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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덕암 칼럼 당선자에게 바란다

  • 덕암 칼럼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 덕암 칼럼 그만 덮자 뭐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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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암 칼럼 당선자에게 바란다
    덕암 칼럼 당선자에게 바란다

    이번 제 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당선자 전원에게 바란다. 어느 정당의 공천을 받았든. 얼마의 표차로 당선 되었든 초선 인지 연임인지 다선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반드시 기억하고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지켜야 할 몇 가지 당부를 전한다. 가장 먼저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초심을 지키라는 헛소리 보다 누릴 것은 누리되 시간이 약이 될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점이다. 인사권과 결재권, 감사권을 가진 것은 투표를 행사한 유권자들로부터 한시적으로 이양받은 권한 대행인 것이지 당선자 개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방선거 7번, 총선거 7번을 치르며 수차례 당부했지만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한글이다. 간혹 처음에는 당선의 들뜬 기쁨에 고개라도 끄덕이지만 몇 달 못가서 전혀 딴 사람이 된다. 의원들 연수만 다녀와서 뺏지의 무게에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고 경추에는 힘이 들어가 추간판 탈출증 초기증세가 나타난다. 물론 재선이면 조금 덜 기울어지고 3선이면 숙성된 와인 마냥 여유있는 구수함도 있다. 여기서 초심이란 선거 때 시장판 돌아다니며 손을 잡았던 마음과 유세차 타고 다니며 한 표를 부탁하던 절실함을 말하는 것인데 임기 내 잘하면 그런 행위가 애절한 노력이 되고 못 하면 다음 선거 때 표를 구걸해야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당선자 스스로 쓸데없는 해외 공무에 세금 써가며 쫒아 다닐 게 아니라 여행가고 싶거든 당당하게 자신의 개인 돈으로 가고 싶은데 골라 가는 자유를 누리라는 뜻이다. 두 번 째는 공약을 했거든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원하는 대로 잘 되면 좋겠지만 사소한 집안일도 뜻대로 안 되거늘 어찌 고을수령이 하는 일이 만인의 칭찬만 받을까. 어느 한쪽의 박수를 받으면 다른 쪽의 비난도 감수해야 하고 당선되었을 때 약속한 공약을 시민이 납득갈 정도로 이행했다면 재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경기 안산의 경우 민주당 텃밭이라는 자만심이 국민의 힘 이민근 후보에게 당선증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4년 전이면 지금의 야당인 윤석열 대통령이 함께 선출되던 시절 이었다. 하지만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민주당이었고 지역세 역시 민주당 일색이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공약 이행율 92%를 이번 선거 슬로건으로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당당함이다. 약속에 대한 책임감을 숫자로 내놓을 수 있는 건 신뢰와 연결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인사와 공정함이다. 인사는 선거때 신세를 졌으니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이 도리지만 어차피 피하지 못할 인사라면 자질과 능력이 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깜도 안되는 한량이들이 요직을 차지하면 그 조직에서 닳고 닳은 능구렁이 경력자들이 과연 업무지시를 뭐라고 받아들일까. 겉으로야 네네 하겠지만 정무직의 한계는 임기 내에 그치니 듣는 척만 하는 것이며 종래 행정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관할 행정 기관 내에 산하 사업소라든가 시장, 군수가 줄수 있는 자리에 연임을 감안하여 형식적인 공모절차를 거친다면 표시 나지 않게 코가 꿰여 끌려다니게 된다. 굶주린 유기견 구해줬더니 주인을 무는 일이 이미 보란 듯이 발생한 곳이 경기 안산이다. 분야마다 공천을 목적으로 인사질을 개판으로 하다가 종래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단체장도 있었던 곳이다. 인사를 단체장 마음대로 못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업자와 입맛에 맞는 실무진을 해당 부서에 꽂아 입찰 정보나 기타 행정편의를 도모하는 교활한 후원자도 있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표를 빌미로 겁박하여 요직에 공직자의 인사를 청탁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외부 입김이 공직사회 내부에 영향을 끼치는 바 공무원의 사기 저하에도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한해 평균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 공개입찰을 통해 가장 적정한 가격, 기술, 서비스, 품질 등으로 경쟁해야 할 품목까지 죄다 무시하고 오로지 지인중심의 공사를 강행하다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외부인과 결탁하여 무용지물인 건축물을 매입하여 벙치하는 혈세 낭비로 이어지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공공의 적들이 한데 모여 카르텔을 형성하면 있던 죄도 없어지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없던 죄도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러한 글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무원 인사에 개입하였거나 단체장에게 청탁을 하였거나 임의로 선거판에 뛰어들어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던 덕분이다. 위에 나열한 3가지 초심, 약속, 인사만 잘해도 굳이 선거운동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에서 경기 안산은 대표적인 시민승리의 선거판이었다. 초반 개표 당시 9천표 이상을 뒤지던 이민근 후보가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좁히다 새벽녘에는 역전하는 판세를 나타냈다. 최종 개표결과는 이민근 후보로 결정되었지만 경기 안산의 선거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2년 당시 제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종길 후보에게 178표 차로 당선되어 재검표까지 거친 바 있다. 당시 윤화섭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표를 갉아먹어 어부지리로 겨우 당선 됐지만 이번에는 민주당과 국민의 힘 정당 결전, 천영미 후보와 이민근 개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팽팽한 결전이 2,000표 차이로 승부를 가른 셈이다. 이민근 당선자는 위의 3가지 외에 당선의 기쁨보다 책임감이 더 커야 한다. 식상한 공약보다 대기업 유치라든가 국제규모의 행사 유치 등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원한 앞날이 기대된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덕암 칼럼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일이다. 1987년 6월 10일 필자가 군에서 말년 병장으로 복무 도중 외출을 나와 부산 진구 개금동 대로변 앞으로 나왔을 때 거리는 차량 대신 인파로 가득했다. 당시 분위기는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과격한 군중들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일단 위기를 모면하자는 판단에 부대로 복귀했다. 군중심리, 어쩌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거대한 흐름에 파묻히면 그 어떤 설명도 변명이 될 것이고 평소 충정훈련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는 연습이 몸에 베인 입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전역 후 알고 보니 6.10민주항쟁의 절정이었고 그로부터 19일 후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직선제를 선언, 그해 12월 16일 5년 단임제의 제 13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에는 국민들의 저항이 성공한 줄 알았다. 결국 이름만 달랐지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군인들이기에는 마찬가지였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다시 5년이 지나서야 14대 김영삼 대통령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6.10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전리품이 6.29 선언 이었다. 앞서 6.10 민주항쟁의 원인부터 찾아보면 4.13 호헌조치가 불씨였고 헌법을 보호하자는 호헌에는 대통령 간선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소위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장충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더하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그 당시 권력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공도 많았지만 과도 많았다.