무너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대화로 풀고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는 관점부터 고쳐야 한다. 한창 겁 없이 자라는 청소년 들이다. 이들은 향후 프랑스의 주인이자 그 다음 세대에게 찬란한 현대사회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계층이다. 마치 이솝우화에서 비롯된 속담 중 하나인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과 같이 권력으로 입을 막는 시대는 이제 구시대적 유물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치고는 대단한 기록이다. 반면 한국은 그 어떤 고등학교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불만으로 집단 시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에는 막대한 교육예산에 학부모들의 강한 교육열은 사소한 민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만큼 철저히 학생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완비 되어 있다. 프랑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단한 인재들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재능을 찾는 노력을 하지만 대한민국은 최상의 환경 속에서도 명문대 졸업장만 따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학벌 위주의 카르텔에 기대어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간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러하고 그런 현실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다. 어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근면 성실하기로 명성이 높았던 대한민국이 가장 게으르고 안일하고 이기적인 국민으로 바뀌었을까. 하마부터 배가 불러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힘든 일을 전가 시키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놀고 먹을 수 있는 선진국에 진입한 것일까. 너무 빠르다. 풍성한 결실이 맺기도 전에 설익은 과실을 너무 빨리 따 먹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배 아플 날이 온다. 대한민국 보다 훨씬 더 잘사는 유럽국가들도 아낄 건 아끼고 근면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이다. 말로만 한다던 교육정책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학교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학교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 1명을 놓고 교사, 양호, 급식, 예체능, 시설, 행정, 온갖 명분으로 여러 명이 뜯어먹고 사는 구조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년 간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소진 시킬 수 있는 지출 내역을 만들어 이듬해도 편성 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현 시스템은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세계 대학순위 문턱에도 못 올라가는 현주소를 알고도 입시 중심의 교육방침이 바늘구멍으로 낙타 몰이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전후 세대인 50-60년대 출신들이 증명했다. 콩나물 교실에서 학급당 60명이 지엄하신 선생님들의 학습방침에 매를 맞아가면서도 공부한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척추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된 바 있다. 그러니 지금의 학생들이 이처럼 훌륭한 교육환경에 인재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막대한 예산, 부족함 없는 환경, 그러함에도 왜 낙제점 대학으로 종결될까. 문제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 유지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교육계의 카르텔이다. 한 번 만이라도 국정감사나 특검을 통해 지출 내역을 촘촘히 파헤쳐 부실한 부분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생을 한국에 입국시켜 지금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반대로 한국 학생을 프랑스 교육환경에 배치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빈부격차로 인한 교육환경의 격차, 전기도 제때 안 들어오고 화장실에 휴지도 없는 교실, 유리창이 깨져 나무판자로 대신한 교실, 학교의 건축 연한은 평균 50년, 교사 부족으로 몇 개월씩 수업이 멈추는가 하면 갈수록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 하는게 현실이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2위 경제 대국 프랑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나라 운영을 제대로 못하니 돈이 딸리는 것이고 교육환경이 함께 열악해진 것인데 수습할 길이 전혀 안 보인다. 비교 하건데 지금 대한민국 교육환경은 인재양성의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앞서 거론했듯이 문제는 교육방침이다. 현재 프랑스는 10대 학생들의 외침으로 고요했던 아침이 요란하다. 새벽 닭이 밝은 아침을 바라지만 정부는 모가지를 비튼다. 그런다고 날이 밝지 않을까. 과거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한 계층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지만 도화선은 대학생들이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030 세대들이 또 다른 독재를 우려하는 항거가 잇따르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했다. 광복이후 변함없는 입시지옥문이 대선되지 않는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변화와 발전을 공감할 때 교육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디딤돌이 되어야 할 정치가 가장 걸림돌이다. 어째서 공정해야할 교과서가 좌파사상의 교본이 되어갈까.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문자가 국력이다.
    덕암 칼럼 문자가 국력이다.

    오늘은 제 100회 한글날이다. 한글이 문자올림픽에서 연승했다는 소식은 이미 수차례 적시한 바 있으니 각설하고 어쩌다 운이 좋아 조상들의 은덕을 입은 후손이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글이 왜 국력인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이 우리말 말살에 굳이 애를 쓴 이유는 단순한 문화의 맥을 끊고자 함을 넘어 한글의 우수성도 알고 말과 글을 없애야만 국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고 글을 통한 기록으로 후손들에게 민족의 정통성과 애국의 필요성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살벌한 일제치하 에서도 한글 보존에 대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광복 이후 오늘날 우리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소중한 글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망치고 있는지 왜 보존해야하는지 짚어보자. 먼저 우리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우리 글을 실제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실제 세계 문자올림픽대회에서 한글이 당당히 1위를 연승기록하고 있으며 이 심사 기준에는 문자의 기원과 구조와 유형, 그리고 결합능력이나 실용성 등 다양한 방면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다는 점이다. 또한 쓰기 쉽고 배우기 쉽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 할 수 있는 문자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16개국이 경쟁한 2009년 대회에서 세계1위를 기록한 이래 만국 공통어라는 영어 알파벳문자는 2위 인도의 텔루그 문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한글은 24개 문자로 11,000개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으니 중국어 400개, 일본어 300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과학적 문자임은 틀림없다. 이 같은 한글의 우수성에 입각하여 UN은 규정에 따라 한국어가 공식 언어 7개국에 속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략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인구는 우리나라 국민을 포함해서 약 7천 7백 만명으로 프랑스어를 앞질렀다는 것이다. 오늘은 한글 반포 580돌을 맞이하는 날이고 1926년 제정된 지는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좋은 한글을 전 세계에서 반기는데 비해 누가 가장 함부로 쓰고 훼손하며 엉뚱한 표현으로 망치고 있는지 찾아보면 아는 사람이다. 한글을 국어로 쓰고 어릴 때부터 배우며 성장한 기성세대들이다. 정치인들부터 문제다. 