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이 통치하는 군부독재는 서슬퍼런 공안정국으로 사실상 언론통제, ,야당 인사탄압, 공권력 남용, 등 다양한 오욕의 흔적을 남겼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세월이 39년 이나 지나 수도 서울 한복판인 송파구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 앞에서 유사한 시위가 투표 이후 5일째 이어지고 있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군중들의 집회 형태는 자유, 그 자체다. 일부 방송국에서 참가자 숫자를 축소해 보도하는 일이 군중들의 강력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인천 유정복 시장이 밝힌 동일투표 숫자가 전국 12곳에서 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광주 광산 송정1동과 고흥군 금산면에서도 민주당 민형배 후보와 국민의힘 이정현 후보가 나란히 1401표:120표로 같은 개표 숫자를 나타냈고 이런 현상은 신안, 여수, 화순, 강진, 함평, 장성, 보성, 신안에서도 똑같은 개표 숫자로 나왔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는데 선관위에서는 우연이라고 밝히며 계속 버티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 제 150조에는 투표 용지에 일련번호를 인쇄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부족분이 도착하자 필기로 번호를 적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자체만으로도 선거법 위반이다. 그동안 기입에서 인쇄로 바뀌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선관위에서는 이런 행위들이 위법논란이 있다거나 소지가 있는 것은 몰라도 위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소지는 있지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인데 말 잔치로 해명을 하니 더욱 화를 돋구는 일이 되고 있다. 또한 등록한 후보들 전체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와 여야 정당 2명만 기재된 투표용지가 곳곳에서 의혹을 제기하자 이에 대한 해명도 아직 전무한 상황이다. 9일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투표용지부족 투표소는 총 91곳으로 그 중 26 곳이 투표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부적으로는 서울 42곳,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4, 부산3, 울산2, 충북1, 전남2, 경남2로 밝혀졌다. 단순 실수라기에는 지나친 흔적이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2년마다 한 번 하는 선거인데 평소 뭐하다가 용지 부족 현상을 보였을까. 백번 천번 양보해서 사전투표가 많고 당일 투표가 적을 것 같아 적게 인쇄했다면 그렇게 아낀 인쇄비용이 얼마길래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까. 이쯤되면 문제점의 원인을 단순인쇄 부족으로 치부하기엔 설명이 역부족이다. 이쯤되면 개표가 아니라 개판이다. 야당은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며 공격 수위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의 힘은 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서울특별시장 선거를 무효로 한다는 취지의 선거소청서 초안을 올렸다. 선거소청은 선거 무효소송으로 가기 전 거치는 절차로서 선거일로부터 2주 안에 제기해야 하며 10일까지 서울 시민 공동원고 60여 명을 모집한 뒤 11일 소청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소청이 받아 들여질 경우 재선거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만 기각하거나 각하할 경우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39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 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말겠지 하며 두고 보자는 방관자도 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거대한 밀물이 보이는 것 같다며 특정 집단의 주도적인 집회 시위가 아니다 보니 기한이나 타협 선도 없는 것이 더 중대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가지 다른 점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은 군사독재 타도라는 대의 명분이 있었기에 국민적 공분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켰다면 지금은 정치인이 권력을 잡고 있고 이른바 좌파들의 지지세력이 만만찮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자칫 내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 당시는 신문이나 소문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첨단 과학이 수 천 만명의 동선까지 죄다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다는 점과 권력이 보여준 모든 과정을 전제해 볼 때 국민 안위가 참으로 염려된다는 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명성황후 민비의 사치와 퇴폐풍조,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이를 못 견딘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켜 궁궐에 침입했을 때 외국군을 끌어들여 자국민을 살육한 시절도 있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몽골군으로부터 수 십년 자국민들이 온갖 수난을 겪고 있을 때 강화도에 처박혀 연일 호의호식하며 해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세월도 수 십 년이었다. 지금까지 역사를 감안할 때 한치 앞이 안개 정국이란 말을 이럴 때 두고 하는 소리다. 덕암 김균식

  • 여러분은 행복이 기준이 무엇인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두 가지 취미나 낙이 있어야 한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나 어떤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가령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면 잔액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지듯 만족할 수 있는 금액에 따라 있어도 불행하고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통상 돈 빌리러 다니지 않을 정도, 애경사 챙겨주며 여행 다닐 정도면 된다는 사람과 수십억이 있어도 부족해서 어금니 물고 더 벌지 못해 안달이 아는 사람도 있다. 죽어서 갖고 갈 것도 아니면서 개도 안 물어가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네 욕심이다. 이쯤되면 사람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부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돈의 노예, 돈이면 사랑도 사고 정의도 사고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게 현실이며 때로는 지은 죄도 없어지고 없는 죄도 만들어 지는 세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강헌 사건 이후 38년이 지나도 여전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오늘은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돈 없이도 행복할 방법, 일단 스마트폰을 줄여야 한다. 한 가지를 보면 늪에 빠지듯 정신을 빼가는 알고리즘의 협력이 그러하고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게 하는가 하면 누구나 소중한 시간을 다른 곳에 할애하지 못하도록 무형의 독재자가 영혼을 지배하게 된다.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편리함도 누리고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쓸데없는 흥미를 부추겨 소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가 하면 생활 속에 활력까지 상실케 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선거가 끝나고 아직 후유증이 전 국민 피부에 남아 있다. 중앙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이 그러하고 오랜 기간 정치판이 국민 들에게 보여준 여러 방면의 실망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감히 누가 나서서 바꿀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전은 다음 선거에서 표로 바꾸면 될 일이다. 그러니 낙을 찾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가지 라면 노래와 춤이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사는 세상, 혹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놀고 있다거나 미쳤다거나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대안이 있을까 술 마시고 힘들어하고 한숨 쉬며 주저앉아 있다고 달라질 게 뭘까. 그리고 얼마간의 금전적 여유가 있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그것이 진정 편안한 것인가. 대한민국은 국민 절반이 가수다. 과거 대폿집의 술상 모서리가 부서지도록 노래 부르며 두들기던 젓가락 장단이 그랬고 시대가 바뀌어 노래방이 동네바다 호황을 누리던 것이 그 예라 하겠다. 못한다고 빼다가도 막상 마이크를 주면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사진 안 찍겠다고 버티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미소를 짓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그리고 춤이다. 노래가 귀만 즐겁게 한다면 춤은 눈과 귀와 몸 전체를 즐겁게 한다. 노래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케이블 방송사 들이 앞다투어 트롯 쟁탈전을 벌여 가요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춤도 과거 농사가 잘되어 흥겹게 추던 어깨춤부터 한잔 마시고 취하면 너도 나도 기준도 없는 율동으로 마구 흔들어 댄다. 일명 막춤, 그런 이유로 노래와 춤은 각박한 현실, 숨 막히는 스트레스, 건강해지고 심은 욕망을 모두 채워주는 현실적 비상구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치판이 국민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기에 그들만이 리그가 있듯 국민만의 낙을 찾아야 한다. 노래와 춤의 대향연, 제 1회 대한민국 가무대전, 전 국민이 트롯 열풍에 들뜨듯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축제는 한국 연예예술인 총 연합회와 대한 생활체육회가 공동주관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삶의 활력소를 창조해 볼 예정이다. 전국적인 리그전을 거쳐 수 만 명이 참가자들이 경합을 벌이는 트롯과 댄스스포츠의 조합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 초청하여 민간대사 역할을 꿈꾸고 있다. 민간외교란 자국민들간의 친교다. 각국의 노래와 춤이 벌이는 결전은 총으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과는 판이 다르다. 져도 행복하고 이겨도 미안한 축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얼룩진 과거는 조상들의 이해관계에서 발생 된 일이다. 현 세대까지 대 물림 받아서 억하심정을 겨눌 수 없는 것이고 그런다고 달라질 게 무엇일까. 물론 이런 축제로 모두 잊자는 것이 아니라 일단 대한민국 가무 대전으로 흥을 살리자는 것이다. 특히 춤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영어 못하면 바보 되듯 어쩌다 아프리카 원주민도 추고, 미국이나 영국의 상류사회도 추는 무도회의 우아한 춤을 한국인은 멀거나 보고만 있을까. 굳이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현재 기업의 비즈니스나 외교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에도 댄스는 골프나 술자리 보다 훨씬 가성비 높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온몸이 굳어버린 정치인들이 평소 사교 댄스 하나 제대로 배워 놓지 못해 어울리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는 일을 비일비재하다. 당초 흥겹게 어울리려는 댄스가 한국에서만 어두운 룸싸롱에서 질척거리는 성추행의 과정이 되고 춤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륜의 대명사로 각인됐을까. 인식의 변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타고 바뀌어야 할 우선 과제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자와 낙선자가 한데 어울려 흥겨운 사교댄스 파티로 뒤풀이를 한다면 민주주의 축제가 제대로 막을 내렸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승자는 희희낙락하고 패자는 쓴 독배를 마시며 이를 가는 것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낙선자에게는 격려가 오가며 다시 하나 되는 모습으로 성숙된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그만 덮자 뭐가 달라질까
    덕암 칼럼 그만 덮자 뭐가 달라질까

    투표용지 부족으로 5일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가 봉쇄되고 시민들은 재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찰 비공식 추산 약 2만 명으로 집계 됐지만 특정 방송사에서는 100여 명 정도의 시위대라고 보도하자 시민을 시위대라 하고 2만 명을 100명으로 방송하는 기자에게 욕설까지 서슴치 않았다. 선관위가 인정한 투표용지 인쇄 부족분에 대한 사과와 청와대의 반응, 여당의 반응, 야당의 주장은 모두 다르다. 장동혁 국민의 힘 대표는 재선거를 주장했고 여당은 정치 쑈라며 일침을 가했다. 서울 시장 선거를 가까스로 승리한 오세훈 당선자도 선관위의 사과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고 인천 유정복 전 시장은 송도1동과 2동의 사전투표수가 3030표대 1440표라며 조직적인 부정선거라며 선관위의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통계시스템을 확인해 보면 송도 1동 은 총 28,173표 중 사전투표가 4,546표로 집계되었는데 이중 박찬대 후보가 3030표, 유정복 후보가 1,440표로 나타났고 송도 2동에서도 26,151표중 박찬대 후보가 3030표, 유정복 후보도 1,440표로 집계되어 로또 당첨 보다 더 희박한 숫자로 나타났다. 이런 집계에 대해 인천선관위는 동일합계의 우연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우연의 일치, 투표용지 부족에 우연의 일치가 더해지면서 불신은 폭증했다. 이 같은 의혹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재선거에 대한 여지가 생긴 것인데 선진국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헌법을 근거로 재선거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재선거가 아니라 민심의 요동이다. 이미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좌파세력의 척결과 중앙선관위의 부정선거를 제기하고 나선 바 있고 그동안 많은 2030청년 세대들이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부르며 거리마다 집회와 행진을 가진 바 있으며 이번에도 투표용지의 부족에 대해 투표소에서 반출하다 사람이 다치고 8일 현재 개표까지 저지하고 있는 상태다.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은 지난 22대 총선과 대선에서도 제기됐다. 중앙선관위의 문제점은 진작부터 많은 의혹이 제기 됐지만 헌법을 초월하는 치외법권에 있다 보니 사실상 채용문제부터 서버 공개까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게 없다. 일각에서는 떳떳하면 밝혀서 공개하면 될 일을 버팀 으로서 신뢰를 받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기 했지만 이 또한 마이동풍격이다. 선거에서 패소한 낙선자들이 한두번 제기해 본 것 도 아니고 자신의 표를 도둑맞았다면 당연히 공분해야 할 일도 유야 무야 넘어가는 것이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선관위가 당당하면 보란 듯이 죄가 까발려서 보여주면 짹소리 못하고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반항은 쥐죽은 듯 조용해질 일이다. 어설픈 변명에 보안이라는 두 글자도 철저히 외부로부터 차단한 중앙선관위가 이번에는 제대로 걸린 셈이다. 덮을 일이 따로 있지 이번 사건을 덮었다가는 도매금으로 휘말릴 수 있으니 청와대도 엄정한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수습하는 분위기다. 학급반장 선거도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뽑는 것이 학생들 각자의 견해와 납득할 수 있는 이해와 함께 꾸려갈 공감대를 구하는 길인데 지방선거는 많은 국민들의 실생활과 민원이 직접 피부로 와닿는 대표자를 뽑는 선거다. 어쩌면 총선보다 더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국민 의견이 양분되어 좌파, 우파로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을까. 먹고 살만하니 배가 불러서일까 아니면 수 십년 전부터 소리 없이 진행되어온 대한민국의 적화세력이 이제 수면 위로 떠 올라 주적이 누구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을까. 지난 6월 6일은 현충일이었다. 전쟁이 중단된 휴전 73년째다.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 되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문명이 발달로 이기적이고 편리함이 나태함으로 변질 되어서일까. 어찌 이룬 대한민국의 현주소인데 다시 흥망성쇠를 번복하려는 것인가. 물론 어떤 일이든 영원한 번영은 없고 영원한 멸망은 없다. 하지만 5년천 동안 엥간히도 힘들었던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인들의 부패와 매관매직과 힘없는 백성들의 착취는 늘 상존했었다. 새삼스레 태평성대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란은 없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외국의 내란이나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보면 늘 부정선거가 출발점 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의 광주 민주화 운동.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모두 묵히고 쌓였던 불만들이 터진 것이지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갑자기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미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이 점차 확산 되고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건이 단순히 선관위의 예측 오발로 발생 된 일이 아니라 묵은 감정에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불씨가 될 우려가 문제다. 