내로남불, 내가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사자성어를 지어내 각자 자신들의 의견만 중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한글로 포현될 일을 앞 글자만 따서 줄이니 국민들도 따라하는 것이며 심지어 자라는 청소년들까지 쉽게 입에 올리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상업용 간판은 죄다 영어로 표기하지 않으면 촌스럽고 실제 고객들도 영어로 적혀있거나 스펠링을 한글로 적어놓으면 왠지 좀 나아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니 누굴 나무랄 것도 없다. 글은 곧 말이 되고 말은 생활속에서 자연스레 접목되어 정신이 되며 더 나아가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레 자리잡혀 그 어떤 분야보다 영향력이 강해진다. 앞서 거론하였듯 일본이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강요한 탓에 실제 광복된 이후에도 나이가 드신 어른들은 일본어가 생활속에 파고들어 쉽게 고치지를 못했다. 이런 단어들은 광복 8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으니 말과 글이 총과 칼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무기는 미국이나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는 영국이나 홍콩이 은행은 스위스가 차지하고 역사 문화는 로마, 인도, 등 분야별로 대단한 것이 지구촌의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자로 장악하면 지구는 우리 손아귀에 들어올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다. 가령 강남 스타일이 유행하자 지구인 전체가 함께 따라 한 바 있고 한류드라마나 기타 K-POP이 가요로 한국을 알리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연스레 우리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말이란 자꾸 쓰다 보면 해당 국가의 말보다 더 쉽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말을 기록하는 글이 쉽다면 누가 말리지도 못할뿐더러 배우는 사람이 좋다는데 당연히 자연스레 손에서 눈으로, 입으로 접목될 수 밖에 없다. 한류 문화는 강제로 떠맡기거나 보란다고 보는게 아니라 그만큼 매력이 있고 빠질만 하니 빠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대한민국이 조금만 분위기를 파악하면 당장에 군사, 경제, 문화예술이나 역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겠지만 말과 글로써 충분히 평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기획을 해본다. 오는 2032년 세계 생활 체육대회를 유치하여 전 세계 180개국 생활 체육인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여 체류하는 동안 우리 한민족만이 할 수 있는 민속경기 40개 종목을 펼침으로써 한국의 자연스런 놀이문화에 지능과 재능, 재치와 순발력은 물론 화합과 배려가 곳곳에 담겨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고무줄 놀이, 잣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차전놀이와 닭싸움 등 많은 생활체육이 보여줄 수 있는 우리 놀이문화는 재미와 신기함이 더해져 많은 지구인들이 보고 배우고 싶도록 시범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전통 놀이가 생활체육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과정에 자연스레 우리말이 익혀질 것이고 이를 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자면 말에 따른 글이 필요할 것이며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말과 글은 한번 맛 들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말맛이 입에 베여 다른 말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필자가 2021년 처음 대한 생활체육회를 설립할 당시에는 엘리트 체육과 순수 동호인 개념의 생활체육이 통합 됨으로서 위축될 수 있는 국민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2023년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생활체육연맹 총회에 참석해 정식 회원으로 인정되어 세계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 계기다. 2026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19회 총회에서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다행히 주변의 협력과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느 지방자치단체든 선점할 수 있는 창구를 활짝 열어두고 한글을 세계화 할 수 있는 기폭제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미 태권도가 전 세계 곳곳에 한국의 이미지로 품세 동작에 대한 구호로 우리말을 사용하고 한글도 포함되어 있다. 혼자 꾸면 꿈이고 함께 꾸면 목표지만 모두가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하늘의 뜻은 사람의 마음을 타고 세상에 뿌려지고 사람의 신념은 하늘 기운을 타고 세상을 살린다고 믿고 있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브로커와 로비스트의 차이점
    덕암 칼럼 브로커와 로비스트의 차이점

    오늘은 누구나, 어떤 상황이든, 피할 수 없는 세상살이의 단면을 쪼개 보려 한다. 먼저 브로커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를 대신하여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하고 양쪽으로부터 금품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로비스트는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제도권 내에 진입하여 이권을 챙겨주는 구성원을 뜻하는데 선진국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서 상황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므로 합법적인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는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살면서 로비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존재한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작게는 학부모가 자식의 유리한 환경을 위해 담임교사에게 찾아가 봉투를 건네는 일도 로비라면 로비고 선거 때 후보가 공천을 받기 위해 당협 위원장이나 중앙당에 소정의 기부를 하거나 현금 봉투를 몰래 손에 쥐여주는 일도 단위나 범위만 다를 뿐이지 일맥상통한 일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온통 로비로 도배 된 세상일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로비를 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불리할 수밖에 없다. 돈이 없거나 인맥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래서 불거진 것이 혈연, 지연, 학연 등 대한민국의 고질병, 정적 사회기반의 허점인 것이다. 헌법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주권자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 말을 인정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현실적으로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 그렇지만 진짜 현실은 대통령도 참다 못해 터트린 고함이 불발탄이 되는 세상이다 보니 진정한 권력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고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다. 처음 출마할 때 공약했던 지역발전의 청사진도 그렇지만 후보였을 때 보여준 개인적 철학이나 소신은 당선되는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당이 결정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찬성표를 들어야 하는 거수기 역할에 충실하니 출마 할 때는 국민, 당선되면 거수기로 돌변하는 한낱 한표에 불과해진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후보와 당선자를 다음 선거에서도 여전히 뽑아주고, 기대하고, 또 속는 짓을 거듭한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80년이다. 그런 아둔함과 무지로 인해 현실에 봉착한 것이니 누가 누굴 원망하고 탓할 것이며 무슨 기대를 더할까. 검찰이 없어지면 누가 좋할 할런지는 두고보면 자연스레 안다. 첨단 과학의 시대, 범죄조직인들 그런 시류를 타지 않고 과거처럼 후진 골목길에 업소를 관리하는 양아치로 머물러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불법으로 떼돈을 버는 조직도 함께 번성한다. 이제 검찰이 사라졌으니 이만한 호재도 없다. 왜 그런지 짚어보자. 과거 검찰청의 검사나 법원이 판사가 옷을 벗으면 변호사로 개업하고 초기에 몇 년을 꿀을 빤다. 일명 전관예우라는 관례에 따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위력을 법정에서 보여주니 적게는 수억원 크게는 수십억 수 백 억원대의 수임료로 탄탄한 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뭐든지 곯으면 터지기 마련이다. 멀쩡한 피해자가 피의자로 둔갑하고 제 아무리 따져봐도 상식적으로 피할 수 없는 재판이 번복되자 판사나 검사가 퇴직한 후에도 해당 지역은 특정기간 동안 변호사를 개업할 수 없는 방패가 마련됐다. 이러니 몇 년간 타 지역에 나가 있다보면 사건을 물어오는 일명 “찍새”는 관할 지역 퇴직 경찰이 낙하산으로 정착하는 착륙장이 된다. 