더 늦기 전에 수습해야 한다. 과거 마냥 애국정신이나 부정부패를 견디지 못해 들고 일어날 만큼 정의감이 앞서는 시대는 아니기에 적당히 하고 말겠지만 이 또한 때가 있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이 있다. 용돈이 부족한 아이가 천원 달라고 할 때 주면 끝날 일을 십 원도 안주고 쥐어 박으면 악이 바친 아이가 어떤 행동으로 반항할지 알 수 없다. 수습도 때가 있고 정도가 있기에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여당도 이럴 때는 입 닫고 가만 있는 게 본전이다. 괜히 나섰다가는 묵은 감정만 들춰서 분노의 물꼬를 터주는 꼴이 된다. 언제는 공정하고 투명했던가 세상 일이라는 게 100% 완벽한 건 없다. 설령 선거가 투명하더라도 이미 후보자들의 빈 약속 “공약”의 거짓말은 왜 짚어내지 못할까. 특정 후보를 찍어준 이면에 유권자 자신의 이득이나 지연, 혈연, 학연이 얽혀있지는 않았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투표용지 몇 장의 부족보다 선거 시스템에 대한 공개 여부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조치가 중요한 것이지 자칫 내란의 불씨로 확산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진정한 부정선거는 깜냥도 안되는 한량이 들이 공천받는 것부터 문제이고 거대 정당 아니면 참 인재들이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정작 선거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작은 실마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러다 시간이 약이 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의 냄비 두께가 얇기에 ,,,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오늘의 번영은 누군가의 희생
    덕암 칼럼 오늘의 번영은 누군가의 희생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번영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이룩한 것이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 없다. 그러고도 굳이 부인하거나 잊거나 관심이 없다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누가 각자의 소중한 목숨을 국토수호에 바칠까. 애국애족 호국정신이 먼 나라 구호일까 아니면 언제든 닥칠지 모르는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언제 다시 전란이 발생할지 모르는 한반도의 안전은 지구촌 어느 국가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험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에 몹시도 시달리고 뜯긴 바 있으며 외란 외에도 내란으로 죄 없는 백성들만 곤혹을 치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금의 애국가도 태극기도 모두 광복이후에 제모습을 갖춘 것이지 약소국가로 명백만 겨우 유지하던 조선은 역사에 비해 참으로 안일하게 국정을 운영해 온 바 있다. 어쩌다 인재가 등용되면 기존의 패거리들이 누명을 씌우거나 들들 볶아서 퇴출시키거나 멀리 귀양보내서 자신들의 먹이사슬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니 이 나라가 발전이 안되는 것이고 운이 좋아 훌륭한 임금이 왕권을 잡았더라도 독살 내지는 역모로 반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는 이쯤하고 현실적으로 인간의 본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 했다. 하늘 아래 땅위에 내가 있어야 우주가 있다는 뜻인데 남의 심장 썩는 것은 몰라도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은 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지금이야 사소한 접촉사고만 나도 목을 잡고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어쩌다 주먹질로 멍만 들어도 진단서를 근거로 고소가 남발한다. 누구나 자신의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은 어지간히도 예민하다. 조금 더 확대해서 폭력배로부터 집단으로 맞아보면 안다.3분만 맞아도 어디 하나 부러지고 터지고 자칫 장애가 남을 수 있다. 폭력이란 사람을 무력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왜 맞고 사느냐라든가 신고하라든가 하지만 막상 맞아보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 노예 정신이 생기고 복종하게 되며 더 맞을까 두려워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다. 얼마나 비굴해지고 생존본능에 악착같아지는지 겪어보면 안다. 어쩌다 칼침이라도 맞으면 맞을 당시 정황이 없어 따끔하고 말지만 상황이 끝나고 보면 피로 얼룩진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수 백 번도 맞아보고 덜 맞기 위해 맞은 맞큼 패본 경험을 비춰볼 때 제 아무리 잘난 척 하던 인간도 폭력 앞에는 무력해지고 비굴해진다. 각목이나 쇠파이프, 칼이 이 정도라면 총은 어떨까. 필자가 군복무 시절 M16으로 사격훈련을 하는 과정에 실탄의 위력을 자세히 교육받다 보면 6.25 전쟁 당시 M1 소총으로 싸우던 군인들의 심경을 100/1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 M16은 처음 방아쇠를 반자동을 해 놓고 당길 때만 땅땅거리며 고막을 두드리지 자동으로 쏴보면 충격만 클 뿐 총소리에 대해 둔해진다. 탄두가 뚫고 들어가는 입구는손톱보다 작지만 총알이 총구의 나사형 총신을 떠나는 순간 회전력이 더해져 나가는 방향은 다 헤집어 놔서 상처가 매우 커진다. 전쟁은 적당히 싸우다 마는 동네 양아치들의 패싸움이 아니다. 전쟁은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멋있거나 용감하거나 승리로 끝나는 드라마가 아니다. 필자 또한 전쟁을 겪어보지 못 했지만 인간이 고통속에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그리고 온몸에 피멍이 수 백 차례 들어본 경험을 비춰볼 때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군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 분들이 지금 국립묘지나 DMZ 비무장지대 어느 야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70년이 넘도록 흙이 되어들어 계신 것이다. 국군도 연합군도 그리고 중공군이나 북한 군인도 서로가 원수진 일도 없는데 전쟁이란 명제 속에 대검으로 찌르고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과이란, 이스라엘과 이란, 등 외전은 물론 시리나, 필리핀, 등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생존의 본능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 마치 한국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것으로 오판한다면, 그래서 설마 한다면 그것처럼 위험하고 안일한 처사는 막아야 한다. 우리가 외국의 전쟁을 강건너 불보듯 하듯이 외국도 한국전쟁에 관심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포성이 시작될 때 브리질 축구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도 함께 허공을 향했다. 만약 2026년 국민들의 갈등이 내전으로 번져 남북 간에 전쟁이 발생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전시상황에서 상관이 돌격 앞으로 명령하면 목숨을 걸고 적의 진지를 향해 약진 포복으로 자세를 낮춰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인간의 고통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는 것은 제 아무리 국가를 위하네 국민을 위하네 해도 정작 정부 요인들은 지하벙커에 숨어 입만 나불거릴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총 들고 전선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의 군기나 사기를 더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태극기나 한글이나 애국가나 그 모든 게 절로 얻어진게 아니다. 미국 워싱턴과 뉴저지지역을 순방했을 때 모든 기관이나 집집마다 성조기가 내걸린 모습을 목격했다. 한국은 국경일에도 걸지 않는 태극기가 쪽팔려서일까 귀찮아서일까. 내일은 제 70회 현충일이다. 가까운 충혼탑이라도 가서 일가친척이 아니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호국영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자. 그게 사람의 도리요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적어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나라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것이며 화려한 옷 입고 화장과 미용으로 도배한다고 속내까지 가꿀 수 는 없는 것이다. 승용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고 다 인간은 아니다. 문명은 외형을 가꾸지만 힘들었던 운명은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 된다. 생명부지에 생소한 한국땅에 와서 연합군이라는 명분으로 목숨을 바친 외국군인들이 명복을 빈다. 그리고 젊은 청춘을 나라에 헌신한 한국 국군에게 깊은 추모의 예를 올린다. 