파출소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사건이 본서로 올라와 밤새 기다리다 랜덤수순으로 형사과나 강력반에 배속되면 이를 가장 먼저 아는 것이 경찰서 출입기자 이고 다음으로 형사관리팀이 알게된다. 여기서 변호사가 주는 월급 값을 하려는 찍새는 피의자 신원을 가장 먼저 알 것이므로 선임을 의뢰하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팀장이나 과정으로 모시던 상사가 변호사 사무실에 입사하여 밥값을 해야 한다며 손을 내미니 어찌 거절할까. 자고로 뇌물이란 크고 작음을 떠나 아쉬우니까 주는 것이고 받은 만큼 대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밀어내야 한다. 당연히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 성립된다. 지금까지 이랬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겪어봐야 안다. 호랑이 10마리가 판을 치던 숲속에 늑대 1000마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으르렁거리면 과연 힘이 약한 토끼나 사슴이 견뎌낼까. 물론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 그러려니 하며 몸에 베이겠지만 지금보다는 살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가 아니라 황금 절대주의로 가고 있다. 돈의 부패는 민과 관으로 나눌 수 있다. 관급자재납품이나 공사, 기타 인건비가 포함된 모든 예산 편성은 세금을 거둬서 나누는 일종의 나눠 먹기인데 어떤 식이든 연말 전에 소진시켜야 이듬해도 편성할 수 있으니 반환하는 일이 없도록 연말이면 보도 블럭도 갈아치우고 크게는 안해되 될 국책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이지는 것이다. 편성된 예산이 누군가의 손에 닿기까지는 중간 매개체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긴 것이 맞춤형 납품인데 이는 사전에 설계부터 짜고 치는 손발이 맞아야 원활하게 주고 받게 되는데 그 역할을 잘하면 로비스트, 못하면 브로커가 되는게 현실이다 어디 국가를 상대로하는 영업 뿐일까 민간회사에서도 담합행위나 기타 퇴직간부들이 하도급 업체 임원으로 취업하여 본사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으로 고액의 급여를 받아 챙기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는 아파트를 지어도 입구에 마련된 조형물과 조경공사에 적시된 공사비를 보면 안다. 어쩌면 이 세상이 온통 로비스트의 무궁한 시장일지도 모른다. 누가 어떤 식으로 해 먹든 별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런 식이면 정작 필요한 인재가 제 자리를 앉을 수 없고 밀려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허탈해하는 세상이 다반사라면 이는 고쳐져야 한다 이래서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장기매매 브로커부터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따르는 중간역할을 파헤치자면 누가 감히 자유로울까. 죄없고 힘없는 서민들만 등이 휘도록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세상이니 이미 조선시대 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먹이사슬의 공생관계는 의사와 제약회사도 그렇고 정치인의 공천권 마져 팔고 사는 세상이 되어가니 돈 준 사람은 본전 뽑으려 무슨 짓인들 못할까. 참 잘 돌아간다. 상탁수 하부정이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사라지는 동물과 살아남는 사람
    덕암 칼럼 사라지는 동물과 살아남는 사람

    인간과 동물은 오래전부터 공존 해왔다. 야생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가축으로 삼아 육류와 부산물인 계란, 젖, 털, 뿔, 내장은 물론 가죽까지 음식이나 인간에게 필요한 각종 생활용품을 얻어왔다. 때로는 인간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실험용이나 눈요기 거리로 보기 위한 구경거리, 그러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까지 다양한 용도로 인간과 공존해 왔다. 사람은 해를 더할수록 숫자가 늘어 2026년 10월 4일 기준 74억 2,700만명으로 하루 평균 315,000명이 출생한다. 반면 동물의 종자나 개체 수는 갈수록 급격히 줄고 있다. 물론 기후변화 탓도 있겠지만 양식으로 키워서 일정 시스템 안에 소요(?)되는 가축들 외에 야생으로 생존하는 동물들은 국가별 국립공원에서 보존하고는 있으나 이 또한 한계가 있다. 먼저 매년 10월 4일은 동물의 보호, 애호를 위해 지정된 국제 기념일이다. 올해로써 101주년 되는 날인데 독일에서 시작됐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그 공존의 현장을 살펴보면 생존하는 동물이 폐사할 경우 94% 는 소각이나 매립으로 연구나 교육 가치가 있는데 기증하거나 표본으로 삼는 비율은 5.6%에 불가하다. 개 3 만 마리, 토끼 11 만마리 등 5 년 간 동물실험에 1,500 만 마리가 사용됐다. 주로 화장품, 의약품 분야 실험동물 사용이 전년 대비 29.9%나 증가했다. 마우스가 가장 많았고, 랫드, 기니피그, 토끼, 개 순으로 집계됐다. 실험 사용 증가율이 가장 높은 동물은 원숭이로, 햄스터, 토끼 등이 뒤를 이었다. 주요 사용처는 제약회사, 대학 등 교육기관, 민간연구소 및 출연 기관, 병원, 정부 · 지자체 순이었다. 최근 5 년간 전국 동물원 내 국제적 멸종 위기종 폐사 현황 자료를 세부 분석한 결과, 3,200 마리가 자연사 판정의 절반이 넘는 비율이 수의사 진단 없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폐사할 경우 수의사가 진단하는 비율은 약 74% 였다.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자연사로 판정된 비율은 27.8%에 그친 반면, 수의사가 진단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사 판정 비율이 64.7%로 2 배 이상 뛰었다. 수의사가 진단하지 않은 사례의 대부분은 부검도 함께 이뤄지지 않아 실제로는 자연사가 아닌 병사 등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뒤가 안 맞는 결과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체 부검 실시 건수는 1,123 건인데, 폐사 원인 분석 건수는 이보다 많은 1,581 건이었다. 부검 없이 원인이 판정된 셈이다. 멸종위기 동물은 학술적 연구 가치가 높은 종들 임에도 폐기· 소각· 매립에 집중돼 전체의 94.4% 를 차지했다. 수의사 진단이나 부검 없이 국제적 멸종 위기종의 폐사 원인을 판정한다는 것은 결국 정확한 폐사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게 해 멸종위기종 관리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내로 수입되는 동물을 포함 총 시장은 약 2.5조원에 이르고 수출지원 예산도 2024년 18.4억 원에서 2026년 90.95억 원으로 2년 새 약 5배나 늘어났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의 숫자나 애완용으로 사육되는 동물들의 관련 물품시장 규모도 갈수록 늘고 있다. 2026년 10월 기준 약 550만 마리로 추산되는데 이는 미국의 규모인 7,580만 마리아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적은 숫자다. 물론 인구에 비교하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인도는 1,500만 마리, 중국에서는 애완견 숫자가 약 1억 5천만 마리로 개로 인한 사료, 배설물 들이 문제가 되어 1가구 1마리로 숫자를 제한하는 제도까지 마련되고 있다. 오늘은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았다. 통계를 찾아보았으나 집계되지 않은 길고양이나 버려진 강아지까지 포함하면 실제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은 그 숫자가 몇배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에서 나열한 통계는 직접 사육하면서 애완용에 속하는 숫자이며 육류나 털, 젖, 기타 부산물을 얻기 위해 키우는 소, 닭, 염소, 오리, 등 가축까지 포함하면 그 개체수는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스스로 만물이 영장이라며 동물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통제에 포함되지 않은 야생의 개체수를 더하면 더 말해 무엇하랴. 조류. 육류. 어류. 곤충 등 지구상에 존재하면 살아 숨쉬는 모든 동물들은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수 십 종씩 멸종 되는게 현실이니 점차 사라지는 동물과 증가하는 인간의 인구증가는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동물은 인간에게 의사 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말 못하는 동물을 인간이 감정적으로 가혹행위를 가한다거나 장난삼아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삼가야 한다. 필자는 가정 환경상 어릴적 부터 어항에 금붕어, 새, 마당에 닭과 개를 키우며 살았고 커가면서도 개는 항상 끊이지 않고 공생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거위, 개, 토끼와 닭은 물론 꿩과 기러기까지 키우며 사료와 물을 갈아주고 때로는 폭염과 혹한의 기온에도 사육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풀어놔서 굶어 죽더라도 그건 해당 동물의 탓이지만 오도가도 못하게 가둬두고 먹이를 안 줘서 죽게 만드는 것은 키우는 사람의 잘못이다. 그렇게 키우다 보니 조류야 알이라도 낳지만 다른 동물들은 몇 년이고 늙어서 생명을 다할 때가 문제다. 늘 소리치던 동물들이 어느 날 조용히 숨져 있으면 인근 야산에 매장한다는 것이 씁쓸하다. 어쩌면 사람도 이와 같아서 요란한 장례식을 거칠 뿐이지 어느 정도 수명이 다하면 노쇠한 신체기능이 제 역할을 다 함으로서 맥을 놓을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심장만 뛰고 있지 사실상 연명치료나 다름없는 노년은 한마리 동물과 견주어볼 때 별반 다를게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동물도 눈빛으로 의사를 전해온다. 배가 고픈지 덥거나 추운지 그리고 알을 낳은 것인지 새끼를 낳아 어미 역할을 하는 것인지 지켜보면 안다. 개미 한 마리도 암수 간의 교배가 없으면 생겨날 수 없는 것이 대자연의 이치인데 어미가 새끼를 보살피거나 새끼가 어미를 따르는 광경은 참으로 인간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작금의 현대사회를 보노라면 부모와 자식 간, 또는 형제간에도 개보다 못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쩌면 동물에게 배워야 할 점도 많고 동물을 장난감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물은 말을 못해서 그렇지 먹이만 잘 주면 적어도 거짓말이나 교활한 생각은 안 한다. 세계동물의 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신중히 되짚어 보자.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살면서 알고는 있어야