그리고 청소년나이에 군번줄 없는 군인이 되어 목숨을 바친 학도병 선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적어도 적과 아군은 구분하자. 이 땅에 수 백 만명이 쳐들어와 힘없고 죄 없는 국민들을 학살한 중공군이나 북한군의 명복까지 빌 수는 없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덕암 칼럼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9회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필자의 예상대로 민주당의 대승리로 끝났다.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 지방선거로 표출된 것이나 진배없는데 민주당이 잘해서 그런 건지 국민의 힘이 못해서 그런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대세다. 잠시 투표권 부족 사태로 중앙선관위의 공식 사과가 있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약일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광복 이후 80년이 넘어도 변하지 않는 건 지역세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달라질 수 없는 지역감정이고 그러한 예상치는 선거 후보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호남의 민주당, 영남의 국민의 힘,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은 빛을 볼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구조다. 다행히도 방송토론회에서 밑천이 드러난 후보들이 예상밖의 선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으로 인천의 박찬대 후보와 유정복 후보의 설전은 각자의 기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이를 유튜버들이 대거 퍼 나르면서 유정복 후보의 우세처럼 보였으나 결과는 박찬대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 안산도 마찬가지다 투표를 수일 앞두고 터진 김현 국회의원의 발언이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박태순 안산시 의장과의 대립은 물론, 한번 시작된 발언 파문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권위적 국회의원의 말투는 물론이고 자신의 비서진을 도의원에 공천했다가 의장 선출에 개입된 내용을 스스로 불었다. 강원도지사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김진태 현 지사가 출마한 이 곳은 현역임에도 새로이 도전한 우상호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의 경우 기득권 프레미엄이 고스란히 적용됐다. 도청의 실정을 아는 사람과 도전하는 사람은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개표를 시작해 다음날 아침까지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오세훈 후보가 정상을 탈환했다. 이제 국민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분위기다. 어쩌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부터 장관들까지 설쳐댄 스타벅스 탱크데이 작전이 인천 상륙작전 보다 더 대단란 효과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정 회장의 정중한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며 더 과도한 수위를 요구하는 민주당 세력들의 광풍은 좀처럼 잠들 줄 몰랐다. 그러더니 지방선거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이미 쿠팡에 대한 직격탄도 모자라 미국한테 찍힐 짓만 골라서 한 셈인데 상한선을 알 수 없다. 지방선거는 민심이다.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 이제 어쩔 것인가. 민심은 드러났고 헙법 개정안부터 내란이고 몰아 부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결과에도 국민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한쪽은 재판을 덮으려 하고 한쪽은 없는 재판도 만들려 하니 지금은 몰라도 역사에 뭐라고 기록될 것인가.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패배한 쪽은 집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승리한 쪽이 문제다. 너도나도 자신의 공을 세우려 할 것이고 한 자리 안주면 선거자금 상한선 초과한 것이나 특정 후원자로부터 받은 비공개 후원금 등 내부비리를 폭로하겠다며 당선자를 압박할 것이다. 특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관급 자재납품업체나 사전에 점 찍어 놓은 요직을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신중한 대기가 문제다. 보은인사, 중앙정부가 낳은 기형적인 지방정부의 사생아, 당선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하기에 한자리 주어야 하는데 다행히 당선자와 의회 다수당이 같다면 몰라도 다르다면 그마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선이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라면 보은인사는 고지전을 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돌격대다. 써먹었으니 당연히 한자리 줘야 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 깜도 안되는 한량이 들이 요직을 맡게 되는 폐단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선거란 본디 다수결이 원칙이지만 근소한 차이로 패한 후보와 후보 진영, 지지자와 중도 표들의 실망감은 선거의 후유증으로 남는다. 대한민국 선거의 가장 큰 문제는 투표율이다. 지난 8대 지방선거 50.9%에 비해 9대는 61.6%를 기록했다. 나머지 37.9%는 투표를 안했을까 못했을까. 부득이 교도소나 병원에 입원중이라 못했다면 몰라고 할 수 있는데 안 한 사람들은 국민으로서 주권을 포기한 것인데 그 원인을 짚어보면 나 하나쯤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심성이 문제다. 누구는 2표 가졌을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1표씩인데 선거비용을 계산하면 1표당 천문학적 금액에 해당된다. 유가보조금 10만 원은 피부에 와닿고 선거비용으로 사라지는 돈은 당장 안 들어 왔다가 사라지니 상실감을 모르는 것이다. 나 하나 쯤이야는 기본적인 참여의식도 문제지만 주권 포기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감까지 무너트리는 행위다. 누가 강요하거나 벌금 부과하지 않는다고 포기한 주권은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며 그 바람에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패거리 정치문화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방관자들이 말은 제일 많다. 정작 투표 날 귀찮아서 또는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안일함에 젖었으면서도 막상 정치인들의 부패나 장난 판을 보면 가장 크게 떠든다. 침을 튀기며 비판에도 앞장서고 마치 정치평론가처럼 독판 아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정작 얼마라도 빌려준 사람은 조용하다. 얼마나 힘들면 부탁을 했을까 난처해질 것 같아서 빌려주지만 정작 빌려주지도 않고 줄 것 처럼 하다가 희망 고문을 하면서 온 동네 소문은 다 내는 사람이 있다. 같은 부류다. 그리고 투표는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 눈치봐서 행사할 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다. 필자가 젊은 날 친구들과 모여 군 복무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현역 병장을 전역한 친구들은 조용한데 일명 방위변 출신들은 육해공군 모두 잘 안다. 방위라는 열등감을 이기기 위해서인지 전군의 전략적 거점까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육군 병장을 전역한 필자 보다 더 안다. 군 복무 중 체력단련 중 하나로 목봉 체조를 하면 꼭 중간에 한 두 명이 힘들 덜 준다. 얌체 같은 짓이지만 저하나 편 하자고 누군가의 희생을 모른 체하는 것이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선출직 공직자의 일장일단
    덕암 칼럼 선출직 공직자의 일장일단