    덕암 칼럼 살면서 알고는 있어야

    사람이 살면서 먹고 자고 화장실만 간다고 사는 건 아니다. 직장을 다니든 장사를 하든 돈을 벌어 먹고 사는데 걱정 없다고 남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 자신만 사는데 지장없다면 괜찮을까. 그렇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빠르게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돈만 있으면, 돈만 된다면 원칙과 반칙의 경계선을 넘나들어도 죄의식이 무디어 지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풍토는 엘리트 조직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업인과 정치인의 유착부터 시작해 아래로 갈수록 점점 교묘해지고 합법이라는 명분 속에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둥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국민세금 걷어서 나눠쓰는 일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천 만원 대부터 수천 억원까지 막대한 예산이 특정 세력이나 단체들의 먹잇감이 되어 매년 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공무원들의 뒷주머니 비상금으로 남용되는 초과근무수당부터 전면 감사에 착수해야 한다. 업무적으로 충분히 마감할 수 있는데도 야간 수당을 청구하는 파렴치한 도둑이 있는 한 국민들로 부터 당당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실제 업무가 과중하여 근무하는 일부 공무원들도 있겠지만 지금 이라도 전수 조사에 착수하여 부당하게 챙긴 수당을 죄다 토해내고 형사처벌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이런 공무원은 시럼쳐서 합격한 다음 정년때까지 일을 하는 늘 공무원, 이른바 늘공인데 어,쩌다 선거에 당선된 후보, 그 후보를 등에 업고 행정, 사법, 의회에 정무직으로 내려앉은 이른 바 낙하산을 어쩌다 공무원, 어공이라 부른다. 이 어공들은 각계 각층에 짱 박혀 전문성이나 업무처리 능력도 없으면서 요직을 차지하니 하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 없는 낙하산은 죄다 솎아내서 해당 자라에 걸맞는 인재를 찾아 기용해야 맞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해당 사항에 대해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새로운 개선 방향을 찾아 기사화했던 과거의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먹고사는 건 해결되겠지만 능력없는 사람이 밥만 축내고 나서 나중에 늙으면 식충이, 기생충이었다는 자신의 과거에 후회만 가득해진다. 이쯤하고 살면서 알고는 있어야 하는 일 중 10월 2일과 3일에 해당되는 일만 함께 공감해보기로 한다. 먼저 어제는 10월 2일, 검찰청이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었다. 이제 사법부의 윗선이 사라지고 경찰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데 누가 좋아할까. 당연히 전문 범죄자들 입장에서 살판난 것이다. 하루아침에 오두방정을 떨진 않겠지만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사라진 건 확실하다. 필자 또한 검사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누구 못지 않게 가득하다. 로펌에 눈치를 보다 없는 죄도 만들어 재판에 질만 하니 약식명령으로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고 만드는 검사, 고소인과 한패가 되어 기망에 의한 수사, 허위로 조작된 증거로 기소하여 끝내 범죄지를 만드는 검사, 이 세상 많은 직업 중 가장 경멸하고 분노와 인내로 지켜봐야 하는 검사,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땅에 검사들이 모두 사라지길 간절히 바랬다. 그 바램이 이루워졌는데 왜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허전할까. 과연 검사들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치안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우려와 염려가 더해질까. 두고볼 일이다. 점차 지능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권력과 함께 공생하는 범죄집단을 과연 경찰이 막을 수 있을까. 이쯤하고 2일 날 또 하나의 기념일은 노인의 날이다. 이날 하루만 무료급식소가 더 많이 식사를 준비하고 이날 하루만 각종 단체에서 기념 행사를 치르면 그만일까. 인터넷을 뒤져보면 노인의 날 기념행사가 지역마다 성대히 치러졌다. 물론 정치인들이 마이크 잡고 자기 자랑만 잔뜩하고 가버리는 일이 늘 있어 온 일이지만 그래도 손 한번 잡고 사진 한 장 찍으려는 노인들의 바램은 그저 경로당 추위와 더위만 막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다. 법적으로 65세가 노인일까 천만에, 75세의 실버세대가 현실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학습기회를 만나 젊은 세대 못지않게 인터넷 조작에 능숙하다. 노인의 날 특정인에게 선심쓸게 아니라 입법기관에서 관련 개정 법안을 미루다 폐기된 법안이 수두룩하다. 노인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누구든 세월이 지나면 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미리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치하는 사람들의 처세를 보면 천년만년 할 것처럼 나댄다. 그리고 미룬다. 그리고 오늘은 개천절이다.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고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단군 할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날이다. 각 나라마다 기원과 원천이 있고 그에 따라 해당 국가의 자긍심과 용기를 더하는 기념일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개천절은 성탄절과 석가탄신일 못지 않게 중요한 날이다. 그러함에도 기독교의 신도수가 더 많다 보니 표를 잃을 까 염려되어 개천절 행사에는 대통령이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었다. 그렇다 단군 동상이 학교에 설치되었다가 얼마나 많이 파손되었던가. 오천년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많은 설화와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필자 또한 개천절을 맞이하여 도심한 한가운데서 제단을 차려놓고 천제를 몇 번이나 지낸 바 있다. 태백산을 찾아 천제단에서 기도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와 국민들의 안전을 기원했다. 어째서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은 그렇게 연등과 츄리를 달고 기쁨에 들떠 거리를 활보하면서 개천절은 그리 소외시 하는 걸까. 우리것에 대한 것이면 꼰대들이 틀딱으로 치부되면 한복을 입는 것 자체가 촌스러움의 극치로 치부된다. 그래서 찢어진 청바지와 저마다 질질 끌고 다니며 신고 있는 구멍 난 슬리퍼는 괜찮은 것인가. 세월이 점점 양극화로 갈라지고 있다. 먹고 살만한 사람과 마지 못해 사는 사람들로 나눠지며 그 선이 점차 선명해진다. 과거 앙뱐과 평민과 천민이 이제는 돈으로 구분되는 세상이 됐다. 살면서 오늘처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올림픽 공원에 가든지 말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안 간다고 뭐랄 사람도 없고 영화“암살자(들)”을 본다고 뭐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눈을 크게 뜨고 한번만 깊이 생각하면 설자리와 앉을 자리를 알게 된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영화의 영향력과 사명
    덕암 칼럼 영화의 영향력과 사명