    공무원을 하려면 정해진 시험과 면접에 합격해야 한다. 간혹 특별한 자격증, 경력 등으로 기술직이나 특수직에 근무할 수도 있지만 선거를 통해 공무원이 되는 경우를 선출직 공무원이라한다. 시험은 아니지만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대표로 뽑혔으니 인정해야 하고 연임은 경력이 붙지만 초선은 가장 늦게 입사한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인사권, 결재권을 갖고 4년간 사실상 고을 사또나 수령의 위치에서 살림을 살아야 한다. 기초의원, 광역의원도 마찬가지다. 몇 십 년간 해당 지자체의 공직사회에서 청춘을 다 보낸 전문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당선된 시장, 군수를 모시자니 환경에 적응하려는 준비가 급선무다. 당선자의 나이, 고향, 종교, 취미는 물론이고 측근들은 누구인지 핵심적 책사는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물론 단체장을 잘 살피고 보필해야 지자체 운영이 안정적인 것은 맞지만 내심 잘 보여야 진급도 하고 이러저러한 시책사업이 원하는 대로 갈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선자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할까. 일단 전임시장의 핵심세력부터 척결한다. 가령 체육회장이라든가 기타 관변단체장, 산하 기관장으로 도시공사 사장, 도시개발 사장, 문화회관이나 청소년수련관장 등 갈아치워야 할 조직의 수장들이 허다하다. 그냥 두었다가는 전임 시장이 낙선할 것을 대비해 심어두었던 사람들의 임기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이며 이들이 버티고 있는 한 단체장의 말발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한 자리씩 꿰어 차고 있는 사람들이 조직에 끼치는 영향 또한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출직 공무원의 비 전문성은 평소 오랜 기간 근무하며 조직내 고참으로 버티고 있는 국장급이나 기타 요직들의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다. 선출은 유권자들이 했지만 임기는 당선자가 채운다. 처음에는 허니문기간이 있어 서로 줄대기 바쁘고 인수위가 꾸려지는 순간부터 한달동안 지역의 꽃가계는 대박이 터진다. 시장실을 기점으로 복도까지 길게 진열되니 화분은 수백개를 넘고 요직을 맡은 인사들의 사무실에도 마찬가지다. 딱히 어느 특정 도시만의 일이 아니다. 이쯤하고 입법기관인 의회의 당선자는 더하다. 다수당이 누구냐에 따라 의장선거도 치러야 하고 전반기 의장이 탄생하면 어느날 나타난 평범했던 사람이 끗발이 하늘을 찌른다. 멀쩡하던 사람, 늘 겸손하고 인성이 잔잔하던 사람도 입성 후 6개월만 지나면 전혀다른 사람이 된다. 일단 말투나 음색이나 높이가 저음으로 변한다. 차차 사라진 웃음은 4년이나 지나야 볼 수 있고 여의도 국회에서 본 것은 있어서 시청이나 군청 공무원들 닦달하는 자세는 마치 전쟁을 마친 개선 장군보다 더하다. 호통에 손가락질은 보통이고 심지어 멀쩡한 실무 공무원들을 동네 후배 대하듯 조져댄다. 그러다 때가 되면 의회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전문위원, 홍보실 직원이나 기자, 시민단에 대표들을 데리고 해외로 공무를 떠난다. 지금이야 다소 수그러졌지만 과거에는 그래야 모두 코를 꿰어 조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서 태극기(?)를 꽂는 긍지와 자부심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일까. 적어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처음 지방의회가 출범할 때 봉사직이었다. 그러다 급여가 생기고 권한이 늘어나고 점차 관련 조례를 통해 공직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폭이 넒어지자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4년이란 임기가 정해졌으니 망정이니 그마저 없었으면 왕 노릇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4년 임기에 선택만 받으면 계속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5년 단임제로 한번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제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사람의 욕심이란 처음부터 생기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왕과 대통령의 차이점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왕은 자식에게 까지 대를 이어 물려주니 왕손이 끊길까봐 후궁을 두고서라도 임금의 씨를 보존하는 것이 당연한 것 이었다. 군주체제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왕권 찬탈전이 끊이지 않는 것이었고 역모는 3대를 멸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왕은 왕답게 근엄하고 백성을 위하는 덕정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 고관대작들이 충성으로 주군을 모시고 지방마다 고을 수령의 부패를 막기 위해 암행어사를 두기도 했다. 지금이야 감사원이 그 역할을 대신 하지만 감사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단임제 대통령, 그마져도 한국은 역대 대통령치고 임기를 무사히 마치거나 퇴임 후에도 안전하게 노후를 보내는 대통령이 드물다. 국민이 뽑아놓은 대통령도 근거없는 낭설로 광풍을 만들어 일단 파면이나 탄핵을 몰아붙이고 감옥에 수년간 처 박았다가 출소해도 딱히 죄를 물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선출보다 다시 끄집어 내리는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신하들은 평소 임금한테 잘 보이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간신 짓을 하다가 수세에 몰릴 만하면 죄다 안면 몰수해서 저 살기 바쁘다. 걸핏하면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며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은 세금내기 벅차고 과거 조선시대 보다 더 나을 일이 없다. 왕이 왕 답지 못하고 지방고을 수령의 일까지 죄다 간섭하는가 하면 외국과의 교역에도 불필요한 말로 국익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있다 없다고 단정지을 시기가 아니기에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경찰서 형사과에서 해야할 일을 서장도 청장도 법무부장관도 아닌 대통령이 나선다면 그것 또한 할 일이 아니며 시청의 단속반이 해야 할 일을 도청이나 행안부까지 무시하고 나서는 것도 중간의 모든 관계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고양이는 아무리 울어도 호랑이 소리가 안 난다. 부정선거도 선거고 이 또한 국민들의 선택이라면 선택이디. 오늘 선거는 하나 뿐인 국민의 권리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논할 권리조차 없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가른다고 갈라지니 문제다
    덕암 칼럼 가른다고 갈라지니 문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한제국이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후 좌익과 우익으로 국론이 분열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단결을 위해 호소한 말이다. 그래서인가 한국은 혈연,지연, 학연 등 온갖 명분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러한 단결을 적절히 활용한 분야가 정치였다. 그랬던 뭉치기가 다시 갈라치기로 변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편을 가르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남과 여, 청년과 노인, 고용주와 고용인, 표가 많은 쪽의 손을 들어주는 정책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갈라치기는 국민들 끼리 서로 고발하고 미워하는 일러바치기 문화가 자리잡게 됐다. 가벼운 경범죄라도 단속 공무원보다는 국민들 끼리 파파라치로 신고해서 포상금 타 먹는게 직업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한번 당한 범법자는 보복심리에 의해 안 해도 될 신고를 즐기기(?) 시작했거 당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고발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심지어는 대통령 마저 대 놓고 파파라치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어디로 갈 것이며 국민화합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일국의 지도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라며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라고 예언을 남겼다. 그리고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라며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얼마나 섬칫한 예언이고 현재 미일간의 친목 분위기를 보면 한국만 왕따 당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 정부가 친중 정책을 펼치고 미국과 함께 동맹국으로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염장을 지르고 반대로 이란에 돈을 퍼주는 현상이 글하다. 안 해도 될 말로 유태인 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안해도 될 이란 원조에 한 몫한다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이번 전쟁이 끝난 다음 한국의 미래를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뿐인가 외교가 이러한데 국내에서는 삼성노조의 막대한 성과금 요구에 이어 현대 자동차도 보란 듯이 거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가 경제의 리더 역할을 했던 대 기업의 몰락또한 불보듯ㄱ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념전쟁, 체제전쟁에 이제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기본이고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유산이 부활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려받을 게 없어서 대립과 충돌이 지금까지 성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래서는 안된다. 최근 대한민국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뉘었다. 선거 때마다 색깔 바람이 부는 것을 마치 그 바람을 타지 않으면 사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의 당선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공천이 절반의 당선이고 나머지는 바람만 타면 후보자의 자질이나 리더십, 정치적 판단능력은 뒷전이다. 