    최근 영화 “암살자들”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내용을 떠나 일단 화제가 된 것만으로 흥행은 성공한 셈이다. 어쩌다 영화가 이념과 사상의 전쟁터가 되어 각자 다른 견해와 잣대로 재는 바람에 흥미와 가치가 뒤섞이는 난장판이 됐다. 이 같은 논쟁은 이미 기존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도 진작부터 갑론을박이 많았다가 이번에 제대로 터진 것이다. 먼저 영화란 말 그대로 은막 위에 영사기를 돌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돋우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문화예술이다. 그러함에도 이러한 본질을 벗어나 대중들에게 여론조성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이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형태의 선전 선동에 가깝다 할 것이다. 필자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에 대해 매니아 층도 아닌 평범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가 국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왜 엄격한 심의가 필요한지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이번에 개봉된 영화 “암살자들”은 기존에 있었던 사실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건에 감독의 상상력을 동원해 본질을 왜곡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비난을 샀다. 마치 과거가 선명한데 그 과거를 토대로 임의적 시나리오를 삽입하면 선명한 과거와 불 확신한 미래가 뒤섞여 진실이 왜곡될 수 도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국민의 힘 의원들이나 유튜버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에 대해 집중보도에 나섰고 많은 관객들도 흥행을 위해 위험한 도전을 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영화의 내용 중 광복절 행사에서 숨진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관여된 것으로 비춰지는 시나리오는 이미 망자가 된 고인의 명예와도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어쩌다 영화가 좌파 우파, 이념적 갈라치기의 수단이 되고 말았을까. 이제 영화조차 감독의 의도가 영화로 인해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까지 검토해가며 봐야 하는 시점에 도래했을까. 이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영화는 장르별로 많은 감동과 환희, 때로는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비현실적 공간과 설정도 모두 허용되는 분야다. 그렇다고 있었던 사실과 있지도 않은 일을 뒤범벅 해서 아닌 걸 맞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유도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의도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에 상영되었던 5.18 관련 택시 운전사나 자유 우파들에 대해 분노를 충동질하던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다. 특히 일본의 전범 여지에 대해서는 과장을, 중국의 한반도 침략이나 흑역사에 대해서는 축소를 소재로 삼았던 과거가 있었다. 이 또한 편협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 없었고 한 편의 영화가 수 십권의 역사책보다 더 쉽고 깊게 뇌리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이념적 갈라치기를 자행하는 결과에 봉착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내용을 있는 것처럼 꾸민 영화, 자칫 판단의 오류와 그 오류로 인한 인식의 자리매김은 쉽게 바로잡을 수 없는 세뇌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미 언론에서 유사한 오욕의 흔적을 선행한 바 있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건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마구잡이로 보도해 놓고 막상 진실이 드러나면 오보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보다 정정 보도도 아니고 “바로잡습니다” 또는 “반론 보도”로 짧게 법망을 피해 가는 회피 수법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정작 그 보도로 인한 피해자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이 이사회에서 영영 나락을 길로 접어든 사건이 숱했다. 영화가 영화를 넘어 아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수단이 된다면 그래서 기존의 기성세대는 물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오판을 심어준다면 구 책임은 누가 질까 감독, 배우, 제작진이나 협찬사, 한국 영화 진흥공사, 아니면 흥미진진하다고 믿고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관객? 그 누구도 안진다. 모두 한번 보고 느끼거 인식되면 그만이다. 그동안 박근혜 전대통령을 세월호와 관련하여 시동을 걸었다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거쳐 탄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진실과 무관한 선동을 벌였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과오 중 과는 덮어버리고 오만 확대해석하여 악마화 했던가. 결국 고인은 아직 무덤조차 찾지 못하는 역사적 오명을 남겼다. 특별한 제동장치 없이 영화가 대중선동의 수단이 되는 강풍은 사정없이 쏟아졌다. 한 번씩 극장가를 강타할 때마다 대중은 진실보다 흥미에 이성을 잃었다. 이쯤에서 선진국 영화와 비교해볼 수 있는데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수상을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간혹 빛을 보는 영화는 대부분 한국의 멋과 맛이 살아있는 경우지 이번처럼 여론의 찬반이 엇갈리는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암살자들”은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 됐다. 당초 어떤 의도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안다. 하지만 대중들이 과거처럼 보여주는 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과 영화로 인한 폐단이 교육적 부작용까지 있음을 알려주는 계몽편이 되고 말았다. 적당히 하면 몰랐을 일을 과하다 보니 넘친 것인데 그럼에도 보는 사람은 보고 그러든 말든 만드는 사람은 만든다. 어디 영화뿐이랴 도서, 만화, 각종 대중 매체들이 저지른 역사 왜곡은 도처에 널려있다. 어찌 일일이 맞고 틀리다 를 구분하며 접할 수 있을까. 문제는 진실이 묻힌다는 것과 역사적 오류가 번복될 때 오는 시대착오적 개념이 미래까지 망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연속된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누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누가 성실하게 일해야 잘산다고 믿고 노력할 것인가. 어떤 대통령이든 사회적 지도자든 임기를 지내는 동안 모두 옳은 일만 할 수는 없다. 마치 의사가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경제부흥의 주역 박정희, 격동의 시기에 국가를 위기에서 구했던 전두환, 치산치수로 4대강 사업을 벌인 이명박과 혈세로 만든 보를 철거하는 문재인, 반대로 북한에 퍼주기를 한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는 영웅이 되었고 코로나 19로 실정이 덮혀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2026년 9월 29일,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시 된 채 판결을 기다리며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재판을 미루며 사법부와 정면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 것이며 영화는 또 어떤 조명으로 본질을 흐릴까. 영화라는 장르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신뢰란 무너지기 쉬워도 다시 회복하기에는 수 십 배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안방극장 공중파가 무너진 걸 보면서도 바깥극장 영화계가 뒤를 잇고 있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9월을 보내며
    덕암 칼럼 9월을 보내며

    조석으로 쌀쌀한 날씨가 감기 환자들을 속출하게 한다. 오뉴월 감기야 개도 안 걸린다지만 한여름의 폭염을 잠시 간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기에 얹혀 찾아온 감기는 코로나로 확산 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 돌이켜보면 코로나19로 얼마나 국민 들을 겁박하며 온갖 수선을 떨었던가. 무슨 바이러스가 높이 1미터도 안되는 플라스틱 방지막을 넘어올 수 없으며 밤 10시 이후에만 찾아온다던가. 무슨 바이러스가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는 감염되지 않고 일반 생활 체육인들에게만 옮겨진다던가. 어디 그 뿐인가. 무관중 공연과 스포츠 경기가 펜데믹 이후에도 복구되지 않아 혼술, 혼밥에 회식문화 마져 바꿔놓았다. 철저한 개인위주의 생활방식으로 변해버린 후 화합이라는 명분의 단체활동은 귀찮고 불편한 허례허식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물론 변화가 반드시 단점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사생활의 확충으로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찾아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으며 원치 않은 모임에 이끌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불편함도 줄일 수 있었다. 