파란 바람, 빨간 바람, 그러니 후보들조차 민심이나 지역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은 정당 공천에 공을 들이는 것이며 밀려난 후보들은 정작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보다는 거품을 물고 불만을 토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이런 분위기에 누가 감히 그 어떤 인재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당선된들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필자가 최근 지역 선관위에 대담 요청서를 보내고 선거법에 의거 후보들과의 대담을 진행 중이다. 어떤 이는 낙선되면 후보 한 사람의 불행이지만 당선되면 지역구 주민들의 불행이라는 암시를 받고 또 어떤 이는 꼭 당선되어야 할 후보지만 힘에 밀리고 돈에 밀리고 인맥에 밀려 낙선되는 경우를 많이도 봐왔다. 국민들을 편가르고 한표라도 많은 쪽의 여론을 들어주니 사람의 욕심이란게 하나 둘씩 정치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과 편익과 공짜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정치판의 부패나 권력의 빗나간 화살은 모두 유권자의 책임이고 그 대가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당초 조선은 삼국 통일 이후 한반도를 지켜온 배달의 한민족이었다. 그러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이고 다시 남에서도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지고 거기에 온갖 명분으로 갈라지고 흩어지니 결국 정치인들만 물 만난 고기인 격이다. 이제는 하다 하다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인 대전을 정점으로 하여 부산은 5시 방향, 광주는 7시 방향, 등 시계 바늘처럼 정해놓고 편 가르기를 해댄다. 가르가 가르다 별 해괴한 방법과 표현을 동원한다. 영·호남의 갈등과 지역감정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말투나 풍습 그리고 정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파고들어도 민감해질 수 있다. 경상도,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감정을 한껏 조장하여 표를 얻는 것도 문제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면 호남지역은 죄다 파란색이다. 겉으로는 지역발전이 되니 안되니 성토를 해도 결과는 광복 이후 달라진 게 없다. 대안을 제시한다. 배를 떠받치고 있는게 물이고 물이 성나면 배를 침몰 시킬수도 있고 순항을 보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온갖 미사여구와 달콤한 말로 얼마나 유권자들을 유린했던 긴 세월이 있었던가. 한번 속으면 정치인의 거짓말이고 두 번 속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세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옳지 못한 경우다. 도둑질도 망보고 공범과 눈감은 경찰과 잠든 주인이 있었으니 가능한 것이지 어느 것 한 가지도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제 40일 남았다. 유권자들이 판단하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인물 중심, 경력을 근거로 살아온 과거를 평가하고 공약에 대한 가능성과 현실성도 검토해보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보다 가른다고 갈라지는 사람이 문제다. 깍지를 꼭 끼고 있으면 두 손은 갈라지지 않는 법이다.

  • 	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제주 4.3 항쟁이 발생한 지 72년이 지났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광복이후 6.25전쟁까지 이어진 과정에서 생긴 일인데 그동안 뭐하다가 지금와서 보상이니 기념사업회니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것일까. 원인을 살펴보면 이념대립이나 갈등이 빚어온 사건인데 죄 없는 양민들이 대거 학살당했다. 좌익사상이 불러온 참극이지만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와 군복은 물론 상당한 군사 물자들이 제주의 운명을 달리하는데 사용됐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제주 시민들 중에서도 그런 무기들이 어디에 얼마나 보관되어있는지를 알기에 이를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서로가 의심하고 밀고하는 분위기에 죽창가를 부르며 살벌한 피바람과 밤이면 횃불을 든 무리들로 하여금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수 만명, 지금까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들은 숱한 기록이 있지만 제주4.3 항쟁처럼 쉬쉬하며 묻어온 사건도 드물다. 간혹 다큐멘터리나 책자로도 발행되었지만 고인이 된 후손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량이 약한 탓인지 여전히 재조명되는 일이 제자리를 돌고 있다. 물론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나 대부도의 선감 학원사건,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 등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아픔이 묻혀진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원인과 진행 과정에서 적잖은 의구심이 지금도 제대로 파헤쳐지고 있지 않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속에 이런 아픔이 묻혀 있는 줄은 대다수 국민들이 모른다. 몰라도 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은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된 양민들 입장에서 볼 때 힘 없는 사람은 인원수나 죽음의 형태에 따라 대충 묻어지는 반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의 각별한 지원은 천문학적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대한 청산이 진실되지 않으면 미래에 같은 일이 일어나도 권력의 편향적 판단에 따라 묻힐 수도 과장될 수도 있기에 있는 그대로 확인해서 정리하는 것이 역사여야 한다. 특히 같은 사고도 세월호와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사건 처리를 보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선체 인양부터 해양체험관은 물론 전국적으로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고도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나 각종 지원책은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방대했다. 세월호가 그런 과정을 거친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7시간 의문 제기부터 있지도 않은 테블릿 pc등 조장된 여론도 한 몫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명록에 작성한 “얘들아 고맙다”라는 기록은 지금도 무슨 뜻인지 의아심을 남기고 있다. 어쨌거나 최근 방송에 거론된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잔재물이 1년이나 지난 시점 발견되었다는 점은 어처구니를 넘어 얼마나 졸속으로 사고수습이 진행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 예라 할 수 있겠다. 어찌 희생자의 뼈가 사고현장에서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 지점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철새도래지라며 전문가들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광주에서 이격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성이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굳이 지역 정치인들의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공항 개항식에는 너도나도 축하 테이프를 절단하며 얼굴을 나타냈지만 정작 사고가 나자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인물이 없었다. 2022년까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하던 손창완 사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종지부를 찍은 이 사건의 진실은 제주4.3 항쟁처럼 수 십 년이 지나야 제대로 밝혀질까. 파헤쳐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언제까지 제주 4.3 항쟁이 유야무야 덮어지며 시간만 끌까. 국회에서 진작에 개정법안도 만들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누가 역사의 죄인인지, 피해자의 내역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생존자의 증언이라도 확보하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반면 이태원 참사도 그러하다. 한 번씩 태풍이 불 때마다 별 상관도 없는 사람까지 죄다 끌어들이는가 하면 정작 참사 발생의 주 원인자를 슬그머니 빠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힘이 있다고 빠지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소한 관련성도 확대하여 트집을 잡으면 사건 진상규명의 원인만 흐려진다. 돌이켜 보건데 조선시대 이전에도 억울한 죽음은 많았다. 