어쨌거나 코로나19의 후폭풍은 한 시대의 패턴을 상당 부분 변화 시켰고 그 원인을 찾아보면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반대해 오던 의료분야의 우려를 묵살하고 대거 입국시켰던 장본인이 누군지부터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백신 후유증으로 인해 멀쩡하던 젋은이들이 애꿋은 목숨을 잃고 의학적인 입증을 제시하지 못해 억울하게 숨지게 한 원인도 언젠가는 밝혀내야 한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점이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고 있지만 사람은 속여도 역사는 속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고 진실에 기반한 의학적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감기 타령은 이쯤하고, 지난 9월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한 달이 이럴진대 한해는 어떨까. 이제 3개월 남은 2026년의 끝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정확히 다가온다. 무엇보다 2일 남은 검찰청 폐지가 화두로 부상했다. 80년 동안 사법기관의 최상위 자리에서 군림(?)하던 검찰은 이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된다. 이를 두고 9월 21일 김문수 전 국민이 힘 대통령 후보는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청 폐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확한 뒷북이다. 지금까지 뭐 하다가 열흘 앞두고 이런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인가.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수긍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의젓한 모습이다. 올림픽 공원에서 부정선거를 외치는 청년들에게 대통령선거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대선의 부정선거에 대해 일부 유튜버들과 애국청년들이 외치는 의혹에 대해 아무런 입장발표도 하지 않았다. 필자 또한 1년도 넘은 시점에 왜 침묵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그 대답은 원론인적인 동문서답 뿐이었다. 이 밖에도 9월은 용혜인, 김승원 장관후보자들의 사퇴로 나라 안이 소란했다. 괜히 지명당한 후보들만 속내를 탈탈 털린 채 자칫 본전도 못 건질뻔했다. 다행히 야당도 사퇴 이후 더는 쫒지 않았고 그렇게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는 동안 기생충 정당이니 오빠가 눈물이 난다는 등 온갖 수식어가 난무했었다. 당시에는 무슨 난리가 나는 것 같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간이 약이고 언론이 조용하면 국민들은 금새 잊어버린다. 그래서 가두리 양식장의 가재, 붕어, 개구리로 지칭되는 것이며 또 다른 북을 치면 그 북의 장단에 방송이 장단을 맞추고 금새 그 장단에 춤을 추다 북소리가 멎으면 같이 멈춘다. 그래서 개, 돼지 또는 잘 잊는 까마귀로 표현된다. 이미 광복 이후 계속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한국 정치가 발전을 못하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국민 무서운 줄 알면 지금 같은 정치는 유지될 수 없다. 결국 모든 건 국민 탓이다. 심지어 말끝마다 국민을 거론하며 국민을 기망해도 국민이 모르니 얼마나 정치질 해 먹기 좋은 환경인가.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미국과 중국 대통령이 만나 국제무대를 화려하게 조명했고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는 북한군 망명소식을 한국 대통령 패싱시키고 먼저 발설했다. 누가 두려워 쉬쉬했는지는 당사자만 안다. 건방진 젤렌스키다. 해당 국가의 대통령이 몰라서 말 안 한것도 아닌데 측근들은 그러는 동안 뭘 했을까. 미국은 파병하라고 하고 이란은 파병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말이 많다. 그러는 동안 안규백 국방장관은 슬그머니 맡은 일(?)을 다하고 탈영 의혹도 밝히지 않은 채 다음 선수에게 바턴을 넘겼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우리 군이 지뢰로 중상을 입어도 명절이 지나야 원인을 찾겠다고 하고 국방부에서는 휴전선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안상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국방 뿐일까. 사법기관의 수장들은 죄다 자리가 공석이다. 지휘체계가 문제없다면 굳이 그 자리 채울 필요가 있을까. 민주당은 전당대회 이후 선출된 김민석 당 대표가 조희대씨라 하고 청문회에서는 온갖 고함과 욕설, 삿대질이 여전하다. 그러라고 뽑아준 건 아닐진대 나대는 모양새를 보면 동네 삼류 양아치가 무색할 지경이다. 다음 총선에는 새로운 당이 창당되어 국회의원 특혜부터 내려놓는 공약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아 여의도 물갈이의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 이쯤하고 9월의 또하나 이슈는 스포츠다. 19일부터 보름간 일본 아이치 나고야에서 열리는 2026 아시안 게임은 한국이 45개국 중 3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1위 일본 2위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북한도 9위를 달리고 있다. 남북한이 메달을 합쳤다면 일본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무엇보다 9월은 추석 명절이 있어 근로자들이 민족대명절을 풍성하게 누리는 달 이었다. 이제 시월이 오면 국경일이 수두룩해서 또 절반 정도는 쉰다. 어쩌다 성실 근면하기로 명성이 높은 한국인들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대안이 없을까 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 밖에......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삼천리 화려강산
    덕암 칼럼 삼천리 화려강산

    10리가 4km, 1,000리는 400km이니 삼천리는 1만2천 km 로서 한반도의 길이를 나타내는 척도다. 거기에 대한민국 국화가 무궁화라 애국가 후렴에도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앞에 화려하다는 다채롭고 아름다움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오늘은 독자님께 감히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관광지 중 몇 곳이나 다녀보셨는지를 질의한다. 여기서 관광지란 유원지나 공원, 기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전국의 볼거리를 포함해 한국처럼 사계절 다른 모습까지 포함한다. 결론부터 말해 그 누구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절경을 다 볼 수 는 없다. 태어나서 일본의 첩자 소리까지 들어가며 조선팔도를 걸어 다닌 대동여지도의 주인공 김정호도 다 못 그린 게 지도였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전해서 티맵에 갈 곳을 찍어가며 자동차로 부지런히 다녀도 춘하추동 다른 모습을 어찌 다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해가 뜰 때 동녘의 모습과 석양의 모습이 다르고 젊었을 때 보는 장관과 나이 들어 보는 견해가 다를진대 어찌 한반도의 절경을 모두 눈에 담고 발로 디딜 수 있을까.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삼천리 금수강산 근처에도 못가본 사람들이 한국은 볼 게 없다며 그저 해외여행을 가야만 관광을 다녀왔다고 자부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국내 여행은 테마가 있는 열차 여행부터 전국 각지의 산행을 출발하는 산악회 관광버스, 자전거로 배낭여행을 출발하는 실속, 체험형 여행부터 다양한 방법이 있다. 특히 카라반, 캠핑카는 물론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면 어김없이 자리한 농막형 펜션단지나 호텔들이 최신설비를 갖춰놓고 성업 중이다. 그럼에도 연휴 철이나 이번 추석처럼 명절이면 인천공항은 북새통이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는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기본토대를 만들어 1989년 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개방됐다. 3년 뒤인 1992년 인천 국제공항이 개항한 이후 출국절차의 간소화와 여행의 목적이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관광업계는 출국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국도 더욱 크게 늘어났다. 지난 27일은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유엔 세계관광기구에 의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1970년 유엔 세계관광기구 헌장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여 1979년 세계관광기구 총회에서 정한 날인데 대한민국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기념식과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자체 별로 다양한 행사도 병행된다. 과거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 관광이라는 단어가 사치였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자극적인 구호가 있을 만큼 휴가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단어가 관광이다. 국민적 인식도 저축보다 여행을 더 선호할 만큼 변화가 있고 단순한 힐링 그 이상의 추억을 만들며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선진국에서 이미 앞서간 바 있고 한국에서는 다소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관광은 항공의 발달과 대형 크루즈 선박 여행이 국제적인 붐을 타고 국가 간 공해 없는 산업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처럼 명승지나 자연경관이 뚜렷한 곳을 찾는 것도 있지만 올림픽, 각종 스포츠 대회, 문화, 역사, 축제, 등 다양한 테마를 찾아 고액의 항공료도 아끼지 않는 붐이 일고 있다 특히 한류열풍을 타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관광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로 손꼽힌다. 따라서 국내에도 각 지자체마다 온갖 명칭과 슬로건을 총 동원하여 지역경제와 맞물릴 수 있도록 기획하는 한편 특산물까지 곁들여 연례 행사로 연혁을 거듭하고 있다. 필자는 촌스럽고 편견이라는 지적을 감수하고서라도 국내 여행이라도 제대로 다녀보고 해외여행을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애국의 의미도 있지만 여행 경비, 편의성, 언어, 계절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국내 여행은 해외 못지 않게 매력적인 테마로 전국의 명승지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나름 역마살이 낀 것처럼 년 간 주행거리가 5만km를 넘기고 왠만한 명산은 다 다녀 봤지만 아직 본 것보다 못 본 것이 훨씬 더 많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더 다니려고 해도 체력이 벅차고 이제야 좀 편안한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미국, 중국,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를 다니며 촬영한 사진만 수 천장,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실제 다녀보면 볼수록 자신이 대 자연의 일부이자 티끌보다 미미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휴전선에서 해남 땅끝까지, 동해에서 출발해 남해안과 서해를 돌아 휴전선을 거슬러 가보면 자동차로 다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목표인 버킷 리스트에 국내 일주를 권한다면 바쁜 일상속에 무리일까 국내 여행은 비용이나 절차 면에서도 외국보다 장점이 많다. 여행도 때가 있다. 미루다 보면 노인이 될 때까지 못가는 것이고 지금도 아쉬운 여행이 있다면 금강산을 가지 않았던 일이다. 북한은 1998년 노태우 정부에서 2008년까지 약 10년 간 해상에서 육로까지 버스와 자가용으로도 다녔던 현대 아산의 금강산 관광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으나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지금까지 중단됐다. 이 때 외화벌이의 매력을 느낀 김정은이 원산 갈마 관광지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건립했으나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관광이란게 차려 놓는다고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유로운 동선과 볼거리는 물론 먹거리와 교통인프라도 병행되어야 하는데 제한적 방문이나 일부 계층의 이용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은 건강과 돈과 마음이 모두 하나 되어야 실행할 수 있는 삶의 향연이자 축제다.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헌법 제 20조에 대하여
    덕암 칼럼 헌법 제 20조에 대하여

    대한민국 헌법 20조 1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 되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하나로, 국가는 국민들의 내면적 정신영역에서의 도야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정해진 법이다. 여기서 종교란 사상과는 별개로 신에 대한 확신으로서 죽음 다음의 내세를 지향하는 것이 공통적이다. 대표적으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 외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는데 누구나 원해서 갖는 자유와 원하지 않지만 가져야 하는 경우로 나눌 때 후자는 반 강제적인 것으로서 진정한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는 신앙을 강요 받지 않는 자유이며 신앙을 가질 자유는 어떤 방향이든 방해 받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종교에 대한 헌법의 판례를 보면 대법원에서도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므로 법이 종교를 개입하는 시작부터 이미 헌법 20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대한민국이 정한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무한 범위로 삼으면서 종교 박물관 또는 미신과 신앙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종교로 인한 국가간의 분쟁이나 영토 분리는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바 있다. 지금도 그런 현상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결코 중단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각설하고, 대한민국의 전신인 조선에 기독교와 불교가 들어올 때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랬다. 조선에 부처가 들어오면 조선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부처를 위한 조선이 될 것이며 조선에 예수가 들어오면 조선을 위한 예수가 되지 못하고 예수를 위한 조선이 될 것이라며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노예의 정신이라는 말씀을 남겼다. 언제부턴가 뒷마당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전쟁터로 간 아들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도를 올렸을 우리네 어머님들과 죽은 조상 천도제와 태어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한 태아의 천도제를 지낸다며 빌고 또 빌었을 무속신상의 원천을 거슬러 보면 신과 인간의 공감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나라이자 누구하나 감히 손대지 못하는 부분이 종교였다. 인간은 사는게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법이 신을 가늠할 수 없도록 정한 것은 앞서 거론했듯이 국가가 국민의 내면적 정신영역의 도야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이 종교 문제 만큼은 손대지 못했다. 물론 숭불정책 억불정책이 번복될 때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 신이라는게 믿으란다고 믿을 것이며 말란다고 말 것인가. 다만 물질문명이 발달 되기 전에는 마땅히 기댈 곳도 없고 어디 하나 마음 붙일대고 없으니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신의 영역까지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전보다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많다 보니 신이 뒤로 쳐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 보이는 현실, 특히 돈을 쫒다 보니 그런 경향이 점차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동네 하나 뿐인 교회를 다니다 20대 초반 군 복무 시절 성경 암송대회에서 연대장보다 더 우수한 발표로 소위 1등을 먹었고 그 대가로 십자가도 쳐다보기 싫을 만큼 혹독한 수업료를 치른 바 있다. 그로부터 40년, 도교, 증산도, 국학원, 신천지, 남묘호렌게쿄, 조계종과 천태종, 단군 할아버지까지 안 쫒아 다닌 곳이 없을 만큼 다녀보면서 신의 신비함을 깨기 위해 쫒아 다닌 시간들이 있었다. 다양한 종교의 내부 깊숙이 파고들어 허상을 추구하는 신도들의 환상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있었던 결과는 특정 개인이 파헤쳐야 할 영역이 아니라는 선에서 중단됐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신을 섬기는 여지는 인간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성직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그럴수록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는 점이다. 오늘 필자가 이 같은 글을 적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종교에 손을 대고 있다. 자칫 역효과가 난다면 감당못할 일이 된다. 이미 2025년 9월 구속됐다가 4개월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손현보 목사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손 목사는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발언으로 구속된 바 있다. 그런 손 목사를 지난 8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한 바 있다. 무슨 신호일까. 앞서 통일교 한학자 세계평화 통일가정연합 총재는 30일로 다가온 구속집행정지를 보석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총재는 정치자금법 및 청탁 금지법 위반으로 구속 중이었다. 유사한 혐의로 구속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도 22일 잠시 석방되었지만 현재 구속 수감 이다. 올해 나이 95세, 지난 코로나 19에도 숱한 혐의로 여론과 재판의 도마 에 올려졌지만 대부분 무죄로 판결 났다. 언론은 죄가 있을 것으로만 보도했지 무죄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 취지의 보도만큼 해명기사가 없었다. 