전쟁터에서도 이념대립으로 인한 내전으로도, 자연재해나 질병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떼 죽음을 당한 적은 숱하게 많았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역이나 역모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얼마 전 국회에서 재론된 코로나19 방역의 오염백신 사태만 해도 그러하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전문성,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지금도 망자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론을 짓자면 제주 4.3 항쟁은 도서, 영화, 다큐, 진상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그 원인에 대한 논쟁도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아픔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원칙도 정해져야 하며 권력 이동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현대판 사초의 역할을 담당할 부서를 마련해야 한다. 임금의 어명에도 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작성하는 사초, 실록은 그랬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권력자의 입맛대로 소설 쓰듯 찬양 일색으로 쓰여 진다면 그건 홍보물에 불과한 것이지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일부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이 객관적 견해로 기록을 남기는게 전부다. 그래서 모든 정기 간행물은 국립 도서관에 납본을 하는 것이고 지역뉴스까지 보관되어 훗날 참고자료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권하게 되었는지, 전 정부가 어떤 과오로 영어의 몸이 되고 한순간 계엄령으로 몰락했는지가 진실되고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매일 글을 쓰고 언젠가 시대가 변하고 후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도록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것이다. 직필은 사람의 박해를 받고 곡필은 하늘의 천벌을 받는다 했던가. 권력적 봉쇄형 소송으로 입을 막는다고 소리는 멈출 수 있으나 글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 덕암 칼럼 남의 밥상에 수저놓기
    덕암 칼럼 남의 밥상에 수저놓기

    2013년 6월, 데뷔한 7인조 그룹, 당시 10대 들이었던 멤버들은 살면서 겪는 힘든일에 대해 편견이나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뜻을 담아 총알을 막는 “방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태동한 방탄 소년단 일명“BTS”는 MZ세대들의 생각과 고민, 삶과 사랑,꿈과 역경을 주제로 노래를 통해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이 한국에 기여한 분야는 여러 가지다. 엄청난 조회수는 물론이고 노래 가사에 담긴 한글이 전 세계 한글 전파에 상당한 기여를했다, 한류 문화를 알리는 선봉적 역할을 했고 7명이 멤버들이 병역까지 모두 마친 후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다시 돌아온 방탄 소년단은 세계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 파이에서 1위부터 14위까지 죄다 휩쓰는 기적을 일으켰다.특히 이번에 발표한 5집“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오랜 한과 혼, 자긍심까지 노래로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인가 넷플릭스 국가인 미국을 비롯해 총 77개국에서 정상을 기록했다. 그렇게 대단한 그룹은 그룹 본연의 색깔대로 그 룰을 유지해야 하는데 온 국민들이 냉소적 견해로 바라보는 정부, 정권, 정치가 개입하면서 분위기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뭐좀 뜬다 싶으면 슬쩍 섞어넣어 남이 애써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를 그냥 얹어놓으려고 인기에 편승하려는 심성이 문제다. 이번 광화문 공연이 그랬다. 온갖 오두방정은 정부가 앞장서서 언론플레이까지 벌여놓고 막상 흥행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에 봉착하자 슬쩍 뒤로 빠지며 기획사로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 측의 얍삽하고 속내가 다 드러나 보이는 입장표명이 그러하다. 빗나간 예측으로 여론의 악화가 심각함에도 이를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리더 RM과 소속사 하이브가 감사와 함께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정작 어설프게 공권력 동원하며 인기에 무임승차하려던 정부 관계자는 되려 지적하듯 과를 떠 넘기고 말았다. 사실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 소년단이 굳이 전 세계가 생중계하는데 광화문으로 장소를 선택했을까. 누가 정확하지도 않은 예측으로 판을 키웠던가. 그리고 누가 생색을 내고 만약 공연이 예상대로 26만명이 왔다면 누가 반사이익을 얻을까. 공연의 주인공인 방탄 소년단일까 아니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아무 사고 없이 잘 끝냈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 인근 옥상에 진두지휘하던 국무총리가 생색을 냈을까. 이미 여론이나 유튜버들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방탄소년단의 공연에 대한 준비가 계엄령 수준으로 엄중했다며 방탄 게엄령이라는 비아냥까지 거론되고 있다. 같은 상황을 놓고 언론보도의 표현 또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막대한 예산, 공권력 투입, 시민불편, 지역 경제 흥행에 실패 등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주최 측 10만, 경찰추산 4만, 실제 관객수 2만 등 관객숫자까지 천차만별로 분석이 달랐다. 악재는 이미 다 나왔다. 대전의 화재사건, 다음날 “화이어“를 외치는 노래 가사가 이어지자 홍콩 아파트 화재 사건 이후 개사했던 여지를 거론하며 주최 측의 배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다. 공연장 주변의 상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끝나 재고가 불가피했던 점이나 과도한 통제로 빚어졌던 일반 국민들의 분노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 동원 18,000명에 대한 인건비만도 20억 원을 넘었다는 지적이나 국민들의 의견과 사생활은 아예 참고조차 되지 않았던 일방적 통제는 사실상 계엄령이 발동될 정도가 되야 시행될 수준이었다는 비난도 한 몫했다. 공연 1시간을 위해 33시간이 넘는 주변 지역 통제는 관련 인프라 단절로 인해 겪어야 하는 온갖 불편함에 대해 일언반구도 잘못했다는 관계자가 없다. 잘되면 정치인이 생색내고 잘못되면 기획사가 뒤집어 쓰는 꼴이다. 비단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손흥민 선수를 데려다 인기에 편승하려는 시도가 그랬고 뭐좀 성과가 있거나 인기가 있다 싶으면 평소 아무런 기여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작자들이 죄다 무임승차를 시도한다. 특히 국회 청문회에서도 뉴진스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여놓고 방송국 카메라 앞에 찍히려는 시도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민망한 장면이다. 가장 존경받아야 할 정치인들이 가장 신랄하게 비판받고 남들이 온갖 노력 끝에 성공하면 그 판에다 슬쩍 얼굴을 들이밀어 자신의 인기를 더하려는 치졸하고 민망한 욕심, 지금까지 그랬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들러리 선 주인공들은 생각이 없을까. 필자는 모든 글에서 지적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같은 일을 번복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정치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어떤 분야든 모든 분야의 성공한 주인공들은 오란다고 왔다가 실패하면 책임 전가나 받는 굴욕을 겪지 말아야 한다. 오래 전 일이다. 필자가 해마다 국경일 행사를 치르던 시절이 있었다. 수천명의 관중들이 삼일절 추운 날씨에도 몇 시간씩 자리를 지켜주었고 광복절 그 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켰다 다만 정치인들만 행사 시작 시점에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치적과 기념일에 대한 의미를 뒤섞어 자신을 홍보하고는 축사했답시고 이석해 버렸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런 행태는 어디가나 당연하듯 벌어진다. 물론 남은 관객들은 멀거니 바보가 된 기분이고 모처럼 온갖 준비로 겨우 마련한 국경일 축하생사는 몇 시간 씩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정작 끝까지 남아서 박수를 치고 무대를 빛내준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번 광화문 공연은 전 세계가 인정한 방탄 소년단을 한국 정부가 잔뜩 뻥 튀기 했다가 제대로 바람 빠진 풍선의 형국으로 남은 참사다. 인기를 얻은 주인공을 옆에 세워 생색을 내는 일이 한번은 실수고 두 번은 불려온 주인공도 공범이며 세 번은 불려온 그 주인공이 주범이 되어 온갖 욕을 다 먹는 것으로 결론 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냥 하던 정치나 제대로 하는 게 옳은 것이고 공연은 기획사가 알아서 장소선정부터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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