당시 경기도지사 였던 이재명 지사는 한밤중에 방송국 기자들이 대거 동참한 가운데 가평 평화의 궁전을 급습한 바 있다. 언론에서는 이재명 “체포” 급습이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분위기였다. 당시 신천지를 사이비로 치부하던 반대급부 교계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격이었고 이는 상당한 기독교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유권자들에게 매력일 수 밖에 없었다. 과연 한학자와 이만희 희생으로 끝날까. 다른 종교는 남의 일일까. 불전함과 헌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종교계가 침묵하는 이유다. 덩달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성동은 하루아침에 추락했지만 민주당도 연루되었다는 뉴스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시중에 판매하는 우유에 “허경영”을 열 번 주문하면 명약이 된다고 믿는 추종자들, 여성 신도들을 희롱하고 사기, 폭행 등 온갖 범죄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개신교 목회자들, 물론 종교에도 정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암도 아닌 암을 제거한답시고 복부를 함부로 개복하는 것은 자칫 신앙이라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며 헌법 제 20조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기에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제2 제 3의 한학자와 이만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더 가기전에 명분없는 인신 구속은 중단되어야 한다 제 3국에서 보는 이목이 심상치 않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자동차와 인류의 공생
    덕암 칼럼 자동차와 인류의 공생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칭하고 인간이 이룩한 첨단과학의 꽃이 자동차라 한다. 이점에 대해서 부인할 사람도 없거니와 자동차는 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를 뜻하는데 당초 말이 끌던 수레를 디젤 엔진이 생기면서 말 1마리가 끄는 힘을 1마력이라 칭하는 기준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마력수는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가 수 백마리의 말이 끄는 것과 같은 막중한 동력으로 사람과 화물은 물론 현대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초기의 자동차로부터 지금의 자율주행이 상용화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가. 한국에서도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쓰다 버린 지프차의 껍데기를 두들기고 개조하여 어렵사리 출발한 지 60년, 이제 현대를 비롯한 굴지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적이라 하겠다. 지금이야 자동차가 차종도 흔하고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 선택의 폭이 많아졌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중고차의 인기는 대단했다. 필자 또한 1987년 처음 화물차를 구입한 이래 지금까지 중고차량과 신차를 포함해 약 40대 가량을 폐차시킨 이력을 갖고 있다. 돌아보면 첫 차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유사할진대 자가용 열쇠를 손에 쥐는 감동이야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현대 프레스토, 대우 티코로 시작해 고급 승용차, 덤프트럭, 화물차, 버스는 물론 땅 위에 굴러가는 굴삭기 까지 참으로 많은 차량을 구입했다. 중도에 팔기도 하고 폐차도 시켜보면서 주행해온 거리만 해도 년 간 5만km씩 200만km를 훌쩍 넘으니 지구를 50바퀴나 도는 거리를 핸들을 돌리며 차장 앞 유리로 지난 장면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파란만장했다. 그러는 동안 교통사고도 많이 겪게 되고 본의 아니게 사상자도 내 본 바 있으며 눈으로 뻔히 보고도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전복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오늘 글의 소재는 자동차 없는 날이기에 차량에 대한 무용담 보다는 자동차로 인한 대기오염감소와 관련 산업의 단점을 나열하여 가급적 하루라도 운행을 자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이미 자동차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매김하여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특히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지만 편의성을 지닌 만큼 보행의 여지를 앗아가기도 하고 도보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기도 한다.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터널, 교량, 휴게소와 정류장 등 자동차로 인한 운송환경은 물론 자동차의 실내, 외 성능개선을 추구함에 있어 추가되는 관련 산업의 발전은 탄소배출을 피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최근 수만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네팔 중국 산사태 또한 빙하가 녹아내린 호수가 범람하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해수면은 점차 상승하고 1m 상승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의 1.6배 면적이 침수된다. 따라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점인데 국제적 합의에 따라 탄소배출에 대한 경각심은 수출입 환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그러다 대세를 이룬 것이 전기차 시장인데 선진국일수록 전기차에 대한 연구 개발이 앞선 바람에 시장의 우선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전기차도 배터리 폭발과 수명이 만료된 폐배터리 처리에 대한 환경오염은 기존의 내연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상한선이 없었다. 일부 국가에서 개발중인 스카이 택시나 드론주행이 점차 상용화되면서 이제 하늘은 도로 못지않게 북새통을 이룰 전망이다. 물론 드론은 자동차로 분류될 수 없지만 운송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이루다 보니 이 또한 방법만 다를 뿐 자동차 기능과 역할을 할 것을 기대된다. 지금 추세 대로라면 머지 않아 자율주행으로 인해 인간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일은 점차 막을 내릴 전망이다. 따라서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 그리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자동차를 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10년도 가지 않아 모든 자동차가 전기나 태양광, 수소 등 친환경 연료가 대세를 이룰 것이며 기존의 화석연료로 운행하는 차량들은 생산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정보를 전제로 하자면 국토 교통부에서는 이미 스카이 맵을 개발중에 있으며 머지 않아 비행기만 날던 텅빈 하늘에 드론 운송기구가 줄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될 것이다. 그 때 쯤이면 지금처럼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는 무식한(?)현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해 못할 말로 전달될 것이다. 자동차가 인류에 편익을 제공하는 대신 경적 소리나 엔진소음,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 되면서 발생하는 비산먼지,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제조과정에 피할 수 없는 환경오염 등을 감안할 때 많은 단점을 안고 있기에 하루만이라도 자동차운행을 멈추고 그 도로를 거닐자는 취지로 정해진 날이 오늘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때로는 10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환경에서 자동차의 장점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고 있다. 사계절 자연 환경 속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성상 자동차로 인한 안락함과 편리함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생명체가 아니라 부품의 결합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언제든 수명이 다하면 아무 미련없이 교체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끼는 애마까지는 아니다. 당초 자동차 없는 날이기에 덜 타자는 취지를 논해야 하는데 만들어 놓고 타지 말자는 것 자체가 무색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나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일조하고자 오늘의 글을 쓴다. 독자님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덕암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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